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만에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2024년 7월
프랑스에 오고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친정엄마와 전화통화를 해 오던 나는 지난 12월부터 수개월째 전화통화를 피해 오고 있었다. 먼 타국에서 막내딸이 사위와 사돈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면 부모님의 상심이 너무 크실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내가 부모님 앞에서 펑펑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무작정 연락을 피해왔던 것이다.
버거씨와 4개월쯤 교재를 한 시점이 되었을 때 나는 엄마에게 모든 진실을 말씀드리기로 다짐했다. 나를 아껴주는 친구들과 다정한 남자친구 덕분에 나는 여전히 프랑스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릴 용기가 났다. 하지만 우리 언니는 엄마의 충격이 상당할 테니 본인이 미리 엄마에게 설명을 드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엄마와 실로 오랜만에 화상통화를 했다. 엄마는 내가 전화를 피하는 이유를 대충 짐작하고 계셨다고 한다. 나는 엄마가 우시거나 가슴을 치며 원통해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침착하게 받아들이셨다. 심지어 위자료나 재산분할을 못 받게 되었다는 말에도 약간 속상해하실 뿐 크게 반응하지는 않으셨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내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나보다 더 현명한 네가 한 결정이니 나는 다 믿어. 그리고 아무 걱정 없어. 이렇게나 예쁜데 솔직히 네가 아까웠지. 그 돈 없어도 네가 더 잘 살 건데 뭐."
언니가 당부를 잘해 준건지 엄마는 남편이나 시어머니를 나쁘게 말하지도 않으셨다. 내가 용서했다고 하니 엄마는 내 앞에서 한숨조차 짓지 않기로 다짐하신 듯했다. 내 얼굴이 전보다 더 좋아 보여서 안심이라고도 하셨다. 착한 버거씨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렸는데 엄마는 그에 대해서는 별말씀이 없으셨고 그저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하셨다.
버거씨에게, 친정 부모님과 몇 달 만에 처음으로 통화를 했고 모든 이야기를 이제야 털어놓았다고 했더니 정말 잘했다고 했다. 마음이 좀 가벼워졌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아, 우리 언니가 돈 보내줬어. 내가 됐다고 거절했는데 굳이 보내주더라. 꼭 새 신발 사진으래. 꽃길만 걸으라고. 그래서 그 돈 받았어. 신발 사러 같이 가자."
버거씨는 기꺼이 신발 매장에 같이 가서 등산도 할 수 있고 조깅할 때도 신을 수 있는 예쁘고 튼튼한 운동화를 골라주었다. 그리고 신발에 어울리는 등산양말도 몇 켤레 사줬다.
"신발 산 기념으로 내일 보쥬에 등산 갈까?"
오! 정말 좋은 생각이다!
일요일 이른 아침 우리는 빵집에 들러서 샌드위치와 간식 빵을 푸짐하게 사서 보쥬로 떠났다.
맛있는 거 잔뜩 싸들고 나들이 가는 이 기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다. 새 신발이라 발걸음도 더 가볍다.
언니야 고마워. 나 인제 진짜 꽃 길만 걸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