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BAR Collection
나는 원래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사람이었다.
얼음 가득한 컵을 손에 쥐고 다니는 게 여름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대청소를 하고 나서부터 그게 달라졌다.
깨끗해진 집 안에서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시원하지 않고,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차가웠다.
그날 이후로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싶어졌고,
그중에서 가장 간단해 보이는 게 ‘차’였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보리차나 옥수수차를 마셨다.
그런데 다이소에 돌돌이를 사러 갔다가
천 원짜리 캐모마일 티백을 보고,
‘이건 흔하디흔한 차니까 나랑 잘 맞겠지’ 싶어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하지만 집에서 마셔보니 달달한 풀 냄새가 확 올라왔다.
한 모금 마시고는 바로 ‘정말 별로다’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였다.
도대체 나한테 잘 맞는 차는 뭘까 싶어서,
이상하게 차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냥 한 종류만 사기 싫어서 컬렉션을 샀다.
이왕 시작한 김에 여러 맛을 한꺼번에 비교해 보고 싶었다.
이 박스엔 캐모마일, 페퍼민트, 복숭아, 홍차, 그리고 뭔가 이름이 긴 차까지 들어 있었다
이 중에 하나쯤은 나랑 맞겠지.
컬렉션 중에서 제일 기대했던 건 복숭아 홍차였다.
복숭아 향은 누구에게나 안전한 선택 같으니까.
하지만 이 티백은 나한테 복숭아 향도 지독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첫 번째 차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때 복숭아 향수나 샴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향이 방 전체를 잠식하던 기억이 있는데,
이 차는 정확히 그때의 향을 다시 꺼내왔다.
모두들 복숭아라고 부르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건 샴푸향이다.
이건 복숭아 차가 아니라 뜨겁게 데운 샴푸 액체다.
나는 이걸 차로 인정할 수 없다.
이 둘은 따로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
나에게 이런 허브차들은 결국 같은 맛, 달디단 풀 맛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Akbar의 캐모마일과 페퍼민트는 유달리 달다.
마치 설탕을 풀어 넣은 것처럼 단맛이 돈다.
그게 신기하긴 했다.
차인데 왜 이렇게 단 걸까 싶어서 몇 번이나 향을 맡아 봤다.
하지만 아무리 신기해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달기도 한 풀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던 실론티는 편의점 냉장고 속,
아무도 찾지 않는 그 캔 음료였다.
그래서 이 티백을 처음 봤을 때도 별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실제 실론티는 달랐다.
블랙티 치고 향이 약하지만, 그렇다고 존재감
이 없는 건 아니다.
묘하게 깔끔하고, 혀끝에서 향이 부드럽게 사라진다.
레이디 그레이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오렌지 향이 섞이지도 않지만
딱 그 담백함이 좋았다.
Akbar 컬렉션 중에서는 단연 가장 마음에 든 티였다.
이건 나중에 따로 한 박스를 살 의사가 있다.
조용히 확신이 생긴 맛이다.
얼그레이는 너무 유명하다.
블랙티 중에서도 거의 대표격이다.
하지만 나는 베이킹할 때 빼고는 이 차를 잘 마시지 않는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내 취향이 아니다.
나에게는 향이 조금 과하다.
나는 묵직한 향이 오래 남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그레이는 언제나 내 컵에 잠깐 머물다 간다.
존재감은 강하지만,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차를 통해서
내가 묵직한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가볍게 슬쩍 머물다가 깔끔하게 사라지는 향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내 취향을 오늘도 나는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