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멋진 행사였다.
2024년 9월의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다.
쌀쌀했지만 하늘은 청명했던 스타니슬라스 광장에서 버거씨와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잠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저쪽에서 사람들이 엄청 많이 나오고 있는데... 뭔가 있는지 우리도 가볼까?
뭔가 큰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야외에 설치된 멋진 임시 정원을 가로지른 후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장소가 조성되어 있던 것이었다) 큰 간이 건물이 보이길래 곧장 들어갔다.
와우...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펼쳐진 행사장 내부.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
너무 복잡해서 잠깐만 둘러보고 나가려고 했는데... 웬걸???!!
어제부터 낭시 시내에 가는 곳마다 인파들이 몰려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바로 이 행사 때문이었던 것이다. Le Livre sur la Place라는 행사인데 낭시에서 열리는 문학 박람회라고 한다. 낭시 시와 낭시 서점 협회가 함께 주최하였으며 매년 3일간 열리는 무료 행사. 소설, 에세이, 만화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 뿐만 아니라 그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다고 한다. 올해는 약 200명의 작가들이 참여했으며 언론인과 출판관계자들도 참석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큰 스케일의 행사였는데 우리는 이걸 코앞에 두고도 그냥 지나칠 뻔했다.
행사장 입구에는 작가의 낭송회가 열리고 있었다.
부스마다 빼곡하게 작가들이 줄을 지어 앉아있었고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원하는 책을 구경하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책을 바로 구매할 수도 있으며 작가의 사인을 받거나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작가들이나 관람객들이나 모두들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특히 학생들이 작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다. 작가들이 학생들의 시선에 맞춰서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조언해 주는 모습에서 겸손함이 느껴졌다.
편안한 복장과 살가운 표정으로 독자들을 대하는 작가들이 정말 친근해 보였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해외 작가들까지 참여한다길래 눈을 크게 뜨고 작가들을 살펴봤는데 역시나 아는 작가는 없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이곳에 아멜리노통브가 와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읽은 그녀의 책이라고는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하나뿐이었지만 이곳에서 그녀의 책을 사고 사인도 받았다면 큰 영광이었을 것 같다. 나중에 나와 버거씨는 대스타를 만날 기회를 놓쳤다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버거씨는 흥미로운 책을 한 권 발견했다.
필립홍도 (Philippe Hondot)라는 프랑스 장군의 자서전이었다. 일전에 룩셈부르크 은행이 연관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인물이라 버거씨는 그 이야기의 내막이 항상 궁금하던 차였다고 했다.
에티엔 오그리라는 이름의 이 작가는 버거씨의 질문이 매우 반가운 눈치였다.
두 사람은 아주 열정적으로 토론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초반에 조금 알아듣다가 금세 흐름을 놓쳐버렸고 대화에 끼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집중력을 잃은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면서 사진을 찍었더니 버거씨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했다.
"나 신경 쓰지 마. 이런 기회가 흔치 않으니까 맘껏 대화 나눠."
버거씨는 그 자리에서 책을 바로 결제했고 작가는 책 속표지에 사인과 함께 간단한 인사말을 써주었다. 혹시라도 책 내용 관련해서 추가 질문이 있거나 토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달라는 말도 했다. 오우 버거씨 이제 작가님이랑 친구 하겠는걸?
버거씨 말로는 이 분은 현재 국제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한다.
버거씨는 이 흥미로운 책을 구매하고 작가와 꽤 긴 토론을 나눈 경험 덕분에 꽤 흥분된 표정이었다.
"우리 여기 몇 바퀴 더 돌아봐도 돼? 미안한데 나 지금 너무 신났어."
"당연히 되지!"
"너는 마음에 드는 책 없어? 저쪽에 어린이 책도 있던데."
농담인 줄 알았는데 버거씨 표정을 보니 진심이네.
어린이들도 정말 신이 난 행사였다. 어린이들에게는 작가님들이 속표지에다 그림을 그려주신다!!
이 여자 꼬맹이는 작가님과 꽤 어른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작가님이 아이를 존중하고 성의껏 대답해 주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아 나도 그림 갖고 싶다. 진짜 그림책 하나 살까.. 말까...
근데 뭔가 책을 한 권 집어 들면 안 사고 다시 내려놓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작가들이 바로 앞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까) 함부로 책을 집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지금 보니 나도 그림책을 한 권 살걸 그랬다는 후회가 좀 든다. 내년에도 행사가 있다니 그때를 기다려 볼까.
버거씨는 Norek이라는 스릴러 작가의 부스를 발견하고는 매우 좋아했는데 작가가 1시에 다시 돌아온다는 메모만 있어서 아쉬움을 삼키고 돌아서야 했다. 다시 가보자고 말했을 때 괜찮다고 했으면서 뒤늦게 돌아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때 돌아갔다면 아멜리노통브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버거씨는 행사장을 나온 후에도 계속해서 이 행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기대도 안 했는데 이런 훌륭한 이벤트를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고 말이다.
낭시는 정말 살수록 정이 드는 도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