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미키17을 보고 왔다. 영화 보면서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든 건 처음이었다. 로버트 패틴슨(미키 역)은 동시에 2개의 자아를 연기한다. 미키17과 미키18. 둘은 생김새와 기억이 완전히 똑같지만 성격이 다르다. 미키17은 쫄보, 미키18은 대담한 성격. 로버트 패틴슨이 한 영화에서 두 개의 성격을 연기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내 경험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들 앞에서 연기를 할 일이 있었다. 부끄러움 많은 내향인이지만 아이들을 웃기고 싶어서 정말 실감나게 연기했다. 싸움을 걸고 시비거는 역할이다. 평소 나는 화도 못 내고 짜증도 못 내고 거절도 못 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나도 화를 내보고 할말 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와중이다. 싸움 걸고 짜증내는 게 어색했지만 사실 엄청 통쾌했다. '연기'라는 명목으로 화내도 되니까.
무한도전에서 '박명수로 살아보기'라는 컨셉으로 방송을 한 적이 있다. 나 같은 성격의 피디가 박명수의 무전을 듣고 아바타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처음 이 방송을 봤을 때는 웃기기만 했는데, 두번 세번 보다보니 나도 누가 나를 조종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말 다 해보고, 상급자 앞에서 다리도 꼬고.
배우들이 왜 연기를 하는지 조금은 알겠다. 이 가면, 저 가면 쓰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 같다. 마치 내가 아이들 앞에서 전혀 다른 나를 연기한 것처럼, 무한도전에서 피디가 박명수의 아바타가 된 것처럼.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나를 조종하면 된다. 가면을 쓴 것처럼 얼굴에 철판 깔고 살아가면, 내 불안과 공황이 조금 나아지려나 희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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