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 비즈니스
최근 만난 분 중, 나처럼 이 아이템, 저 아이템을 많이 생각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자신은 산업 카테고리가 아니라 욕망을 기준으로 아이템을 나눠보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도 욕망 기반의 비즈니스에 대해 생각해봤고, 그에 대한 글을 연재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주제는 외로움이다.
세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 시대에, 외로움이 현대인의 고질병으로 대두되는 것은 관계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의 과잉 때문에 온다고 한다. SNS 친구는 많아도, 당장 내 치부와 결핍을 들어줄 사람은 없고, 전화번호부에 번호는 많은데 전화 걸 사람은 없는 느낌이랄까.
대 인플루언서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크리에이터가 각광을 받고 사람들은 SNS 팔로워 수에 연연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점점 더 외로워지는 사회에서는 관계의 양적 확장보다 질적 확장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 어쩌면 행복에 보다 필수적인 요건은 나를 '팔로우'하는 수많은 사람들보다, 고민을 나눌 수 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줄 한 사람이 아닐까. 여기서부터 나의 소울메이트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데이팅
소셜 디스커버리, 친구 찾기 등 여러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요즘의 데이팅 앱들은 가벼운 만남부터 진지한 관계까지 다양한 1:1 관계의 니즈를 충족시켜준다. 데이팅 앱이 돈이 되기 때문인지, 취향 기반, 목소리 기반, 위치 기반, 학교/직장/자산 조건, 외모 평가 기반, 돌싱/종교인/동성애자를 위한 데이팅 등 정말 별별 데이팅 앱이 다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데이팅 앱 사용자는 하나의 앱만 쓰지 않기 때문에, 레드오션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업자들이 유의미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이라거나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적 한계 때문일지, 여전히 데이팅 앱을 옵션으로 두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모임 등에서 자만추를 추구한다.
-모임
데이팅 앱이 만남까지의 퍼널과 과금 체계가 길고 지난한 것과는 반대로, 모임 앱은 참가 신청만 하면 바로 얼굴을 맞대고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놓고 외로움을 해결하러 오시라고 하기는 애매하니, 콘텐츠가 미끼 역할을 하며 지적 욕구나 자기 효능감 등 다른 욕구들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역시 오프라인 모임의 가장 핵심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공간과 콘텐츠를 사업자가 준비해놓고, 판매되는 콘텐츠에 좀 더 관여하는 트레바리 같은 서비스도 있는가 하면, 유저들이 직접 모임을 개설하는 플랫폼 형태의 소모임이란 앱도 있다. 그리고 두 장점을 혼합해놓은 크리에이터 클럽 같은 서비스도 있다.
-유사연애
꼭 외로움을 채워줄 대상이 내 눈 앞에 있어야 할까? 학업과 나이 등의 이유로 만남 서비스의 이용이 어려운 10대나, 외모 등 기준에 치중된 데이팅 시장과 맞지 않는 사람들, 이미 결혼을 하였지만 외로운 사람들도 외로움을 채우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데이팅과 모임 서비스로 채워질 수 없는 고객군은 해결되지 않은 갈망을 유사 연애 시장에서 채우기도 한다.
아이돌에 대한 팬심이 짝사랑에 이르게 되었을 때 아이돌 팬픽, 빙의 글 등으로 외로움을 해소하는 것 등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 외에도 로맨스 소설부터, 하트 시그널 등의 리얼리티 쇼, 스푼 라디오/하쿠나/아프리카 TV 등 라이브 서비스와 미연시에 이르기까지 온갖 콘텐츠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유사연애의 층위가 있다. 연애를 포기하는 젊은 세대가 많은 일본에서 훨씬 다양하고 앞서 있는 유사 연애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외로움에 쉽고 빠른 해결책이 오히려 사람이 아닌 좋은 콘텐츠일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반려동물
1인 가구도 늘고, 아이를 낳지 않는 가정들도 늘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수요도 나날이 늘고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 아껴주면서 행복해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사람의 외로움 해결에 있어서 꼭 진짜 사람이 옆에 있어줘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은 반드시 다뤄져야 할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채우기 정말 어렵다. 글램 대표님 말처럼 외로움이 의식주처럼 누구에게나 해결 가능한 수준이 될 수 있을까? 미래에는 기술이 발전되어 AR/VR이 멀리 있거나 떠나버린 소중한 사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줄 지도, AI가 영화 ‘그녀’에서 처럼 나와 사랑을 나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이 욕구에 대해서 깊고 진지하게 이해하고, 고민하는 자세일 것 같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단순히 돈을 벌겠다 보다는 ‘외로움’이라는 근원적 욕망에 대한 해결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창업가들이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외로움이 하루빨리 정복되어서 누구나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