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연출 함께 공부할까요? 30화
✅ 그리스 비극작가 - 극작가가 곧 연출가
✅ 괴테 - 최초의 연출가라 불린 문인
✅ 작센 마이닝겐 공작 - 현대적 연출가의 탄생
“도대체 최초의 연출가는 누구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름을 찾는 일이라기보다, ‘연출가’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되짚어보는 과정입니다. 오늘은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괴테, 그리고 작센 마이닝겐 공작까지, 연출가 개념의 진화를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려 합니다.
1. 그리스 비극 - 극작가가 곧 연출가이던 시절
연극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연출가(Director)’라는 직업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극작가가 곧 연출가였습니다. 아이스킬로스(Aeschylus), 소포클레스(Sophoc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와 같은 비극 작가들은 단지 대본을 쓰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쓴 작품을 직접 무대화하고, 배우와 합창대의 움직임을 지도하며, 무대 장치와 의상까지 관리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연출가와 프로듀서, 심지어 무대감독의 역할까지 겸한 셈이지요.
당시의 연극은 디오니소스 제전이라는 종교적 의식의 일부로서, 합창대의 운용과 제의적 공간 구성이 핵심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스킬로스는 배우의 수를 한 명에서 두 명, 나아가 세 명으로 늘림으로써 극적 대립과 구성이 풍부해졌다고 평가받습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극작의 혁신을 넘어, 무대 위의 구조와 시각적 효과까지 고려한 연출적 발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극작가는 자신이 쓴 작품을 직접 배우들과 함께 완성시키며 공연 전체를 지휘했습니다. 따라서 “최초의 연출가”를 특정 개인으로 지목하기는 어렵지만, 그리스 비극의 작가들이야말로 연출가 개념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극작가=연출가’의 시대였던 것입니다.
2. 괴테 - 최초의 '연출가'라 불린 문인
시간을 훌쩍 건너 18세기 말 독일로 가보겠습니다. 이 시기에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바이마르 궁정극장을 이끌며 새로운 형태의 연극 운영을 시도했습니다. 괴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문호이지만, 한편으로는 “최초의 연출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1791년부터 1817년까지 그는 바이마르 궁정극장의 감독(Intendant)으로 재직하며, 극장의 운영 전반을 책임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쓴 희곡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배우의 동선, 무대 구성, 조명, 리허설 방식까지 세밀히 지시했습니다. 또한 배우들이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하지 않고, 작품 전체의 조화 속에서 연기하도록 지도했습니다. 이처럼 괴테는 개별 배우의 표현보다는 작품 전체의 미학적 균형을 추구했습니다.
물론 괴테 이전에도 극작가가 연극을 지휘한 예는 많았지만, 괴테는 “연극을 문학이 아닌 종합예술로 통합하려 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그의 작업을 통해 비로소 연출가가 극작가와 배우, 무대, 관객 사이를 조율하는 독립된 예술가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괴테가 최초의 연출가다”라고 단정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전문 연출가’ 개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연출가라는 역할을 제도적으로 수행한 초기형 연출가, 즉 “연출가라는 직업의 씨앗을 뿌린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3. 작센 마이닝겐 공작 - 현대적 연출가의 탄생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연출가’라는 직업의 형태를 완성시킨 인물은 바로 **작센 마이닝겐 공작, 게오르크 2세(Georg II, Duke of Saxe-Meiningen, 1826~1914)입니다.
그는 독일의 마이닝겐 공국에서 궁정극단(Meiningen Ensemble)을 창설하고, 직접 연출을 맡았습니다. 그는 극단의 모든 요소—배우의 움직임, 무대장치, 조명, 의상, 군중 배치—를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마이닝겐 공작은 연극이 “집단 예술”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스타 배우 중심의 공연을 지양하고, 모든 배우가 균형 있게 협력하는 앙상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또한 역사적 고증에 기반한 세밀한 무대 디자인과 의상, 실제와 같은 소품 사용을 통해 사실적 무대(realistic stage)를 구현했습니다.
그의 연극에서는 군중 장면조차도 우연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물의 동선과 시선, 그리고 무대의 균형이 철저히 계산되어 있었지요. 그의 극단은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공연했고, 젊은 연극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 막스 라인하르트 등 이후의 연출가들이 모두 그로부터 “연출의 시대가 왔다”는 자각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연출가는 단순한 조정자가 아니라, 무대 전체를 하나의 시각적·시간적 구성물로 창조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마이닝겐 공작의 등장은 곧 현대 연출가 개념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그는 무대를 ‘하나의 살아있는 회화’처럼 설계하며, 연출가의 비전이 공연 전체를 지배하는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연출가 중심의 연극 제작 시스템”은 바로 이 시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최초의 연출가’는 결국 한 사람의 이름으로 정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스 비극의 작가들이 연출가의 역할을 시작했고, 괴테가 그 개념을 제도화했으며, 마이닝겐 공작이 그것을 현대적 직업으로 완성시켰습니다. 연극의 역사는 언제나 ‘공동 창작’의 역사입니다. 그 속에서 연출가는 점차 독립된 예술가로 성장해왔습니다. 따라서 “최초의 연출가”를 묻는 일은 “연극이 어떻게 협업의 예술이 되었는가”를 되돌아보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질문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연출가가 지닌 책임과 창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제작/기획: 예술도서관 아카데미
글쓴이: YEDO Master. DUH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