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오후에 한 동양인 남성이 가게에 왔다.
습관적으로 봉쥬- 하고 인사를 건넸다가 외모를 보니 한국인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곧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덧붙였다. 그랬더니 그 남성도 똑같이 "봉쥬-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고개까지 살짝 숙이면서 말이다.
"어, 한국분이세요?"
내 질문에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프랑스어로 이렇게 대답했다.
"네. 하지만 한국어는 못해요."
내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이분은 나직하게 속삭이듯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적에 이곳으로 입양되었거든요."
아...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까...
다행히도 이분은 매우 밝은 표정이었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굉장히 많아 보였다.
"저 곧 한국에 가요. 한 달간 머물다 올 거예요."
"와! 이번에 처음 가시는 거예요?"
"아니요. 관광은 이미 한 번 다녀왔어요. 이번에는 제 생물학적 가족을 처음으로 만나러 가는 거예요. 36년 만에요!! “
엇
나는 질문 대신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좀 긴장도 되고요. 솔직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막 처음 만난 나에게까지 자랑하고 싶을 만큼 설레고 흥분으로 가득 찬 기분이 전해졌다. 나는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을 느꼈고 진심으로 그에게 축하를 해 주었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듣기만 해도 제가 너무 기분이 좋아요! 정말 축하드려요. 그 가족들은 얼마나 기쁘실까요!!!"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내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그 남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고 나는 그가 주문한 닭강정을 튀기면서 열심히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프랑스로 입양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세 살쯤 더 어린 동생과 한 가정에 같이 입양이 되었는데 당시 그는 7살이었다고 한다. 나랑 동갑이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그의 유년시절은 나의 그것보다 훨씬 더 혹독 했겠다... 7살의 어린 소년이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머나먼 이국땅을 처음 밟았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꼬...
"저랑 같이 입양된 제 동생이 그때 심장병을 앓고 있었거든요. 한국은 그때 좀 가난했잖아요. 수술비가 없으니 입양이라도 보내자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는 나에게 본인의 휴대폰에 있는 오래된 사진들을 여러 장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모든 사진 속에서 해맑은 개구쟁이 형제가 서로 꼭 붙어 있었다.
"이 사진은 프랑스에 온 지 1주일 되었을 때 동생이랑 찍은 거고요, 이건 한 달쯤 지난 후에 제가 동생 머리를 빗겨주는 사진이에요. 동생은 다행히 프랑스에서 수술을 잘 받고 건강하게 자랐어요."
아! 해피앤딩이구나! 오늘 감동의 연속이.
"동생분이랑 얼마나 가까운 사이일지 짐작이 가요."
"네. 그런데 동생은 몇 년 전에 교통사고로 떠났어요."
쿵.
오늘 나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해피앤딩이 맞는 건가. 너무 슬프다.
"한국에서 가족들을 만나면 동생의 사망 소식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서요."
이 착한 남자는 자신보다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는 가족들을 더 걱정하고 있다. 내가 한국의 가족이라면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동생보다 이 남자가 겪었을 상실감에 마음이 더 쓰라릴 것 같다.
그는 동생과 성인이 돼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의 외모가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
"교통사고였는데 뒷좌석에 있던 동생의 아이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할 뻔했는데 그 말은 부적절한 것 같아 속으로 삼켰다.
"오늘 닭강정이랑 닭갈비 두 개 포장하시는 거지요? 누구랑 드시는 거예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물어본 건데 "저 혼자 두 개 다 먹을 거예요. 헤헤"라고 대답하고 환하게 웃는 남자.
"저는 한국 음식을 좋아해요. 제 형수가 한국인이거든요. 그래서 한국요리를 많이 해줘요. 저도 한국 음식을 몇 개 할 줄 알고요. 형수가 한국어 통역도 도와줘요."
다행히 프랑스에서 좋은 가족들을 만났나 보다. 하지만 프랑스 부모님도 결국 이혼을 하시는 바람에 그에 따른 아픔이 또 있었던 듯했다.
"그런데 한국의 가족들과는 어떻게 서로 알게 되신 거예요?"
내 질문에 이 남자는 다시 환한 표정을 지으며 신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한국 측 가족들은 형제를 찾느라 필요한 (정확히 못 알아들음) 기관에 정보를 등록해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 남자를 찾아낸 사람은 한국 조카(한국의 큰 형님 아들)였다고 한다. 바로 인스타그램으로 말이다!! 남자는 그 조카가 맨 처음 대화를 시도한 DM창을 캡처해서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그 내용을 보여주는데 왜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지... 오늘 계속 감동 감동...
조카는 남자에게 처음 봉쥬- 하며 인사를 건네왔고 그 후에는 영어로 남성의 한국 이름을 확인한 후 자신의 아버지 이름인 XXX을 혹시 아냐고 물어왔다. 그런 후 아버지의 정면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다.
"처음 큰 형님 사진을 봤을 때 어땠어요? 눈물 안 났어요?"
"사실 인스타에서 워낙 사기가 많으니까 당시에는 믿지 못해서 큰 감흥은 없었어요."
아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 측 식구들은 완전 눈물바다였을 것 같다. 상상하다가 나 혼자 또 뭉클. 조카가 정말 큰 일을 했구나. 내가 다 대견하네. 남자는 아직 만나보지 못한 조카의 사진까지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설렘과 기쁨이 느껴졌다.
그는 어릴 적에 한국에서 아버지와 찍은 사진도 보여주며 어릴 적 사진들이나 자신의 한국어 이름이 써진 입양서류들을 지금껏 잘 간직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다녀오시면 꼭 들러서 어땠는지 이야기 들려주세요!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요."
"그럼요! 다녀오면 꼭 다시 들를게요."
내가 너무 감정을 이입해서 대화를 나눴던지 남자가 떠나고 난 후에도 여운이 남았다. 오늘 처음 만난 나에게 이렇게 많은, 사적인 이야기들을 몽땅 풀어내는 모습을 보니 한국인을 만난 것이 참 좋았나 싶기도 하고... 진심으로 그의 한국 방문이 웃음 가득하고 행복한 시간이기를 바란다.
지난 세월 동안 겪은 아픔들보다 더 큰 행복이 그 남자의 미래에 펼쳐질 거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