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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현 Oct 30. 2021

한 강 - 채식주의자

줄거리, 해석, 분석 및 명대사


 채식주의자가 한국 문학에서 꽤 유명한 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학에 크게 관심이 없던 나는 읽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가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아직 문학적인 눈이 부족해서 그런지 사실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난해한 작품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가 무슨 의도로 썼는지 파악도 전혀 안된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한국인이 쓴 글이라서 그런지 정말 쉽게 읽히고 재밌었다. 그리고 소재 자체도 매우 신선하다고 볼 수 있겠다.


줄거리


주인공 영혜는 매우 평범한 여자였다. 월남 전에도 참전했던 군인의 딸로써 매우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아서 인지 딱히 모난 데도 없는 사람이었다. 영혜의 남편은 그런 모습을 보고 영혜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평범한 외모, 모나지 않은 성격, 평범한 생활은 영혜의 남편이 함께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영혜에게도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그건 영혜가 브래지어를 잘 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물론 브래지어가 매우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고 사회적으로 브래지어 대신 다른 겉옷으로 가슴을 가리기도 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영혜가 갑자기 냉장고에 있는 모든 고기를 버리기 시작한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영혜의 남편은 그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그저 일시적인 감정 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 영혜의 남편은 점심과 저녁을 밖에서 먹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는 있었지만 아침에는 항상 고기를 먹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혜가 성관계 까지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고기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남편은 강간 비슷하게 관계를 맺기도 한다. 영혜가 갈수록 말라가고 건강에도 이상이 생기자 남편은 영혜의 가족들에게도 영혜의 상황을 알린다. 가족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영혜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설득하지만 끝까지 거부한다.



화가 난 영혜의 아버지는 영혜의 뺨을 때리고 억지로 붙잡아 고기를 먹이려고 한다. 하지만 영혜는 끝까지 거부하며 과도로 손목을 그어버린다. 결국 영혜는 피를 흘린 채 병원에 실려간다.



병원에서도 영혜의 기행은 계속 된다. 자꾸 상의를 탈의 한 채 돌아다니고 계속해서 고기를 거부한다. 남편은 옆에서 간호를 했지만 영혜가 죽어있는 새를 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난 후 이혼을 해버린다.



결국 영혜는 혼자살게 되고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영혜를 돌봐준다. 하지만 영혜의 언니는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빠 영혜를 돌봐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 때 인혜의 남편이 영혜를 만나보겠다고 제안을 했고, 인혜는 기뻐했다.



인혜의 남편은 예술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돈을 잘 벌지는 못했다. 하지만 인혜의 남편에게는 더러운 의도가 숨어있었다. 인혜로부터 영혜에게 몽고반점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고, 그 이후로 줄곧 성적인 욕망을 품었던 것이다. 인혜의 남편은 영혜를 만나 제안을 한다. 예술을 위해서 나체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다.



영혜는 순순히 허락한다. 그래서 인혜의 남편은 영혜의 나체에 꽃 그림을 그려 넣고 여러 각도에서 촬영을 한다. 처음에는 자신보다 더 미적으로 젊고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는 모델의 몸에 꽃 그림을 그려 성관계하는 것을 촬영하려고 했으나 그 모델의 반대로 무산 되고 만다. 하지만 성관계 하는 것 같은 촬영을 하는 도중 영혜는 이미 달아올라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인혜의 남편도 달아오른다.



결국 다른 화가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에 꽃을 그려놓고 영혜과 성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다양한 각도로 촬영한다. 영혜가 연락이 안돼서 영혜를 찾아 영혜의 집으로 오게 된 인혜는 남편이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영혜와 나체로 누워있는 남편도 보게 된다. 그 후로 영혜는 정신 병원으로 입소하고 인혜의 가정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소한 이후로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다. 영혜는 남편에게 버림 받고 가족들에게도 버림 받았다. 인혜만이 영혜를 돌본다. 영혜는 나중에 먹는 것 조차 거부하고 주사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 받는다. 몸이 갈 수록 말라가고 나중에 너무 먹지 않아 위에 문제가 생겨 피도 토해낸다. 그리고 자신이 나무가 되겠다며 자꾸 물구나무 서기를 한다. 결국 그곳에서도 영혜를 감당하지 못하고 영혜는 더 큰 병원으로 옮겨가게 된다.


“무슨 얘길 하고 있어. 어서 팔 잡아라. 정서방도” 

“아버지, 왜 이러세요.”

 처형이 장인의 오른팔을 잡았다.
장인은 이제 젓가락을 내던지고, 손으로 탕수육을 들고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내가 엉거주춤 뒷걸음질치는 것을 처남이 붙잡아 바로 세웠다.

“누나, 그냥 좋게 먹어. 누나가 받아서 먹어.” 

처형이 애원했다. 

“아버지 제발 그만 하세요.”

 처형이 장인을 잡은 팔힘보다 처남이 아내를 잡은 팔힘이 셌으므로,
장인은 처형을 뿌리치고 탕수육을 아내의 입에 갖다댔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내는 신음소리를 냈다.


영혜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고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난 다른 사람의 취향과 개성을 전적으로 존중해야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신의 몸을 해치면서 까지 어떤 가치를 추구한다면 그것을 억지로 막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선택이므로 존중해야 하는가? 대표적으로 안락사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물론 답이 없는 질문이므로 결론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게 현실에서 여러 고민과 갈등의 문제가 되는 것들이라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녀는 이미 깨달았다.
자신이 오래 전부터 죽어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사람은 언제 죽을까? 육체적으로 죽는 것 만이 죽음일까?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은 살아있다고 볼 수 있는 걸까? 개인적으로 요즘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라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인생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할까? 요즘 삶의 재미를 잃어버렸다. 뭘 해야 재미가 있을지 뭘 해야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재미 없이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재미만 추구 하며 사는 것이 옳은 삶일까? 라는 생각도 든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지만 해결책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왜 죽어선 안되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 난 여러번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른 대답을 내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죽으면 안되는 지를 알아야 비로소 살아갈 이유도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살기 위해서 죽음을 먼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은 참 역설적인 것 같다.


·····어쩌면 꿈인지 몰라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삶 또 한 어쩌면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모든게 꿈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울고 웃고 즐기고 사랑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이게 꿈이건 현실이건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현재 보다 더 중요한 세계는 없으니까. 너무 깊은 사색도 때론 인생에 해로운 법이다.



솔직히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혜의 가슴에 대한 집착, 인혜의 남편의 몽고 반점에 대한 집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다만 인혜의 남편은 몽고반점이 태고의 상징 같은 역할을 한다고 짐작하고 있다. 영혜는 점점 채식주의를 넘어 식물로 변해가는데,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난 잘 모르겠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들의 몸을 만들듯이 우리들이 받아들이는 사상이 우리들의 삶을 만들어낸다.' 약간 이런 메세지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인혜의 남편이 영혜와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 (체감상)작품의 절반정도를 차지하는 데 그것이 상징하고 있는 게 뭘까? 읽고 나서 이야기에 대해 많은 의문이 생기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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