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우리 이십대

이십대 연작 2 - 비오는 날과 이십대는 자유로운가

by 어진


마지막 서울 가는 길엔 비가 내렸다. 붉은 버스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한남대교를 건너 서울로 가는 길. 홍지문을 지나면 서대문구. 택시를 타고 서대문의 마지막 밤을 지났다.

이제는 원래 있던 곳조차 알 수 없는 서쪽의 문처럼, 동네 이름과 지하철역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족하며 아무도 다시 짓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상상 속 거대한 문루처럼, 모두 비 오는 밤 같이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내부순환로 아래로 비에 불은 홍제천이 쏟아졌다. 미성년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침수시키던 비였다. 빗방울이 바다를 덮은 어두운 오후 교실에 몇 남지 않은 친구들과 자습을 했다. 쉬는 시간도 아닌데 창문을 활짝 열고 소년은 혼자 창에 걸터 글을 썼다.

나지막한 뒷산과 울창한 숲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소년은 글자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조각했다. 우리가 물이 된다면, 세상의 모든 산과 강과 바다에 흐른다면, 비에 흠뻑 젖은 종이비행기를 타고 아마존과 열대 우림을 가로질러 어느 알지 못하는 라틴아메리카와 남아시아의 비 오는 도시 위를 시원하게 날아다닌다면, 그런 가정적 조건의 연결 어미로 태어난 글자 조각들이 비에 번져 촉촉하게 울고 있었다.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밖으로 나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운동장 너머 시계탑을 찍고 오는 놀이를 했다. 폭포의 속 중심 같은 빗속을 뛰어다니는데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다. 그땐 무얼 잃어버려 그리고 무얼 바라 소년은 그렇게 빗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나 생각했지만, 그날 연습장에 글을 쓰던 소년은 지금 휴대폰으로 자판을 누르며 쓰고 있는 자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그땐 어떻게 그렇게 자유롭고 또 마음 주머니가 컸는지.

감옥 꼭대기에 큰 창문이 있어 뛰어내리기만 하면 되었던 시절들.


매일 반복되는 학교 생활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수능. 그런 것들은 높은 감옥 천장에 뚫린 큰 구멍 같은 존재였다. 갇혀있지만 전혀 갇혀있지 않은 느낌들. 고삼 때는 아무리 갇혀있어도 감옥 꼭대기였다. 아무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이 그냥 갇혀있기만 한 상태. 꼭대기엔 큰 창문이 있어 뛰어내리기만 하면 되었던 시절들.
그때의 미성년이 부러웠다. 성년이 되고부터는 자유를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누구를 만나야 할지도 몰랐던 슬픈 이십대. 그렇게 내가 가고 싶었던 서울, 자유는 이곳에 있을까 혼자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보고 누군가로 인해 눈물도 흘려보았지만 아니었다. 자유는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눈물을 흘린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고 생기기를 바라도 생기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믿고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흘렀다. 서울로 가던 마지막 날로부터 두어 번의 큰 장마가 오고 갔다. 가끔 생각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들이 있었다. 마음속에 안겨져 오는 것들이 있었다. 갑작스레 볼에 입을 맞추는 빗방울 같은 것들이었다.
서울 가는 길엔 비가 내렸다. 비가 넘치고 물이 흘렀다. 해 한 점 없는 하늘이 물구름을 가득 머금고 물의 색으로 유영하고 있었다. 물처럼 깊어도 고개를 들어보면 눈물이 나도록 눈이 부신 비는 미성년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적시던 그 비였다. 어쩌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 속에 바라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지용 시인도 은교 시인도 동주 시인도 며칠을 고민하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그늘이 차고 소소리바람이 몰릴 때,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물이 닿을 때, 노아 때의 하늘을 한 모금 마시면서 빗방울이 된 자유로운 마음으로 자유로운 글을 쓰듯, 자유는 가랑비처럼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촉촉이 글과 몸에 스미는 것이라고 빗방울이 속삭이며 귀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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