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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Apr 18. 2023

왜 주인공으로 살기 어려울까?

신동흔,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를 읽고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저자는 말한다. 숲처럼 거친 세상에 내던져진다면, 있는 힘껏 길을 찾아가라고. 백설공주와 바리데기가 그랬듯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삶을 살라고. 그렇다. 많은 주인공이 길을 떠난다. 위험해도 떠나야 살 수 있고, 나를 도와줄 동료를 만난다. 자기 삶을 세울 수 있다. 길을 떠난 주인공만이 멋진 결말을 이루어 낸다. 그런데 잊고 있는 게 있다. 우리는 본래 주인공으로 태어난다. 떠나야하지만, 떠나야만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니다. 정말 주인공인가, 스스로 물어보지만 그렇다, 라고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는다. 주인공으로 살기 어렵다. 이상하다. 나는 이미 주인공인데, 그렇게 사는 게 어렵다니.


칭찬 받기를 매우 좋아하는 아이였던 나는 초등학교 내내 착한 어린이상을 받았다. 스스로 착하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생각이었다. 그들은 나를 걱정하기도 했다. 너무 조용하고, 감정 표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성격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부정하며 적극적이고 활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춘기가 되고난 후에야 알았다. 다른 사람이 정한 틀에 맞추는 일은 불행하다는 사실을.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상처받지 않아도 되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돌아보니 주인공으로 태어났지만 조연으로 살았다. 어쩌면 ‘착한 어린이상’은 주인공에게 주는 상이 아닐지 모른다.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조연에게 주는 보상일지도.


사춘기는 이성(異性)에 눈뜨는 시기다. 이성(理性)을 알아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세상과 자신을 알고 싶어 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다 알게 된다. 인간이란 원래 외롭다는 사실을. 자기 삶은 오롯이 스스로 이끌어야 함을. 이때 외로움과 불안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찾는다. 조연이 아닌, 주인공답게 살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기회마저 없다. 치열한 입시경쟁에 휘말려 외로움과 마주할 시간을 잃어버린다. 경쟁이라는 거대한 울타리에 숨는다. 그렇게 성인이 된다. 주인공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채로.


헬(Hell)조선이라는 말이 생겼다. 지옥 같은 한국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내던져진 숲은 거칠다 못해 지옥이라 불린다. 숲은 한 줄기라도 빛이 있다. 지옥은 온통 어둠뿐이다. 성인이 되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진다. 여전히 정답이 있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틀리다 한다. 틀리다고 눈치를 주니 선택권이 없다. 사춘기 때처럼 울타리 안에서 맞춤형 인간이 된다. ‘착한 어린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열심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산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지옥이라 비웃으면서. 


저자가 말했듯 우리는 떠나야 한다.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다. 단지 생각이 많고 몸이 무거워서 일까. 빛이 없는 곳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길을 찾을 수도 없고, 떠났다 해도 의미 있는 무언가를 보지 못한다. 저자가 말했듯 그러지 못한다면, 떠남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둠을 밝혀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어쩌면 빛은 자신일지 모른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닐까. 사춘기 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 외로움과 대면해야 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주인공임을 인지하고, 그렇게  살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스스로 빛이 되면 지옥 따위가 무섭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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