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연출 함께 공부할까요? 28화
✅ 오락성이 뛰어난 공연
✅ 지적 행위의 즐거움을 주는 공연
✅ 사회 변혁의 의지를 담은 공연
공연을 보다 보면 어떤 작품은 “좋은 공연이었다”는 인상을 남기지만, 어떤 작품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물론 개인의 취향과 감상은 다르다. 하지만 이런 구분을 짓게 만드는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을 근거로 좋은 공연과 그렇지 않은 공연을 나눌 수 있을까?
1. 오락성이 뛰어난 공연
연극에는 제의성, 현장성, 휘발성 등 다양한 특징이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오락성이다. 연극은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모두 즐거운 놀이에 함께 참여한다는 기쁨을 선사해 준다. 연극의 오락성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이 종교적 의례에서 출발했지만, 곧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공적 오락의 장으로 발전한 데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연극은 공동체가 함께 즐기는 집단적 놀이의 성격을 지녔으며, 당시에는 유일한 엔터테인먼트라 할 수 있었다.
연극의 오락성은 단순히 "재미있다"는 차원을 넘어, 관객이 몰입과 해방을 경험하는 과정에 있다. 비극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도 일종의 오락적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오락성은 웃음과 유희에서 비롯되는 오락성이다. 이는 주로 희극, 소극, 풍자극, 뮤지컬 등이 제공하는 직접적 쾌감을 의미한다.
또한 연극이 주는 가장 큰 오락성은 바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에서 비롯된다. 삭막하고 즐거움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일상 속에서 연극과 뮤지컬은 그 자체로 청량제가 되어 준다. 공연이 주는 환상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며, 시청각적 쾌감을 제공한다. 그 순간만큼은 현실의 무거운 짐을 잊게 해준다. 어쩌면 술이 하는 역할과도 비슷하다. 공연예술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동시에 포도주의 신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지적 행위의 즐거움을 주는 공연
공연을 보다 보면 다소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인물들이 나름의 놀이를 하며 고도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쾌락적 웃음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도를 기다리며>는 관객 각자에게 “나에게 고도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만든다. 이를 통해 관객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나아가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를 확장하면서 지적 즐거움을 얻는다.
또한 이런 공연에서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작품 안에서 드러날 때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컨대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람한 연극 <유령>은 불교 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空)’ 사상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마침 불교 철학을 공부하던 중이었기에 이 내용이 무척 반가웠고, 작품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공연을 보다 보면 이런 순간을 종종 경험하게 되는데, 그때 느끼는 반가움 역시 공연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3. 사회 변혁의 의지를 담는 공연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불만족스러운 지점을 마주한다. 가족이나 직장에서 겪는 사소한 문제부터 경쟁적 입시 제도, 노동의 디스토피아, 정치적 횡포 등 사회의 부조리는 차고 넘친다. 그래서 누구나 이런 사회가 조금은 바뀌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마련인데, 연극은 기꺼이 그 목소리를 담아내는 장르다.
물론 다른 예술 장르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다. 피카소는 예술가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술가는 정치적 존재이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픈 일들, 열정적인 일들, 즐거운 일들에 끊임없이 깨어 있으며, 그러한 것들에 따라 자신을 형성해 가는 사람”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연극은 그 자체로 정치적 발언이 될 수 있다. 특히 고대 그리스 비극은 그러한 성격이 강했다. 공연이 정치적일 수 있는 이유는, 소수의 관객이 마치 ‘작당모의’를 하는 듯한 밀도 높은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특히 1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할 때 이런 체험은 배가된다. 일주일간 공연을 한다 해도 고작 700명의 관객만이 그 내용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연극은 수백만 관객이 드는 영화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물론 창작자 입장에서는 정성스레 준비한 공연이 겨우 수백 명의 관객에게만 닿는다는 사실이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수의 관객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함께 대화하고 사유하다 보면 작은 영향력이 큰 영향력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연극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연극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은 창작자에게도, 관객에게도 필요하다.
따라서 난해하고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공연을 ‘안 좋은 공연’이라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프로그램북, 다른 사람들의 리뷰, 전문가의 비평을 참고해 작품이 전하려는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본다면, 공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제작/기획: 예술도서관 아카데미
글쓴이: YEDO Master. DUH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