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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nudge 이넛지 Mar 08. 2023

토큰 빠진 토큰 증권

시작에 불과하다

아쉬운 가이드라인

금융위원회의 토큰 증권 가이드라인이 발표되고 많은 미디어 기사가 쏟아졌다. 가이드라인에 기반한 해석이 다양했고, 장미빛 기대나 환상이 많았다. 난 오히려 아쉬움이 많았다. 물론 분산원장 도입만으로도 의미를 둔다면, 그마나 낫다고 해야할까.


블록체인 대신 분산원장으로, 증권형 토큰이라는 용어 대신 토큰 증권으로 기재한 금융당국의 의도는 충분하다. 블록체인 기술을 신뢰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구조에서 서서히 테스트 해보겠다는 의미다. 기술이 아무리 혁신적이라 해도,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법은 기술을 따라갈 시간이 없기 때문에. 


특히 금융과 같이 규제가 심한 산업에서는 오히려 블록체인이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현행 법과 규정에는 암호화 토큰, 분산장부, 스마트 계약 등의 개념이 없으며, 이러한 도구들의 작동 방식은 대개 현행 법과 충돌한다. 결국 이러한 기술을 현행 법에서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는 기존의 권력 구조에서 얼마나 받아들일지를 의미한다. 



블록체인 장점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현재 토큰 증권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의 대표적인 장점은 고려하지 않은 듯 하다. 쉽게 유통하지 못했던 증권을 유통하게 해주겠다는 의의 역시 블록체인 기술이 없더라도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했을 뿐이며, 그 의의는 블록체인 도입에 따른 의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1. 블록체인의 무신뢰성(trustlessness) 불요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다. 스마트계약에 의해 동작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데 토큰 증권의 경우 예탁결제원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며, 거래소는 장외거래중개업자 또는 한국거래소가 담당한다. 또한 원화계좌를 기반으로 하는 결제가 필요하므로 결국 금융회사의 계좌로 자금을 정산하게 된다. 그렇다면 아래 그림과 별다른 바가 없다.


국내 주식거래 인프라(출처: 한국은행) 

2. 비용 절감 될까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비용절감이 된다는 생각을 우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중개인이 생략될 때 이야기다. 그러나 위의 그림과 같이 금융회사 계좌가 필요하고, 예탁결제원이 전자등록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증권신고서 등을 금융감독원이 수리 신고하는 절차를 거친다면, 중개인은 그대로다. 블록체인을 도입한 중개인이 있을 뿐...


3. 토큰의 무용성

토큰은 블록체인에 그 움직임이 기록되는 디지털 자산이다. 이더리움 기반 모든 앱은 사용자에게 토큰을 발행할 수 있고, 사용자들은 이 토큰을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있다. 사용자는 이 토큰을 가지고 거래할 수 있으며 누구든지 댑에서 토큰을 가치가 있는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즉, 가치 있는 모든 것을 토큰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블록체인의 장점인데, 토큰 증권은 증권을 토큰화(분산원장에 기재)하여 원화계좌로 살 수 있다. 결제는 무조건 계좌기반으로, 토큰은 기록에 불과할 뿐, 디지털 자산은 아니다. 자본시장법에 따른 '증권'이 자산인 것이지, 발행 형태의 하나인 '토큰'은 가이드라인 표현대로 음식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대안이 될 수 없다

한편 토큰 증권에 퍼블릭 블록체인을 도입하면 한결 나아질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현재 금융당국에서 발표한 토큰 증권은 프라이빗 블록체인, 즉 허가받은 이들만 읽고 쓸 수 있는 블록체인을 허용하였다. 허가받은 이들이란 토큰 증권에 관여하는 발행자, 금융회사, 장외거래중개업자 등이다. 51% 이상의 이해관계 없는 참여자들이 성립되어야 분산원장의 의미를 갖는다. 


퍼블릭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누구나 거래를 확인할 수 있고(비밀로 해두기 위해 거래 데이터를 암호화한다 해도), 거래당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며, 블록체인의 규칙을 정할 수도 없고, 블록체인에 누가 참여할지도 결정할 수 없다. 이러한 퍼블릭 블록체인을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법과 규정을 준수해야하는 금융산업에 도입한다는 것은 엄청단 도전이다. 위험성도 크고 비용도 많이 든다. 결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목표

퍼블릭 블록체인과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각기 다른 목적을 갖는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일반 대중이 보유한 자산의 소유권과 움직임을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조직이 제어하는 프로세스를 통해 높은 수준으로 정보와 상품의 흐름을 최적화하고자 한다. 즉, 퍼블릭 블록체인은 아래에서 생겨난 보다 가치있는 것들을 급진적이고 새로운 방법으로 기록하는데 활용하는 것이고,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위에서 아래로 프로세스 최적화를 수행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따라서 퍼블릭 블록체인이 갖는 탈중앙화와 개방성을 금융산업에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현실

그렇다고 퍼블릭 블록체인이 프라이빗 블록체인보다 훨씬 더 성과가 좋았을까? 퍼블릭 블록체인이 내세울 만한 주요 성공 사례는 암호화폐가 유일하다.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사적 지불에 사용하거나 세금을 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금세탁방지를 비롯하여 가상자산거래소를 규율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증권성 판단을 통해 기존의 규제를 들이대는 것을 보면, 암호화폐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전통적인 금융 규제와 동일하게 규제를 적용받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과 정부를 배제하는 탈중앙화를 꿈꿨던 암호화폐 철학은 어느새 금융회사에 새로운 기술 도입을 촉진시켰으며 정부에 새로운 규제를 만들도록 하였다. 암호화 기술이 원래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성공하고 있다. 암호화 기술이 오히려 정부와 대기업을 더욱 파워풀하게 하는 수단이 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모든 것을 토큰화해서 거래하겠다는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결국 새로운 시스템에 맞춰 정제된 토큰 '증권'만이 거래될 수 있다. 과연 토큰 빠진 토큰 증권은 시장에 쏟아져 나올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은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 규제 되지 않는 환경에서도 모든 것을 블록체인에 올리려 한 수많은 노력은 초기 단계에서 멈추거나 실패했다. 그 이유는 기술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떻게 실제로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그동안 '사람'들의 관행으로 잘 돌아가는 시스템 대신 혼란스럽고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시스템을 쓸 요인은 없으며,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닌 사람들의 행동 방식 개선이 수반되어야 할 문제다. 관행이란 한번에 뚝딱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기술 도입과 함께 법률, 규제, 경제시스템이 변화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블록체인의 장점은 찾기 힘들고 단기적으로는 기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더 많은 힘을 주는 것일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저작권, 예술, 부동산, 주식 등 모든 것을 토큰화하려는 시도는 이제 시작될테니, 그렇게 서서히 변화한다면 낙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시장의 흥행과는 별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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