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한 지 근 만 2년을 넘은 독서모임이 하나 있다.
독서모임에서는 주로 문학이나 에세이가 아닌 조금 무거운 책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번 달에 선정된 책은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한나 아렌트의『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독서모임의 규칙 중, 감상평을 남기는 규칙이 있는데,
쓰다 보니 카페에 비밀글로만 남기는 게 아쉬워 조금 편집해서 브런치에 남기고자 한다.
이 아래부터는 책에 대한 감상평이다.
이 책, 그리고 책에서 주요 개념으로 언급되는 '악의 평범성'은
철학과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일상적으로 화자 되고 있다.
특히나 이 책은 1961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전범자 '아이히만'의 재판을
르포 형식으로 담아낸 책임에도 불구하고 철학과 교양을 익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고전처럼 여겨지기도 하며, 나 또한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대학생 때 읽은 이후 9년이 다 된 시점에서 이번 독서모임을 계기로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이번에는 이 책이 담고 있는 개념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책에 대한 배경적 지식에 대해 여럿 찾아봤다.
최근에는 특히나 AI를 활용하여 기존의 언어적, 시간적 장벽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던
내용들을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찾을 수 있게 되니 처음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졌던 책도
입체적으로 보여 기술의 발전이 한편으로는 멍청하게도 만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개안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
생성형 AI를 통해 찾은 내용을 기반으로(최대한 출처가 명확한 내용들만 위주로)
토론에서는 전부 다룰 수 없는 내용들을 감상평을 통해 내 개인적 의견과 함께 담아내고자 한다.
(시간이 없는 분들은 굵은 글씨만 보기를 권장합니다..ㅎ)
- '악의 평범성' 개념이 가진 매력과 단순성
칸트의 '정언 명령'이나 쇼펜하우어의 '표상, 데이비드 흄의 인식론이나 관념론은
철학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고등학교 때 윤리학을 배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상이나 인터넷에서는
전혀 접할 기회가 없는 이론 혹은 개념들이다. 그러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적어도 내가 태어난 한국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심지어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흔히 본인이 생각하는 악인을 아이히만에 빗대어 글을 쓰거나 코멘트를 달기도 한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시간이 지나도 대중들에게 반복적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 개념이 가진 단순함과 직관성 때문이다.
아렌트는 악을 거창한 이념적 사고나 특별한 성향을 가진 일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인 판단 중단과 무비판적 복종의 연장선에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이 말은 매우 단순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구조를 관통하는 통찰처럼 읽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표현에서 일종의 '편함'을 발견한다. 악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생성될 수 있다는 관점은, 복잡한 철학적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정도로 직설적이다.
- 실제 악의 모습과 현대 연구에서 악이 발생한 복합적 원인에 대해서
이전에 읽었던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그 외에 통계적 자료를 제시하는 여러 책들을 보면 인간이 권위에 쉽게 복종하거나
정치·사회적 질서가 무너질 때, 혹은 전쟁이 일어날 때에도 인간은 얼마나 선한지,
기존에 악한 모습을 인간들을 보여주는 실험들이 얼마나 많은 조작들이 있었고 언론에 의해 부풀려졌는지,
쉽게 말해 악을 행하는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특별히 악한 의도를 가진 몇몇 소수에 사람들이 벌인 일들인지 이제는 조금씩 깨닫는다.
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비판받는 가장 큰 지점은 (개념의 매력과도 동일하지만)
악한 의도를 가진 악인을 우리 주변에도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로 위장했다는 점과
일상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악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개념을 통해 내포했다는 점이다(2차 가해의 가능성).
최근 학계에서는 개인적 사기, 살해 혹은 책에서 나온 전쟁범죄나 집단학살의 가해자를 분석해 보면
성격적 기질(성격장애), 정치적 신념과 과도한 자아의탁, 집단 동조 압력 등
사회적 환경과 개인적 결함 혹은 욕망이 결합된 상태에서 범죄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악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혹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 행위'로 설명될 수 없고,
특정한 심리적 조건과 환경, 그리고 개인이 어떤 선택을 반복했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하는,
수학 공식처럼 단순화할 수 없는 복합적 원인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 전체주의 연구 이론의 선구자
그녀가 1951년에 발표한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은 학계에서 20세기 전체주의 분석의
가장 중요한 기준점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 안에서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단순한 독재나 폭압적 정치체제로 보지 않고, 인간의 판단 능력과 책임감을 체계적으로 무력화하는 일종의 ‘반 사유적 구조’로 설명했다.
즉, 전체주의는 사람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체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체제보다도
세련된 방식으로 개인의 도덕적 감수성을 마비시키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은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단순한 전범 판결이 아니라,
전체주의가 만들어낸 결과를 드러내는 실험처럼 바라보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아이히만은 특정한 반유대주의적 신념을 가진 극단적 인물이기보다는,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 ‘사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전형적 관료의 표상처럼 보였다.
나치 조직의 관료들이 자신의 판단 대신 상부의 명령을 우선하고,
직무 수행이라는 명목 아래 인간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잃어가는 과정은 아렌트가 이미
이론적으로 규정했던 전체주의 구조와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그녀는 재판장에서의 아이히만을 그 연장선에서 관찰했고,
결국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사유 체계에서 파생된 개념이었다고 생각한다.
- 재판 전후 그녀가 가진 정보의 한계와 법학·형사학적 전문성 부재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내렸던 여러 판단들은,
그녀가 접근할 수 있었던 정보의 양과 질에 의해 일정 부분 제한되어 있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당시 예루살렘 재판에서 공개된 자료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방대한 기록과 비교하면
극히 제한적이었고, 아이히만의 진짜 성향이나 나치 내부에서의 구체적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문서와 증언들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렌트는 법정에서 드러난 아이히만의 태도, 그리고 그가 구사한 지나치게 관료적이고
상투적인 언어를 보고 그가 실제로도 그런 인물일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후에 밝혀진 자료들에 따르면 그의 태도는 상당 부분 ‘자기 방어를 위한 연기’에 가까웠다는 분석이 많다.
아렌트의 입장에서 보면 그 연기를 간파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고,
당시 공개된 증거만으로는 그의 이념적 신념이나 잔혹성의 정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관찰은 자연스럽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아렌트는 철학자이자 정치이론가로서 재판을 바라본 것이지,
법학자나 형사사법 전문가의 시선으로 사건을 분석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법적 책임의 범위, 증거의 기준,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요소보다
그 재판이 전체주의의 본질을 드러내는 현장이라는 점에 더 큰 관심을 두었고,
이 때문에 아이히만의 실제 범죄 사실과 법적 책임보다는
그의 언어, 태도, 사고방식 같은 철학적 단서를 중심으로 판단을 내렸다.
이러한 접근은 정치철학자 아렌트가 가진 강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법적 사실 관계를 세밀하게 추적해야 하는 전범재판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는 중요한 결함이 되기도 했다.
그녀가 재판의 정치성이나 연출성을 날카롭게 지적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지만,
그와 동시에 법적 절차와 국제범죄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 베티나 슈탕네트(Bettina Stangneth)의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에서 밝혀진 아이히만
책 소개에 언급된 내용(교보문고 참고)을 잠시 인용하면 아래 내용과 같다
아르헨티나에서 아이히만과 쌍벽을 이룬 사람은 빌럼 사선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친위대 종군 기자인 그는 고유의 문체를 가진 필자로 활약했다. 그는 이른바 ‘사선 서클’을 이끌면서 매주 아이히만을 초대해 이야기를 듣고 논쟁을 벌이며, 이 모든 내용을 녹음했다. 이 책의 후반부는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머문 지 7년째인 1957년 4월경부터 시작해 10월 중순까지 이어진 레코딩 작업이 주를 이룬다. 거기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이 독일의 이익을 위해 역사적으로 필요한 정책이었다면서 자신의 활약상을 자랑스레 떠벌인다.
사선은 아이히만과의 대화를 녹음함과 동시에 보조원들에게 타이핑하도록 했다. 오늘날 아이히만에 관한 주요 자료는 녹음 원본 파일, 타자화된 녹취록, 녹취록 사본, 아이히만의 저술, 그리고 아이히만의 방대한 메모들이다. 녹취록은 1300쪽 분량이고, 녹음테이프는 29시간 분량에 달해 신뢰할 만한 1차 사료가 되며, 이로써 우리는 사선의 집 거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 참석한 멤버들은 친위대 대원, 나치당 지구당 위원장, 나치 외무부 ‘유대인과’ 직원, 작가, 독일군 공군 조종사, 괴벨스 언론 담당 부관, 독일 외무부 장관 아들 등이었다. 집단 총살, 죽음으로 이끄는 강제노역, 굶주림과 가스실을 통한 살인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인물로 아이히만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이히만은 명성을 스스로 만들어내 이들의 시선을 끌면서 그에 소속되는 입장권을 얻어냈다.
이전부터도 아이히만이 일반적 행정관료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했지만,
아이히만에 대한 해석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베티나 슈탕네트의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이 출간되면서부터였다.
이 책은 아렌트가 접근할 수 없었던 방대한 사료, 특히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 망명 시절에
남긴 대담 녹음본과 사적 기록을 토대로 아이히만의 실제 성향을 재구성하고 있다.
슈탕네트의 분석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재판장에서 보였던 ‘무능한 관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나치 이념을 수동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실천하려 한 인물이었고,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일종의 ‘역사적 사명’처럼 받아들였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의 대화록은 그가 얼마나 강한 반유대주의적 신념을 유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유럽 유대인의 절멸을 자신의 ‘성과’처럼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자료들을 통해 보면 그는 단순히 지시를 수행한 수송 담당자가 아니라,
조직의 목표를 위해 효율성을 높이려 했고,
구체적인 실행 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한 행동가에 가까웠다.
이러한 기록들은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의 모습이 법정이라는 제한된 무대에서
본인의 죄를 감추기 위한 방어적 연출의 결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정신의학적 해석과 현대 심리검사의 차이
아렌트가 재판 과정에서 주목했던 정신의학적 평가들은 모두 아이히만에게
“정신병적 이상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녀는 이 점을 그의 평범함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로 여겼다.
그러나 1960년대 재판 당시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평범함’ 혹은 ‘정상’이라는 범주는
지금의 기준과 비교하면 매우 제한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당시의 정신감정은 한 개인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 현실 검증력이 온전한지,
망상이나 조현병과 같은 중증 정신질환의 징후가 있는지 등을 중심으로 평가했다.
즉,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기본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하며,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있다면 대체로 ‘정상’ 범주에 포함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이히만은 조직 내에서 임무를 수행했고, 체계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법정에서도 논리적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 시대의 기준으로는 특별히 문제가 없는 인물로 보였던 것이다.
반면 현재 우리가 말하는 ‘성격적 결함’은 훨씬 더 미세한 인격의 구조적 취약성까지 포괄한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처럼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 패턴을 지속적으로
보이는 경우, 혹은 경계선 성격장애처럼 정체성의 불안정성과 충동성이 결합된 형태는
1960년대 정신분석학에서는 독립된 진단 범주로 다뤄지지 않았다.
현대의 심리검사는 이러한 성격 구조의 문제를 세분화하여 파악하고,
반복적인 행동 패턴이나 내면적 동기까지 분석할 수 있도록 발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히만에 대한 당시의 ‘정상’ 판정은 그가 성격적으로 결함이 없었다는 결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진단 체계로는 그의 성향을 정확히 평가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 아이히만 재판의 비판적 입장
아이히만 재판을 둘러싸고 당시에도 제기되었던 비판은
재판 자체가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일종의 ‘보복적 심판’이었다는 주장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범죄가 발생하던 시점에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새로운 국가가 이전 체제의 범죄자를 기소하고 처벌한다는 점에서 관할권 논란도 있었다.
또한 벤구리온 정부가 재판을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적극 활용했다는 사실은,
이 재판이 법적 판단만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를 띠고 있었다는 비판을 가능하게 했다.
피해자 증언을 대규모로 소환하여 나치의 전체적 만행을 재현했던 법정의 방식 또한,
개별 피고인의 책임을 규명하는 재판보다는
유대인 집단의 역사적 상처를 공식화하는 절차에 가까웠다는 해석을 불러왔다.
이런 요소들은 아렌트가 재판을 ‘극장적’이고 ‘전시적’이라고 묘사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들이 재판 전체를 부정하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새로운 국가가 자신들의 공동체에 가해졌던 범죄를
직접 다루려 했던 시도 자체는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인다.
그 과정에서 정치성이 개입된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보복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재판의 형식과 절차에서 법적 정당성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보기 어렵고,
결과적으로는 이후 국제 형사 재판 체계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비판은 재판의 한 단면만을 보여주는 제한적 시각으로 느껴진다.
- 법학적 관점에서의 해당 재판의 의미 : 보편관할권의 구현
법학적 관점에서 아이히만 재판은 오히려 국제법의 발전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아이히만이 저지른 행위는 특정 국가를 상대로 한 범죄가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였기 때문에,
어느 국가든 이러한 범죄자를 기소할 수 있다는 ‘보편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의 개념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되었다.
이는 이후 국제형사재판소(ICC)와 전환기 정의 체계가 형성되는 데 핵심적인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집단살해나 전쟁범죄와 같은 범죄가 더 이상 국가의 경계를 이유로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원칙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재판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논란이 있었음에도,
절차적 측면에서 피고인의 권리 보장이나 증거 조사의 기본 틀은 시대적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국가가 아닌 ‘피해 공동체’가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나선 사례라는 점에서도
전환기 정의의 초기 모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법학자들은 아이히만 재판을 단순한 일회적 처벌이 아니라
국제적 정의의 토대를 마련한 사건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재판은 특정 시대의 분노나 복수로만 읽기보다는,
인류가 공동의 범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첫 번째 실험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2025년 2월 바로 올해 따끈따끈 번역된,
글에서 인용한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을 발견하게 된 것 만으로도 독서의 가치는 충분하기도 하고,
책 자체는 여전히 재미없었지만 책 자체를 매개로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독서 모임으로써 선정될 책으로는 충분할 것 같다는 평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