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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7. 2023

쉽게 포기하지 않는 시어머니

"나는 이래서 스페인 사람들이 좋아."

산타크루즈 도착 첫날,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쉬고 난 후 저녁 8시 무렵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근처에 있다는 맛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산타크루즈 도심을 큼직하게 가로지르는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아름다운 도시를 감상했다. 


야자수와 선인장들이라...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온통 바싹 마르고 황량한 모습이었던지라 키 큰 초록나무들로 가득 찬 거리가 더욱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시원한 저녁공기를 맞으며 시부모님과 맛집을 찾아가는 길!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저 여기 너무너무 좋아요! 선인장, 야자수도 예쁘고 집들도 너무 예뻐요! 저 여기 데려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이 마음에 든다니 내가 다 기분이 좋구나!" 

말씀이 없으신 아버님을 향해 나는 한 번 더 감사인사를 드렸다. 

"저 여기 데려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버님은 이미 알고 계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우리가 찾아가는 레스토랑의 이름은 "Taberna Ramón" 이라는 곳이었다. 작년 시동생이 테네리페 여행 중 들렀다가 너무 좋았다며 추천해 준 곳이었다. 

문제는 너무 작은 레스토랑인 데다 예약을 하지 않고는 식사가 어려운 곳이라는 걸 미리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서 도착한 사람들이 입구에서 거절당한 채 그대로 떠나는 장면을 목격했고 우리 역시 직원의 단호한 거절을 들었건만 어머님께서는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다. 직원에게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 스페인어로 살갑게 부탁하셨다. '우리는 오늘 막 테네리페에 도착했는데, 우리 아들이 이곳에 꼭 가보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먼 곳인지 모르고 20분 동안이나 걸어서 온 것인데 기다려야 된다면 문 앞에서 기다리겠다'라고. 중년의 직원은 몸이 불편하신 아버님까지 계시니 두 번의 거절은 차마 어려웠던지 그럼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했고 결국 10분도 안 돼서 우리는 구석 테이블로 안내받을 수가 있었다!


레스토랑 내부는 정말 아담했다. 북적이는 손님들로 분위기가 꽤 시끄러웠지만 뭔가 스페인스러운 분위기를 처음으로 느낄 수가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나는 스페인 사람들이 이래서 참 좋아. 감정표현이 너무 솔직해서 자칫 거칠어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사람들이 인정이 있거든. 나랑 잘 맞는 것 같아." 


이래서 시부모님께서 매년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시는 건가 보다. 


내가 식전빵과 함께 나온 올리브유에 관심을 보이자, 아버님께서 본인의 올리브유를 나에게 주셨다. 이때부터 나는 여행 중에 아버님께서 주신 모든 올리브유와 버터, 설탕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남편을 위한 기념품인 것이다. 


우선 맥주를 세잔 시키고 기쁘게 친친! 테네리페에서의 첫 잔을 기분 좋게 부딪혔다. (프랑스어로 건배는 썽떼 혹은, 친친이라고 한다.)

"스페인빵은 프랑스빵에는 못 미치지만 항상 따뜻하게 데워서 나오니까 맛있어. 따뜻할 때는 모든 빵이 맛있단다. 아마 이곳 대부분 레스토랑에서는 냉동빵을 사용하고 있을 거야." 

테네리페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모든 식사 때마다 식전빵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따뜻하고 바삭한 상태라서 버터나 올리브오일과 함께 맛있게 먹었는데, 알고 보니 이 식전빵은 무료가 아니었다고 한다. 

"저기 신선한 야채들을 보렴! 스페인에 오면 꼭 토마토를 먹어야 해. 메뉴에 토마토가 없더라도 스페인 여행에서 나는 토마토샐러드를 주문한단다. 스페인 토마토는 정말 맛있어!." 


그렇게 우리는 다 같이 나눠먹는 전채메뉴로 토마토 샐러드와 깔라마리를 주문했다. 둘 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각자 먹을 메뉴를 고를 때 나는 오징어요리를 시키려고 했는데 어머님께서 Secreto Ibérico 라는 항정살 구이를 추천해 주셨다.


"너 돼지고기구이 좋아하잖니. 이건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요리야." 

자신 있는 어머님의 말씀에 갈등하고 있을 때, 아버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오징어요리는 내가 시킬 테니 같이 나눠먹자." 

그렇게 해서 나는 두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보기에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데 고기가 너무 잘 구워졌다. 겉은 바삭하고 속에는 육즙이 살아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소스가 특별하다. 꿀이 들어간 듯 달콤한 맛인데 고소한 돼지고



아버님이 주문하신 오징어 요리.



테네리페에서의 첫 식사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포기를 모르셨던 시어머니 덕분이었다. 

게다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굳은 얼굴로 좁은 실내를 누비던 직원들이 시어머니께서 무언가를 물어볼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살갑게 대해주는 모습 또한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내가 혼자서 여행을 했다면 겪어보지 못했을, 맛보지 못했을 경험을 한 것이다. 


앞으로 남은 여행이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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