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E nudge 이넛지
Aug 03. 2022
저전력 엄마 모드
조력자없는 슈퍼원더우먼은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빠릿빠릿하게 잘 돌아가던 내 신경망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저전력 모드로 바뀐다. 아이들을 돌보는 육아며, 살림이며, 가족 구성원으로서 나는 뭔가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가진 원더우먼처럼 보이는 여성들을 유심히 본다. 나처럼 친정 엄마에게 많이 의지하는지, 남편이 얼마나 육아를 도와주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녀에게는 어떤 비결이 있는지 궁금했다.
슈퍼원더우먼의 가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조력자없는 진짜 슈퍼원더우먼은 찾기 힘들었다. 결국 '조력자없는' 슈퍼원더우먼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나만의 가설을 설정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 편하자고 설정한 가설인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똑부러지는 여성도 아이가 생기면 허둥지둥하기 마련이며, 그들 뒤에는 친정 엄마 또는 시부모님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식기세척기, 건조기, 스타일러 등 각종 첨단 가전제품이 계속 나온다한들, 엄마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는다는게 신기했다. 상은 차려야하며, 그릇은 치워야하고, 건조된 빨래는 정리해서 서랍에 넣어야 하며, 청소기는 돌려야 한다. 가전제품은 집안일을 분절화하여 일부 도와줄 뿐, 그 마디마디의 일은 사람이 해야한다. 마치 회사에서 업무에 AI를 도입할 때에도, 그 정의부터 마디 마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것처럼.
어쨌든 나는 슈퍼원더우먼은 아니지만, 변명해보자면 단지 하고 싶은게 많을 뿐이다. 일 외에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싶은데, 그 시간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해서 홀로 안달복달 하고 있을 뿐이다.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결혼도 하고 애를 둘이나 낳고 산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고 싶은게 많다는게 신기하다. 그리고 나의 욕심 때문에 집 안 두명의 조력자도 열심히 고군분투 중이다.
너 일 못하지?
이번 여름 휴가를 갔을 때, 나는 여전히 나사 하나 빠진 사람 같았고, 남편은 끝내 "너 일 못하지? 아니 어떻게 회사에서 일은 하는거야?"라며 버럭 화를 냈다. 회사에서 저런 말을 들었으면, 아마 머리뚜껑이 열려서 엄청나게 따져물었을텐데, 집에서는 저런 말을 들어도 내 자신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집에서는 모자란 사람이어서 너무도 당연하게 "어? 분명히 내가 찾을 때는 안 보였는데."라며 순한 양처럼 대꾸하고 만다.
아마 회사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네가 그럴리가!"라고 말했을 법한 상황이 집에서는 늘 펼쳐진다. 그들은 내가 절대 순한 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테니까. 그런데 상황이 바뀌면 그렇게 된다.
저전력 모드의 엄마 또는 아내가 되면 '다 내 탓이오.'라고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수순이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며 옥신각신하는 내가, 집에서는 180도 변해 맹구가 되어 있으니... 사람은 그렇게 살 길을 찾나보다.
통영에 아파트 사려고
며칠 전 엄마는 점심시간에 전화로 대뜸 말했다. "나, 통영에 아파트 사려고. 오늘 물건이 나왔다고 해서 계약하기로 했어." 서울-경기를 벗어난 적이 없는 우리 엄마가 통영에 아파트를 산다는 이야기를 하니, 나로서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통영에 아파트를 계약한대." 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발을 동동 굴렀다. 장모님 통영 가시는거냐며.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내가 집에 없는 것보다, 장모님이 집에 없는게 더 불안하다고 했다. 그렇다. 그녀는 고효율 모드로 엄마 대행 역할을 해주고 있는, 우리집의 진짜 엄마다.
저녁에 퇴근하고 상황을 살펴보니, 통영에 친한 친구 한명이 살고있는데, 그 아파트 아래층에 물건이 나와서 계약을 했다고 했다. 올해 여름 휴가도 같이 다녀올 정도로 친한, 나도 알고 있는 오래된 엄마의 친구다.
"엄마, 진짜 거기 가서 살거야?"
"70살 되면 가서 살아야지. 언제까지 내가 널 도와주니?"
아이들이 클 때까지 도와주시겠지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진정한 자립은 생각도 하지 않은 나를 일깨워주는 엄마의 선전포고에 놀랐지만, 엄마의 나이를 듣고나니 이내 미안해졌다. 아이들 나이만 생각하고, 엄마의 나이는 생각하지 않은 내 잘못이 컸다. 그리고 직장생활이 무슨 벼슬도 아닌데, 그녀를 그렇게 옭아매려고 했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진정한 자립
독립이라는 말을 쓰려면, 금전적인 지원 외에도 이렇게 외손주를 양육하는 지원까지 포함해서 자유로운가를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대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금전적인 지원에서는 벗어났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이렇게 양육의 지원을 받고 있으니, 난 오히려 엄마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셈이다.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 우리 엄마가 쉬고 싶은 나이, 내가 한창 일할 나이. 이 모든 것이 이렇게 겹치는 순간이 다가오고있다.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조력자없는 슈펴원더우먼, 아니 그냥 워킹맘은 존재하기 힘들다고, 가설을 참이라고 인정해야할까.
그녀의 선전포고는 그날밤 잠도 못 이루게 할 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남편 또한 밤잠을 뒤척이게 할만큼. 다들 이렇게 기우뚱기우뚱 하면서 사는 거겠지? 완벽한 답안지는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하면서 수정된 답안으로 맞춰가면서.
마음은 훨훨 날아다니지만 몸은 하루하루 힘들어서 주말에 어디 놀러가기 힘들다는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던 나에게, 어쩌면 그녀는 선전포고를 통해 진정한 자립을 일깨워주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딸을 키우는 현명한 엄마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