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리먼브라더스라는 미국의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을 때, 이 세상은 충격에 빠졌고, 세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저녁이 되면 어두워지고 다시 잠이 드는 것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때부터 쏟아져 나오는 각종 경제 기사에는 어두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마치 네가 좋아하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디멘토(죽음을 먹는 자)들이 머글(사람)들을 공격하면 하늘이 어두워지고 세상이 암흑으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의 경제 기사들은 디멘토였다. 공격을 받은 사람들의 숨은 거칠고 깊어져 갔다. 그렇게 한숨만 내쉬던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지쳐 쓰러졌다. 다시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아니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불안해하면서 잠을 청했다.
그때, 아빠는 미국에 있었다. 꿈이 있었거든...
하지만 2008년의 일련의 사건들로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우리나라 돈 800원이면 미국의 1달러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리먼 뭐시기가 문을 닫는 바람에 우리나라 돈 1,500원을 줘야 미국의 1달러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빠가 좋아했던 6인치 길이의 서브웨이 샌드위치가 5천 원이었는데, 이제는 1만 원을 줘야 사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교통비, 집세, 책값, 심지어 마셔야 할 물까지 모두 이전보다 2배의 돈을 내야 하니, 아빠의 용돈이 100만 원이었다면 이제 그 용돈이 절반인 50만 원으로 줄어든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디멘토의 공격으로 아빠는 꿈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운 좋게 첫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아빠의 첫 직장은 은행이었다.
미국에 있는 은행 가운데 하나가 문을 닫으면서 아빠의 꿈을 접었어야 했지만, 이제 한국에 있는 은행 가운데 하나에서 새로운 꿈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웃기도 힘든 일이었다.
현정이가 알고 있는 은행은 저금하는 곳, 통장이라는 것을 주면 프린트해 주는 곳, 시원한 곳…맞니?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구나... 아빠한테는 말이다. 은행은 아빠의 직장이었을 때와 아니었을 때로 나누어진단다.
은행을 들어가기 전까지는 은행이라고 하면 저금하는 곳, 또는 이자를 조금 더해서 내 돈을 조금불려주는 곳이었다. 그러면 그 돈을 내 지갑에 모으지 않아도 차곡차곡 은행에 저금해서 돈을 모을 수 있었지. 그리고 카드라는 것을 줘서 어디서든지 카드를 사용하면 굳이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편하게 돈을 쓸 수 있었다.
은행원으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은행은 조금 다른 곳으로 변했다. 먼저 은행은 회사라는 것이다. 회사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회사가 하는 일로 인해 만들어지는 물건과 서비스가 사람들을 행복하고 편리하게 해주면 그 대가로 사람들은 돈을 주고 그것을 산다. 회사는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 들어간 돈을 지불하고 회사에 다니는 아빠 같은 직장인들에게 월급을 주고 이익을 남겨 놓는다. (물론 이익을 남길 만큼 잘 되는 회사들의 경우이다. 실제 이익을 남기는 회사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저금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네가 조금만 더 크면 알겠지만, 은행은 대출이라는 것도 한다. 남의 돈을 받아 보관해 주고 이자만 주는 게 아니라 그 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주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빌려주는 대가로 이자를 받는다.
그런데 위의 그림에서 이자(2)가 이자(1)보다는 항상 크다. 그래서 은행은 이자(2)-이자(1)만큼 돈을 벌게 되는 것이지. 물론 은행이 이것만 하는 곳은 아니다. 아빠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우리나라 돈을 외국에서 사용하는 돈으로 바꿔주는 것이었는데, 이를 환전이라고 한다. 은행에서 환전을 하면 그에 따른 수수료를 내야하고 그 수수료는 은행의 또 다른 이익이 된다. 환전을 하느라 돈을 세고 환율을 계산하는 아빠의 수고를 은행을 찾은 손님은 환전수수료로 내게 되는 것이고, 그것들이 모여 아빠의 월급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이외에도 은행은 돈과 관련된 많은 일들을 해 줌으로써 돈을 번다. 돈을 이용해 돈을 버는 곳이 은행이다.
그럼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왜 이자(2)가 이자(1)보다 큰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지금부터 알아보자. 돈이 모자라 빌리려는 사람과 돈이 남아 은행에 저금하려는 사람의 상황을 헤아려 보면 될 것이다. 돈이라는 것의 효용, 그러니까 돈의 가치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행복의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러면 돈이 남아 은행에 맡기려는 사람과 돈이 필요해 빌리려는 사람 둘 중 누가 더 간절할까? 누구에게 돈이라는 것의 가치가 높을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돈이 남는 사람보다는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은 더욱 소중하고 간절하다. 당장 생활이 어려워 먹을 음식을 구하기 위해 돈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과 돈이 많아 집에 놔두고 다니기가 불안한 사람을 생각해 보면,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돈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 사람은 그 돈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값을 지불할 마음이 있을 것이다. 돈이 많아 남는 사람은 앞선 사람보다 큰 대가를 지불하면서 그 돈의 보관을 맡기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돈의 가격은 돈을 빌리려는 사람에게 더 비싸게 될 것이고, 이는 돈이 주는 효용이 더 높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가격은 결과적으로 효용 때문에 발생한다. 즉, 누군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편에서는 그것이 남는 사람이 있어 둘 사이에 거래가 생겨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오래전 돈이 없던 시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냥으로 고기를 구한 집이 있다. 그런데, 건너편 집에 사는 친구의 아빠는 몸을 다쳐 한동안 사냥을 나가지 못한다. 대신 집에 있는 엄마가 만들기를 잘해서 흙으로 빚은 토기를 여럿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사냥감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온 아빠를 반기며 엄마는 요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고기를 담을 그릇이 다 깨어져 버려서 음식을 해도 음식을 둘 접시가 하나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연히 앞집에 가서 우리 집에서 남아도는 고기를 내어주고, 그 집에서 남아도는 토기를 바꾸어 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서로 없는 것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필요하면 결국 효용이 생기는 것이다. 고기도 토기도 누군가는 필요했기에 대가를 주고 바꾸게 된다. 고기의 가격은 토기가 되고 토기의 가격은 고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한 발짝 더 나아가 보자. 사냥에 성공한 집에 그릇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굳이 앞집에 가서 애써 잡아온 사냥감을 나눠주며 그 집의 토기를 바꿔오는 것에 대한 필요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찾아가지 않아도 고기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앞집 친구가 먼저 대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토기를 들고 와서는 고기와 바꿔 달라고 사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집에서는 그릇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굳이 토기가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면 거래는 둘 중 하나다. 고기 양을 줄이는 방법 또는 더 많은 토기를 가져오라고 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하면, 고기의 가격이 비싸지는 것, 즉, 효용이 높아진 것이다.
이제 고기라는 것이 돈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앞집 친구는 대출이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돈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가치를 지불해야 한다. 앞집 친구의 집에서 생각하는 돈의 효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즉, 고기의 가치가 커진 것, 비싸진 것이다. 이것이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인 수요와 공급의 원리이다.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생기면 그것을 공급하는 사람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 중 어느 한쪽이 많아지면 가격(효용)은 바뀌게 된다.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은 내려가고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은 올라가는 것이다. 무언가가 많아지면 효용이 내려가고 필요하면 효용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의 가격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우선 효용이 있기 때문에 가격이 생긴 것이고 그 가격의 변동은 그것의 수요와 공급이 달라지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네가 만나는 금융시장의 모든 것들은 결국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못다 한 이야기
일하는 은행원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다른 곳들도 그렇겠지만, 은행은 돈을 벌어오라는 압박이 굉장히 강한 곳이다. 사람들은 항상 실적에 쫓기고 목표한 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일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절하 당하며 그만큼 경제적인 보상도 줄어든다.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승진의 기회도 보장받지 못한다. 그래서 매일매일 돈을 잘 벌어야 한다. 오늘 잘 벌었는지에 대한 결과는 그날 저녁, 늦어도 다음 날 아침이면 모두 확인이 가능하고, 그래서 매일매일 돈을 잘 번 사람과 못 번 사람의 순위가 정해진다.
오죽하면 미국의 모 은행의 출입구에는 직원들이 퇴근할 때 항상 볼 수 있게 출입구 위에다
“당신은 오늘 얼마를 벌었는가?”
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2학년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발표를 많이 한 사람 순서대로 주어진다고 하면, 너희 반 모든 친구들은 서로 발표를 하겠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발표를 하지 않은 친구들은 내년에도 1학년에 머무를 거라는 말이 더해지면 친구들끼리 얼마나 경쟁이 심할지 상상이나 가니? 갖은 수를 써서라도 발표를 하겠다고 친구들이 모두 나쁜 어린이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내가 더 돋보이려고 고개를 내미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되겠지. 그래서 아빠는 은행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직장으로의 가치에는 가차 없이 낮은 점수를 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너의 직업으로 은행원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빠가 은행을 그만두고 10년이 되었지만 그 모습이 그리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 아빠의 친구들은 아직도 그런 직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새로운 형태의 은행들이 탄생해 조금은 이런 은행의 모습에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인데, 앞으로 은행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속해서 지켜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경쟁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올바른 경쟁을 하면서 모두의 삶이 발전할 수 있는 곳이 좋은 직장이다. 너무 이상적이지만, 근본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적어도, 그 정도의 차이는 판단하고 훗날 너의 거처를 정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