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식구 연대기-6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인천시 구월동에 위치한 유통단지의 언덕 쪽에서 대리점을 운영했었는데, 장사가 안돼서 망한 건지 모르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때 난 너무 어렸고 솔직하게 말하면 그곳을 좋아했었다. 잠깐 설명하자면 대리점은 일반 매장을 개조한 창고 형식이었다. 차량으로 직접 배송을 해주기 때문에 구매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나마 점검차 내려온 본사 소속의 영업사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난 본 적이 없었다. 겉은 유리창으로 되어있어서 안쪽이 훤히 보일 것 같지만 검은색의 필름으로 도배하여 모르는 사람은 뭐하는 곳인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다섯 식구는 그 안의 작은 쪽방에서 살았더랬다.
나무로 만든 반투명의 창들이 틈틈이 달린 미닫이 문을 열면 라면, 과자, 시리얼, 음료 같은 것들이 박스째로 쌓여있었다. 그중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박스를 뜯어 질리도록 먹을 수 있었는데, 빈틈없이 테이핑 된 사이로 손톱을 밀어 넣어 재끼면 내 눈엔 금은보화보다 값진 것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매일 바뀌는 삼 형제의 식성 때문인지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박스들엔 손톱 흔적이 남아있었다. 엄마는 성을 내며 다그쳤고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집에 없었다.
팔리지 않는 물건들로는 대리점의 운영과 안정적인 생활은 불가능했다. 운영과 생활엔 돈이 필요했고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먼저 시작하자고 제안한 아빠가 손을 놓는 바람에 대부분은 엄마의 일이었는데, 운영과 생활을 위해 돈을 꾸로 다녔다. 아는 지인들에게 조금씩 빌리는 중 어느 일수쟁이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저녁이 되면 일수쟁이가 찾아왔었다. 중년의 여성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얼 잘 먹었는지 하얗고 기름기 넘치는 얼굴과 심란함과 고뇌에 빠져 그늘 진 엄마의 얼굴은 상반되었다. 저녁밥을 하던 엄마는 일수쟁이가 찾아오면 이불장에 넣어둔 돈을 들고나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제도권 밖의 이자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매일의 저녁마다 원금은커녕 이자도 겨우 내던 엄마는 결국 돈을 갚지 않기로 했다.
불어나는 강물처럼 이자는 점점 늘어나 이러다 원금은 갚지도 못하겠다는 판단하에 내린 결정이었다. 알 수 없을 보복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엄마였는데, 그런 예상을 깨고 일수쟁이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이자를 원금과 비슷하게 받았아먹었으니 자기도 미안해서 안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전화는 따로 하지 않아 오지 않던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