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 외래 진료실에서 마주한 반팔을 입은 청소년 친구 팔목에는 빨간 선명한 상흔이 여럿 보입니다. 학교를 가면 쉬는 시간에도 덩그러니 혼자 있는 상황이 영 익숙해지지가 않고 점심을 혼자 먹고 싶지 않아서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의 감정 흔적을 보며 쉽사리 말을 꺼내기 어려워 “아프지 않았어?”라는 말을 건네곤 합니다.
많은 부모님들, 학교 선생님들, 정신건강 관련 종사자 선생님들께서 질문을 합니다.
자해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자해를 또 했어요. 어떻게 하면 멈출 수가 있지요?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며 고통을 가하는 비자살적 자해(non-suicidal self-injury)는 역설적으로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사춘기 청소년의 감정 반응은 매우 빠르지만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은 아직 배워가는 단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회·문화적으로 이 시기 청소년에게 학업과 성취를 강조하곤 합니다. 그럼 우리 아이들은 슬픔, 분노, 좌절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표현하고 해소하는 방법을 어떻게 경험하고 배울수 있을까? 저는 종종 이 같은 의문을 품곤 합니다.
아이들에게 자해를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질문을 하면 “감정이 폭발했어요” “무슨 감정인지 모를 다양한 감정들이 휘몰아쳤어요”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어요”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자해행동은 이렇게 아이들의 감정이 격앙될 때, 부정적 정서가 해소되지 않을 때, 스스로를 무가치하다 여길 때처럼 심리적 괴로움을 줄이려는 수단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해를 처음 접한 가정과 학교에서 어른들은 때론 충격을 받기도, 때론 죄책감을 갖곤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다시는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이들도 어른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조절하고 통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종종 실패하곤 합니다. 어른으로 살아온 시간이 오래된 우리는 학교 생활에서 친구와 다투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수많은 시험을 치르며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매일 아침 일찍 학교를 가서 긴 시간 수업을 듣는 게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었는지, 매년 반이 바뀌어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낯설었는지를 점점 잊어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안 그래도 마음이 힘든데 어른들의 실망하는 모습을 보며 더 죄책감을 느낄 우리 아이들에게 “왜 그랬니?” 라고 말하기보다 “힘든 일이 있었니?” “그때 어떤 기분이었니?”라고 물어본다면 어떨까요?
우리 아이들이 자해를 멈추게 하기 위한 방법은 하지 말라는 금지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화하며 감정의 언어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픔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아픔에 대해서 소통하고 단단하게 견디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아이들 팔목에 감정 흔적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지윤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위 글은 헬스조선의 연재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의 [자해를 멈추는 말, “많이 힘들었니?”]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