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연작 1 - 외국인과 이십대는 어떤 관계일까
외국인 아저씨가 건널목을 건넜다. 옆엔 한국인 아저씨가 있었다. 흰 셔츠에 두꺼운 넥타이, 펄럭이는 양복바지. 회사원 아저씨도 출장 중인 외국인도 둘 다 시청 앞 패션이었다. 외국인이 아저씨를 따라가듯 외국인을 따라가 봤다. 매일 걷던 서울에서 외국인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휴대폰을 만지는 척하며 발을 맞추어 아저씨 옆에서 걷기도 하고 외국인 옆에서 걷기도 했다. 간혹 그들이 천천히 걸을 때면 길을 확인하는 척하며 천천히 따라 걷고, 눈치 보일 때는 전화하는 척하며 같이 걸었다.
- This is the original heart of Seoul.
- This is Cheonggye... stream. It had been paved with road. This is original stream in seoul.
- This is City Hall. This is new building, and in front of this building, there is original old city hall.
- the Westin Chosun Hotel is the first modern hotel built in korea.
새삼 듣고 보니 그랬다.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외국인은 Original이라는 낱말 하나로 몇 년 전의 서울까지 머릿속에 담았을까. 몇 년 된 서울을 영화로 만들었을까. 그 말 하나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유영해본 적도 없는 백 년 동안의 서울을, 서울 토박이들의 서울 냄새나는 입김이 모여 만들어낸 오래된 서울의 습기를 그는 다 꿰뚫을 수 있었다. 백만 겹의 페르소나를 종로와 청계천처럼 무교동과 시청처럼 낡은 무성영화로 만들 수 있었다. 매일을 서울 속에 사는 사람도 다 담지 못하는 서울. 아니, 아무도 담지 않는 가치 없는 서울을 그가 담았다. 낚아챘다.
외국인이었던 적이 있다. 바르셀로나와 런던에서. 베이징과 호놀룰루에서. 그리고 위그루에서. 모두 밤이었다. 차들과 야경과 호텔과 불빛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선 소리를 질렀다. 몬주익 언덕 꼭대기를 채 못 가서 바다 건너 저쪽으로. 눈물도 화도 억울함도, 그리고 홀로 서기도 바닷속에 빠뜨렸다. 풍덩 소리가 안 났다. 바다는 계속 잠잠했다. 넣어졌을까. 아직도 그 바닷속에 있을까.
외국인이라서 뭐든 할 수 있었다. 외국인이 되어서는 눈치 볼 일도 없었다. 마음껏 외쳐도 되고 마음껏 울어도 되었다. 마음껏 좋아해도 되고 마음껏 길을 잃어도 되었다. 밤늦은 시각에도 마음껏 밖에 나가고 새벽에도 마음껏 슈퍼엘 가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마음껏 베란다 창문에 기대어 창밖을 구경했다. 마음껏 생각해도 되었다. 모든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음껏 글을 쓰는 건 외국에서도 허용되지 않았다. 외국인은 투명인간이었지만 외국인이 쓰는 만년필 잉크는 투명이 아니었다. 외국인이 쓰는 글은 투명이 아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글자만 종이 위에서 둥둥 떠다녔다. 글을 쓸 땐 항상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 우리는 외국인이었다. 언제나 우리의 뒤를 따라다니던 ‘이십대’도 외국인이었다. 등 뒤에서 우리를 부르던 이십대는 한적한 문학관 같았다. 기찻길이 놓인 문학관 앞마당에서 우리는 함초롬 젖은 보물을 찾아다녔다. 미지의 화살을 찾던 젊은 시인처럼 스무 살을 찾아다녔다. 그날 하루 우리는 ‘이십대’라는 외국에 남겨지게 되었다. 낯선 땅에. 하지만 홀로 서지 않았다. 함께 외국인이 되었다. 그랬기에 앞자리가 2로 시작하는 나이를 가지고 낯선 길에 남겨져도 춥지 않았다.
그곳은 바르셀로나 교외의 작은 도시 같았다. 달리가 살던 곳, 피게레스였다. 오후 다섯 시의 스페인,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푸르름. 하늘엔 파란 물감이 번져 저녁이 오지만 여염집 타일 벽과 들창가에는 붉은 물감과 빨간 붓 자국이 여기저기 묻어 있던 시간. 적당히 사람이 있고 적당히 이야기가 오갔던 곳. 이십대는 달리의 고향처럼 초현실주의 색채가 짙은 땅이었다. 우리는 적응하지 못했다. 이십대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저 우리는 한바탕 웃음으로 이야기했고 간지러워했다. 먼 훗날 해가 지는 나이가 되면 그때 그 젊은 웃음과 간지러움들이 이십대라는 초현실주의 삽화를 만들어 낸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이십대는 과도기였다. 식민지의 근대건축물들이 낡고 복잡한 도시 위에 어울리지 않게 띄엄띄엄 박혀 있는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이제 그날의 붐빔은 다 사라졌다. 추운 색들이 도시를 매웠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이 어색하게 놓인 외국 풍경은 아름답다. 불완전하고 완성되지 않은 풍경이기에. 그것이 우리 이십대와 닮았기에. 처음 겪어 보는 어중간한 물결과 어디로 갈지 모르는 여행 같은 파도 속에서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선다. 그 애매모호함과 불확실성이 바로 우리의 이십대이기 때문에, 과도기의 도시가 아름다운 것처럼 과도기의 우리 이십대도 아름답다.
해가 진다. 고요한 외국 문학관 앞마당엔 아무도 없다. 젊음들이 밟고 간 발자국만 남아 그 사이로 바람이 홀로 머물다 간다. 이십대들의 그림자가 종잇장이 넘어가듯 추억처럼 흘러간다. 외국인이 떠난 외국은 쓸쓸하다. 그곳은 이제 외국이 아니다.
문학관도 텅 비어 어느 비운의 소설가의 초상들만 어둠 속에 고요히 눈을 뜬다. 소설가의 흉상과 육필 원고와 작은방과 그가 남긴 유품도 이제 그 앞엔 아무도 없다. 그저 굳게 닫힌 문학관 속에 홀로들 놓여있을 뿐이다. 기구한 소설가의 삶을 담은 영화도 어느새 스크린에서 사라지고 오래된 필름 뭉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각화되지 않았을 뿐 소설가와 그의 영혼은 문학관의 어스름 속에 녹아 있다고, 외국인은 잠긴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제 외국은 텅 비었다. 어느 젊은 외국인들이 남기고 간 숨들만이 습기처럼 외국 공기 속에 스민다. 외국인들의 왁자지껄 이야기 소리와 간지러운 웃음들도 모두 사라지고 문학관 앞마당 바닥과 식민지의 건축물 외벽에 페인트처럼 옅은 흔적만 남았다.
외국인은 떠났지만 외국인의 영혼은 외국 속에 녹아 있다. 외국인이 떠난 나라는 더 이상 외국이 아니고 그곳을 떠난 우리는 더 이상 외국인이 아니지만, 그 땅을 상상하고 그릴 때 머릿속에서 그곳은 외국이 되고 우리는 외국인이 된다. 그 땅에 외국인이 한 명도 살지 않고 원주민들만이 개를 조용히 산책시킨다 해도, 그곳에 직접 가보지 않는다 해도, 그 땅의 이미지는 외국이고 그 이미지를 상상하는 우리들은 각자 방 속의 침대에 누워서도 외국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떠나며 이십대도 그렇게 외국에 온 것처럼, 외국인인 것처럼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십대라는 외국에 잠시 머물다 가는 외국인이라고, 우리 중에 누군가가 넌지시 말했다. 먼 훗날 외국 문학관 앞마당에 모두가 떠나가고 아무도 없을 때, 지는 햇무리만이 따뜻하게 남을 때, 문학관 유리문이 굳게 닫혀 기구한 소설가의 초상만이 황혼 어스름을 홀로 저녁 만찬으로 먹게 될 때, 그때에도 우리의 이십대가 영원한 외국으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때에도 우리가 스무 살이라는 외국인으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옆에 모여 있던 다른 누군가들이 대답했다.
앞자리가 2인 나이의 사람들만 존재할 수 있는 공화국. 2가 아닌 사람들은 국경에 발을 딛는 순간 먼지처럼 소멸되어 버리는 철저한 독립국. 그 나라 국민들은 모두 외국인이라고 불리는 영원한 중립국. ‘이십대’라는 국가를 영원히 떠나 그 나라에 영영 못 가게 되어 외국인이라는 시민권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그 땅을 상상하며 그 나라가 우리의 머릿속에서만큼은 외국으로 남는다면. 헛된 상상을 하는 동안만큼만 외국인으로 남을 수 있다면.
외국 바다에 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빨간 물감이 파란 물감 통 속으로 한 방울 한 방울 섞이고 있었다. 스페인 바다 같았다. 바르셀로네타 해변과 몬주익 언덕의 저녁 바다. 항구와 공장의 불들이 켜지고.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것이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