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하늘은 유튜브 쇼츠 같아."
"뭐?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평소에도 사차원끼가 있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카페에서 공부를 하다 말고 창 밖을 보더니 흰소리를 시작했다.
"생각해 봐. 여름엔 습도도 높아서 구름도 크고, 장마 때문에 먹구름도 자주 있는 데다가 태풍까지 종종 온단말이야. 엄청난 하늘들이 휙휙 지나가는데 막상 여름이 지나고 나면 어떤 하늘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 마치 유튜브 쇼츠처럼."
항상 그렇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저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쟤는 어떻게 저렇게 사고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듣다 보면 또 그럴듯해서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만약, 내가 이 얘기를 하기 전에 너한테 여름 하늘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넌 분명히 이렇게 대답했을 걸? 하늘이 하늘색이지 뭐야!"
내가 생각해 봐도 너무 맞는 말이라 남자친구 놈의 등짝을 퍽퍽 치고는 깔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친구는 등짝 맞는 소리가 예상보다 커서 당황하다가, 자기도 카페에서 갑자기 등짝 맞는 소리가 나고, 주인공이 본인이라는 게 웃겼는지 웃는 나를 보고 한참을 같이 웃고 말았다. 공부하는 분위기의 카페 안이라 눈치가 보여 서로 입을 막고 끅끅대면서 웃다 보니 배도 아파오고 눈가엔 눈물까지 고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휴지로 쓱 닦으면서 밖으로 보이는 하늘색 여름하늘을 보다가, 순간 내가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린 게 언제였더라 싶었다.
작년 여름은 정말 더웠다. 집에서 장례식장까지 딱 15분을 걸었는데 땀이 비 오듯 나서 옷이 젖어버릴 정도였다. 쨍쨍하다 못해 푹푹 찌는 날씨에 하늘색이 햇빛으로 물들어 연노랑색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옷도 목아래부터 검은색 깔맞춤 착장이라 내리쬐는 족족 햇빛을 흡수하며 걸어갔다. 뽈뽈거리면서 광합성하는 식물처럼 움직이는 팔, 다리를 끌어가며 힘겹게 엄마와 함께 장례식장 1층에 도착해 문을 여니 그제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져 살 것 같았다. 빈소가 지하 1층에 있어서 사람이 없나 싶었는데 첫째 날이라 그런가 내려가봐도 전체적으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제2빈소가 어디에 있는지 고개를 돌려 찾아보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고모가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이고, 왜 이제와! 승준이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왜 이제와!"
고모는 한참을 엄마 양팔을 잡고 울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리고 엄마가 기억하는 친가, 강 씨 집안은 형제들끼리 아주 친하지도 그렇다고 남남은 아닌 데면데면한 그런 사이였다. 데면데면한 가족관계가 그렇듯 친가는 명절에만 보는 관계고 명절에 봐야만 하는 관계였다. 그렇기에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시점부터 아빠는 매번 설과 추석에 가족 전부를 데리고 큰집으로 갔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가장 먼저 큰집에 도착해서 부모님은 일을 도왔고 나와 동생은 가장 작은 방에 갇혀 나름대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작은 방에서 보내는 무의미한 시간들이 싫었고, 그래서 큰집이 싫었다. 방에 한, 두 시간 있다 보면 차례로 둘째 작은 아버지, 셋째 작은 아버지, 그리고 고모 순으로 하나둘씩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둘째, 셋째 아버지는 자식들을 데리고 올 때도 있고, 혼자 오실 때도 있었지만 고모는 올 때마다 아들을 같이 데려왔다. 고모의 아들, 그러니까 승준오빠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도착하면 어른들에게 바르게 인사하고 작은 방으로 들어와 나보다 6년 먼저 살고 있는 사람의 일상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풀어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만약 고모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승준오빠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고 더 친해지려고 했을 것이다.
아주 어릴 때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우리 가족 구성원은 명절에 모두 큰집으로 가는 반면, 작은 어머니들은 왜 오지 않으시는지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빠는 언제나 바빠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혹은 아프셔서 못 오신다고 답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작은 어머니들은 명절에 사정이 있거나 아프프셨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 해, 설이 가까워지는 1월에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웠고, 아빠는 나와 동생만 데리고 큰집으로 갔다. 친가엔 딸이 귀했다. 아빠에게 듣기로 아빠 위로 3대인가 4대에 걸쳐 아들만 있다가 아빠 항렬에 와서야 딸이 하나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딸이 고모였다. 강 씨 집안 막내딸은 거침이 없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밀어붙이는 마치 여장부와 같은 여자였다. 언젠가였던가 큰아빠들을 밥상머리에서 눌러버리며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에 멋있다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고모는 돈을 빌려갔을 때에도, 엄마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망신 줬을 때에도,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말할 때에도, 언제나 당당했다. 아빠는 엄마 앞에서 고모를 욕하면서도 막상 고모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엔 이제 명절에 엄마가 외가로 가는 게 당연해졌다. 그즈음부터 고모를 명절에 보지 못했다. 작은방에 있다 보면 이따금씩 큰아버지들과 아빠가 고모를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돈이 어쩌고, 사람이 어쩌고. 나는 명절이 싫었다.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하면서 명절에 학교 핑계, 약속 핑계를 대고 본가에 가지 않았다. 자연스레 아빠는 남동생만 데리고 친가에 갔으니 큰집엔 큰어머니와 그 집 며느리 외엔 전부 남자들만 모였던 셈이다.
졸업을 앞두고 취직준비가 한창이었던 작년 여름, 오늘은 어떤 카페에 가볼까 즐거운 상상 하며 집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아빠에게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
"아빠, 무슨 일이야?"
"주소 찍어줄 테니까 엄마랑 같이 준비하고 이쪽으로 와. 승준이 알지? 고모 아들. 오늘 새벽에 갑자기 심장이 멈췄대. 아빠는 미리 가있을 테니까 천천히 와!"
까마득한 기억 너머에 있던 유쾌한 대학생이 떠올랐다. 준비했던 옷과는 전혀 다른 새까만 옷을 찾아보며 엄마에게 본가로 갈 테니 같이 가자고 연락하면서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레 장례식장에 정말 갈 거냐고 물어봤다.
"얘, 당연히 가야지. 무슨 소리니. 얼른 준비하고 와!"
당신의 팔을 잡고 오열하는 고모를 따라 엄마도 같이 함 참을 울었다.
부의금을 내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인사를 나눌 때도 나는 장례식장에서 홀로 부유하는 이방인 같았다. 오랜만에 본 큰아빠가 나를 안고 등을 토닥일 때에도, 조카들이 울먹이는 목소리리로 인사할 때에도 나는 눈물은커녕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속으로 여기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까지 슬플 수 있지?라는 의문이 생기기까지 했다. 긴 인사를 마친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식탁에 앉았는데 어쩌다 보니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게 되었다. 먹는 와중에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승준오빠를 바라보다가 문득 얼굴에 피가 몰리고 눈가가 촉촉해져 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정말로 슬프지 않은 것 같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기 전에 휴지로 쓱 닦고선 어떻게 어떻게 식사를 마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부모님의 인사와 담소를 나누시는 동안 물끄러미 정면을 바라보았다. 얼마 안 되는 사람들끼리 웃고, 울고, 끊임없이 대화가 들려오는 와중에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니 새록새록 유쾌했던 청년과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승준오빠는 작은 방에 들어올 때마다 항상 믹스커피를 들고 들어왔었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향 옆에 누군가 믹스커피를 이미 올려놨다. 향을 피울 땐 몰랐었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낯선 장례식장에서 향 옆에 놓인 믹스커피에서 친근함을 느낄 줄이야. 아빠는 장례식장에 머무른다고 했지만 나는 집으로 갈 준비를 했고 눈치를 보는 엄마를 재촉해 데리고 나왔다. 빈소에 있을 땐 몰랐는데 1층으로 올라오니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편의점에서 사 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엄마가 장난스레 물었다.
"어차피 화장도 다 번졌는데 집까지 뛰어갈까?"
"콜."
낮은 회색 구름 위로 또 다른 구름 그위엔 다시 회색하늘에서 끝없이 내리는 빗방울들을 뚫고 열심히 달려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를 바라보는데 꼴이 말이 아니다. 장례식장에 갈 땐 땀에 푹 절었는데 이렇게 아주 제대로 젖을 줄 알았다면 불쾌해하지도 말 걸 그랬나 싶다. 쫄딱 젖은 엄마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미역처럼 찰싹 붙어 있는 모습이 그리고 조금 전까진 심각한 표정이었던 우리가 쫄딱 젖어 울상인 표정이 너무 웃겨 엄마를 보면서 깔깔 웃었다. 엄마는 웃는 나를 딸이 정신이 나갔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현관에서 같이 한 동안 배꼽 빠지게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