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도 안 들고...
2025년 1월
사랑니 통증으로 밤새 극심하게 고통받다가 버거씨 덕분에 알게 된 응급 치과 센터에 찾아갔다.
음? 건물에 낭시 대학교 치과학부라고 적혀있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어젯밤의 통증을 떠올리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일단 사랑니를 뽑고 봐야 할 판이었다.
내 순서가 되었을 때 진료실로 들어갔더니 20대 젊은 선생님 둘이서 나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나는 어젯밤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얼마나 아팠는지... 잠도 못 잤고... 진통제를 이거랑 저거랑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총각들은 눈을 반짝이며 경청한 후 나를 눕혔고 내 입 앞에 머리를 바짝 들이대고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눈이라도 좀 가려주지... 바로 눈앞에서 두 총각이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 살피는 그 순간 나는 백설공주가 되어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총각들이 작진 않은데 내 침대가 높아서 더 그랬다 ㅋㅋ
갸우뚱거리는 표정들에 살짝 의심(?)이 들려던 찰나 중년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럼 그렇지. 덴티스트 선생님이 따로 계셨군요. 다행이다...
그런데 총각들이 자기네끼리 할 수 있단다. 그래서 선생님은 다시 나가셨다. 왜 내 의견은 아무도 안 물어보나요...
"아래쪽 사랑니는 통증이 원래 가끔씩 있었고요, 그래서 예약을 잡은 게 다음 주거든요. 근데 어제저녁에 통증이 너무 심해졌고 심지어 위쪽 사랑니까지 아팠어요."
그냥 둘 다 빼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시간 관계상 오늘은 하나밖에 못 뽑을 것 같단다. 고민할 시간에 두 개 다 빼줬음 됐을 텐데 엑스레이를 찍어서 확인하느라 한 시간 가까이 낭비했다. 그런데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도 별 도움이 안 되었나 보다. 자꾸만 진짜로 아랫니가 더 아픈 게 맞냐고 묻는다.
결국 지들 마음대로 윗니를 먼저 뽑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더 아픈 건 아랫닌데요?"
"진통제를 처방해 드릴게요. 다음 주에 만나는 덴티스트를 위해 소견서도 써드리고요."
엑스레이 사진도 주겠다고 하더니 화질이 너무 희미해서 자기네도 웃기는지 웃더라 허허... 잘 보이지도 않는데 휴대폰으로 화면을 찍어가란다...
네...
한참 후에서야 윗니 발치를 시작했다.
두 젊은 선생님 모두 경험이 한참 부족해 보였지만 큰 장점은 매우 신중하고 배려가 깊었다는 점이다.
내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마취주사를 계속해서 더 놔주었다ㅋㅋ 결국 원래 용량보다 훨씬 더 많이 놨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보통 마취 주사를 놓고 나서 10분 정도 기다리지 않나? 주사를 놓자마자 바로 발치를 시작해서 초반에 더 아팠던 것 같은데 나중엔 마취 효과가 퍼져서 얼굴 전체에 감각이 사라지는 듯했다.
두 사람은 생각처럼 잘 되지 않던지 석션과 발취 역할을 몇 번이나 서로 바꾸었는데 강력한 마취 효과 덕분에 무섭지는 않았다. 아마 나보다 이 두 사람이 더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서로 격려하고 조언해 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몰입해 버렸다ㅋㅋ 멋진 청년들이었군!?
마침내 사랑니가 쑤욱하고 뽑혀 나왔을 때는 나보다 이들이 더 좋아하는 듯도 했다.
"이 뽑은 거 보실래요?"
내가 무슨 출산했냐고ㅋㅋㅋ 그래요... 얼마나 잘생긴 이가 나왔는지 좀 봅시다...
아직 다 안 끝났는데 내가 너무 감격스럽게 이를 쥐고 있으니 나더러 집에 가져가라며 작은 봉투에 소듕히 이를 담아주기까지 했다. 몰랐는데 사랑니 양옆에 충치가 있었네. 이러니 그렇게나 시렸지...
잠시 후 발취한 잇몸을 꿰매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구석이라 잘 닿지가 않는다며 애를 먹었다. 마침내 "가위"라고 요청하는 말에 옆에 보조하던 총각이 "이제 이것만 자르면 마담은 자유예요." 라며 가위를 내 입안에 들이댔다.
싹둑
근데 안 잘렸다.
싹둑싹둑 싹둑싹둑 여러 번 시도를 하는데 가위가 계속 안 들었다.
나는 순간 푸웁-하고 웃어버렸고 심각하게 꿰매던 총각도 따라 웃었다. 그는 진료실 안 서랍을 다 뒤지더니 두 번째 가위를 찾아서 들고 왔다. 근데 그것도 안 들었다.
싹둑싹둑 싹둑 쓱싹쓱싹
"그거 칼인가요?"
내 말에 둘 다 웃음이 또 한 번 터졌다.
결국 그는 옆진료실로 가위를 빌리러 나갔다. 아직 내 잇몸에 연결된 실을 쥐고 있던 총각이 이 진료실에 있는 가위는 다 갖다 버려야겠다며 농담을 했다.
아무튼 결국 어렵게 구한 세 번째 가위로 실을 잘랐다.
잠깐 혀로 꿰맨 부분을 체크하다가 나는 웃음이 또 터졌다. 바느질이 이게 뭐냐고요 ㅋㅋㅋ 실밥이 입안으로 길게 늘어져 있잖아요 ㅋㅋㅋ
내 반응에 가위 총각이 다시 입안 실밥을 좀 정리해 주겠다고 나섰다. 성격은 세상 세심한 듯하다. 가위날과 바느질 실력이 안 따라줄 뿐.
"실밥이 녹는 데는 2주 정도 걸릴 거예요. 그전에 실이 탈락해도 자연스러운 거니까 당황하지 마세요."
입안에 여전히 기다란 실밥이 이리저리 씹히고 있었다. (결국 그 실은 녹기도 전에 음식물과 함께 일주일도 안 돼서 사라졌다.)
진료실 안에 입 헹구는 곳이 없어서 침을 못 삼키고 일단 참았다. 이따 화장실에 들러야지...
잠시 후 초반에 들어왔던 중년의 덴티스트 선생님이 다시 오셔서 별문제 없었는지 확인하셨다. 두 총각들은 다 끝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고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도 "완벽했어요!"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왜 때문에 나도 한 팀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진료실을 나오는데 작별인사를 하며 내가 양손을 몇 번이나 흔들었는지 모른다. 그새 이 젊은 선생님들한테 정이 들어버렸네.
나중에 닭강정 먹으러 시장 한번 와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