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씨네 동료들과 바비큐 파티를 한 다음 날이었다.
우리는 바비큐 파티 때 남은 음식들을 쳐다보다가 이걸 어떻게 다 먹을지 잠깐 고민을 했고 버거씨는 그때 갑자기 "우리 엄마한테 갖다 드릴까?"라고 말했다.
버거씨네 부모님은 오래전 이혼을 하신 후 서로 다른 도시에 살고 계시다. 재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신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혼자 계시다고 한다. 버거씨는 어머니의 예민한 성격 탓이라고 종종 말한 바 있다. 자주 찾아가면 부담스러워하시고 심지어 한 번에 많은 인원이 찾아가면 예민해지셔서 누나네 부부와 함께 방문하는 일도 드물다고 했다.
"엄마한테 전화드려서 너랑 같이 먹을 거 갖고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알았다고 하시더라. 오늘은 기분이 꽤 좋으신 듯 해. 정말 괜찮겠어?"
뭐 나도 흔쾌히 좋다고 말했다.
버거씨는 빛의 속도로 먹거리들을 트렁크에 실었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던 샐러드도 담고 소시지도 담고 심지어 전기그릴팬까지 실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소풍 가는 기분이 들었다. 신난다 랄라라
프랑스를 빠져나간 우리 차는 룩셈부르크를 지나고 독일을 거친 후 결국 프랑스 어느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무슨 이런 황당한 시추에이션...?
어릴 적 소꿉놀이하던 기억이 떠올라서 혼자 막 웃었다.
촌에 살던 어린 시절 나는 마을 친구들이랑 산에서 소꿉놀이를 자주 했다. 종이돈을 만들어서 누구는 야채가게, 누구는 식당 같은 것을 맡는데 주로 풀이나 꽃 따위로 정성껏 상품을 만들어서 가격을 매기고 손님을 받았다. 그런데 꼭 남자아이들은 서로 차장을 하겠다고 나섰다. 차장이라 함은 산비탈에 기형적으로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거기다 승객들을 태우고 열심히 나무를 발로 굴려서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것이었다. 웃긴 건 승객들이 한 번에 여러 명이 탄다는 점이다. 행선지가 다 달라서 누구는 서울이요! 부산이요! 나는 일본! 나는 미국! 외치는데 차장은 거절하는 법이 없다. 한 번에 다 태우고 차장이 열심히 나무를 굴려서 중간에 한 명씩 내려주는 식이었다. 차장은 지쳐가는데 부산에서 내릴 손님이 안 내리고 미국까지 가기도 하고, 차장이 여기 미국이라고 다 내리라고 해도 승객들은 벌써 미국일리 없다고 더 태워달라고 조르는 게 여사였다. 이런데도 남자애들은 서로 차장을 하겠다고 나섰다는 게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기다.
버거씨한테 소꿉놀이 차장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버거씨가 운전하다 말고 웃느라 뒤집어졌다.
"가끔씩 우리는 일본과 미국을 거친 후에 서울에 도착하기도 했거든.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네."
우리가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께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입구에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현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로 이 개미였다. 다시 보니 노래를 하는 중이었구나.
처음 만난 어머니는 내내 환한 표정으로 나에게 테라스를 구경시켜 주셨다.
테라스에는 무궁화와 수국이 수북하게 피어있었는데 모두 다 어머니께서 직접 다 심으신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버거씨는 그릴에다 우리가 가져온 소시지와 고기를 구웠고 잠시 후 우리는 테라스에 둘러앉아 점심 식사를 맛나게 했다.
버거씨는 어머니께서 예민한 성격이 있으시다고 했지만 전혀 그런 느낌은 없었고 마냥 즐거워 보이셨다. 그 덕분에 다들 기분이 좋 앗다.
식사 후에 어머니는 버거씨에게 무거운 화분 받침을 화분 밑에다 거꾸로 끼워달라고 부탁하셨다.
"리마쓰들이 자꾸만 내 식물들을 갉아먹어서..."
"리마쓰...? 아하! 이거 말씀하시는 거 맞지요? 요기... 달팽이... 집 없는 달팽이요."
내 말에 두 사람 모두 크게 웃으며 맞다고 했다. 달팽이는 프랑스어로 에스카르고, 민달팽이는 리마쓰... 집 없는 에스카르고라고 했더니 딱 이해한 것이다.
그 외에도 버거씨는 집안 이곳저곳을 보수해 드리느라 좀 바빴고 그 사이 나는 테라스를 구경하다가 복분자를 한가득 발견했다.
몇 개 따서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더니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다.
"그게 벌써 다 익었구나! 내일은 다 따다가 잼을 만들어야겠네."
테라스에 검은 토마토가 신기해서 쳐다봤더니 하나 따서 맛보라고 주셨다. 속은 그냥 일반 토마토 색깔이었고 맛도 큰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생긴 것만 보면 꼭 가지 같아서 신기했는데.
냉장고에 붙어있는 흑백 사진을 들여다보았더니 어머니께서 설명해 주셨다.
"아 그거는 우리 할아버지랑 삼촌이란다. 둘 다 블렁제리를 운영하며 빵을 만들었지. 뒤에 그녀는 당시 우리 집 수련생이었어."
우와... 버거씨네 할아버지는 파티시에셨다고 했는데 외할아버지는 블렁제셨구나. 이러니 버거씨의 입맛이 남다를 수밖에.
아쉬운 첫 만남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 어머니께서는 오래오래 아파트 입구에 서서 우리를 배웅하셨다.
"같이 시내에 나가자고 말씀드리지 그랬어?"
내 질문에 버거씨가 이렇게 말했다.
"여럿이 외출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셔. 거기다 우리 엄마 오늘 많이 긴장하신 것 같아. 평소보다 말씀이 너무 많으시고 횡설수설하시는 듯했어."
"난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던데? 그냥 아주 즐겁고 들떠 보이셨어."
"아,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널 만나서 즐거우셨나 봐. "
"나도 아주 즐거웠어."
"나도 나도!"
사실 문득문득 우리 시어머니가 떠올라서 마음 한편이 좀 시린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버거씨의 어머니께서 예상 이상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하고 즐거웠다.
과거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새로 펼쳐지는 챕터에만 집중하고 과거는 그만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