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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May 16. 2021

잘못을 품어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영화를 쓰다 9 - 「굿 윌 헌팅」,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

 


 

 이 말 한마디에 '윌 헌팅'은 이십일 년간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그의 방탕한 천재성과 외로운 삶도, 사랑이 부재한 그의 마음과 반항하는 태도도 모두 'It’s not your fault'이다. 어떤 것도 그의 잘못인 것은 없다.

 모든 문제아들은 문제가 없다. 그들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자신의 결함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때 비로소 '윌 헌팅'은 세상과 사람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

 

 잘못이 없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든, 무슨 말을 하고 무슨 글을 쓰든,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든 그건 잘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건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니,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예 '잘못'이라는 범주에조차 해당하지 않는다고 외치고 싶다. 모두에게 'It’s not your fault'라고 말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고 싶다.

 물론 이 모든 바람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함께 나눌 때 비로소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면 너의 잘못도 아닌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용기 있게 외치며 서로를 함께 인정해주는 것은 '잘못'으로 멍든 모든 이의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아름다운 솔루션이 될 것이다.

 

'It’s not your fault' 라고 말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고 싶다.

 

 ' 헌팅' '' 교수와 심리상담을 마치고 상담실을 나왔을 때의 장면을 떠올려 본다. 고흐의 노을과 샤갈의 달빛이 파스텔 톤처럼 섞인 저녁에 그는 승객이 자기 혼자만인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간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외로운 열차를 타고, 마녀의 쌍둥이 언니가 살고 있는 평화로운 '늪의 바닥' 역으로, 도시의 네온사인을 뒤로한  한적한 마을을 향해 떠나가는 것이다.

 사실 영화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어쩌면 자신의 선택과 감정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곳으로, 아무도 서로의 잘잘못을 묻고 따지지 않는 세상으로, 지금의 그를 만든 모든 과정과 결과는 그의 잘못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담담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선택과 감정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곳으로 떠난다.

 

 '실패자'의 정의는 무엇일까? 자신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서 많은 부와 명예를 축적한다면 그는 '성공자'일까?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소위 '성공'을 위해 쓰지 않고, 그저 재능을 지니고 있기만 한 채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실패자일까? 재능을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데에 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그래도 그 사람은 실패자일까?

 '윌 헌팅'의 마지막 선택을 떠올린다. 그는 하버드 대학의 청소부라는 자신의 '일'과,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의미 없이 노닐며 폭력적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과, 자신은 천재이며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거만한 '태도'를 모두 내려놓고 진정한 '나'를 찾으러 떠나기로 결심한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더 소중한 가치를 찾아가기 위해 자신의 일과 삶과 태도를 모두 내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윌 헌팅'이 많은 가치들을 내려놓는 것은 그가 그것들 대신 '재능'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의 재능을 공익(또는 사익)을 위해 발휘할 수 있는 유망한 회사를 선택하지 않는다. '윌 헌팅'은 자신의 일과 삶과 태도를 모두 내려놓는 대신 '사랑'을 선택한다. 사실 그동안 그의 삶에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천재성 또한 사랑이 부재한 천재성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하버드 대학의 학생 '스카일라'가 그를 사랑했고, 그의 삶과 그의 천재성은 그녀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다.

 

그의 스승인 '숀' 교수처럼 그도 그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후회 없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천재성으로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고작 한 사람, 미약한 누군가, 사소한 감정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고작 미약하고 사소한'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에게 타인의 시선과 평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의 눈에 가장 아름다우면 충분한 것이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그의 인생의 스승인 '숀' 교수처럼 그도 그의 아름다운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보스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끝없이 펼쳐진 한산한 하이웨이를 가르며 그는 그녀에게로 간다. 영화의 마지막 미장센은 엔딩 크레딧 내내 아무런 영화적 장치도 없이,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윌 헌팅'의 차 한 대만을 비춘다. 아마도 그건 끝까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다는 그의 결심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자신의 자전적인 상처를 적어 내린 각본가로서의 '맷 데이먼'의 진짜 마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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