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주말에 나와 버거씨는 함께 김밥을 만들었다.
일전에도 같이 만들어 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아들들이 집에 와 있어서 아들들에게도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오늘의 김밥 재료는 볶은 당근, 오이, 새우, 계란, 오이피클이다. 단무지를 가져오려고 준비를 딱 해놨는데 깜빡해서 그냥 버거씨네 냉장고에 있던 오이피클을 넣었다.
밥담당 버거씨가 파스타 삶듯이 쌀을 물에 끓이는 바람에 찰기가 다 사라졌다. 이런 참사가...!! 찰기 없는 밥으로 김밥을 마는 게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들들이랑 버거씨는 김밥맛에 대만족을 했다.
담에는 절대 밥 하지 마라...
(김밥은 안 찍어먹어도 되다고 말해줬음에도) 초밥 먹듯 간장을 찍어먹는 세 남자.
그래도 안 베어 먹고(내가 당부한 대로) 한 입에 먹어준 게 어디냐. 음식 사이즈가 좀 만 커도 나이프를 찾을 사람들이라 김밥도 최대한 작은 크기로 쌌다.
김밥 싸고 남은 재료를 테이블 위에 같이 올려놨더니 두 아들들 모두 계란지단을 매우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하나씩 집어먹더니 그제야 이렇게 말하는 이들.
"아 오믈렛이었구나."
단무지가 들어갔다면 더 맛있었겠지만 이것도 충분히 맛있었다.
세 남자들은 엄지를 치켜세웠고 김밥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사라졌다. 뿌듯해라!
세 남자는 식사 중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버거씨가 작은 아들에게 아이폰을 사 주기로 한 모양이다. 정작 본인은 지난달 오래된 핸드폰이 망가졌을 때 일주일 내내 수리하려고 애만 먹다가 결국 (비싼 건 필요 없다며) 저렴한 샤오미로 바꾼 바 있다.
신이 나 있던 작은 아들이 버거씨에게 물었다.
"아빠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갖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전에 이북 리더기 사신다고 했죠? 킨들 어때요?"
그 말에 버거씨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아들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다음 말부터가 문제였다.
"아빠는 혜연을 얻었잖니. 그녀는 이 세상 최고의 선물이야. 앞으로 10년간 아빠는 아무 선물이 필요가 없단다. 그녀만 있으면 돼."
악!
김밥이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다 큰 두 아들들은 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네!? 얘들아 왜 진지한 건데...
나 혼자만 몸 둘 바를 몰라 헛기침을 했고 그 모습을 본 버거씨는 살짝 웃었다.
"아빠 진짜 아무런 선물 필요 없어요?"
아들의 질문에 버거씨는 그윽한 시선을 나에게 고정한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어색한 상황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기 위해 나는 뭐라도 한마디 해야 했다.
"얘들아, 선물 필요 없다잖아. 그냥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자. 10년 후에 그때 다시 물어보자 우리."
버거씨는 여전히 그윽한 눈으로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은 채 천천히 끄덕끄덕했다.
아 못 말려 진짜ㅋㅋㅋ
올해 선물은 그럼 아무것도 없는 척 연기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