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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May 24. 2021

태어나서 처음 본 영화, 기억나시나요?

영화를 쓰다 11 - 「시네마 천국」, 영화의 본질을 말하다

 

 '시네마'라는 매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Cinema'는 '움직이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Kinema'에서 유래했다. 시네마는 '움직임'이다. 그 자체가 가장 근원적인 영화적 체험이다. 그래서 '시네마'는 우리가 태어나서 최초로 보았던 움직임의 기록을 상징하기도 한다.

 신비롭게 움직이는 '영상'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어린아이가 느낄 위대한 전율을 상상해 본다. 그 아이의 모습에 우리 각자의 어린 시절을 오버랩한다. 그 역사적인 날에 우리가 지었을 초롱초롱한 표정은 '시네마'를 처음 보았을 때 입을 다물지 못하던 영화 속 주인공 '토토'의 얼굴과도 닮았을 것이다.
 

시네마는 '움직임'이다. 그 자체가 가장 근원적인 영화적 체험이다.

  

 시네마는 '물리적 기계체'와 '추상적 이미지'의 혼합물이다. 물리적 기계체는 피사체를 촬영하는 카메라와 이미지가 투영되는 필름, 그리고 영상을 송출하는 영사기를 의미하고 추상적 이미지는 필름에 투사되는 영상 이미지, 더 나아가 그 이미지 속에 담긴 감독과 배우의 사고와 감정을 의미한다.

 전자를 '투입물', 후자를 '산출물'이라고 지칭해 본다. 예술이나 매체가 외부로 발현될 때, 물리적인 투입물과 추상적인 산출물 둘 다 실재하여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만약 두 가지 모두 발현된다 하더라도 둘 사이의 관계는 실재적(물리적, 공학적)이거나 필연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책이나 신문과 같은 인쇄 매체의 경우, '글(혹은 활자)'이라는 투입체는 종이 위에 인쇄되는 가시적 활자를 통해 실재적이고 물리적인 성격을 띨 수는 있다. (여기서 '글'이라는 투입물의 존재 자체가 실재적이라고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다. 글은 애초에 만질 수 있는 '실재'의 개념(물건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으로 가시화되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을 통해 산출되는 인간의 '사고'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나타나지 않으며, 가시화되어 발현되지 않는다. 그리고 글이 사고 행위로 변환되는 과정은 다양한 변수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뇌의 활동으로 일어나기에 기계적이거나 공학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와 더불어 한 편의 글을 읽고 반드시 특정 반응만이 발현되는 것이 아니므로, 인쇄 매체에서의 투입물과 산출물의 관계는 필연적이지 않다.

 

시네마는 '물리적 기계체'와 '추상적 이미지'의 혼합물이다.

 

 '시네마'는 다르다. 카메라로 피사체를 촬영하여 필름에 투영하고, 영사기를 조립하여 필름 한 뭉치를 삽입한 뒤, 이 모든 물리적 기계체를 작동시키면 하얀 벽에 추상적 이미지인 '신(scene)'들이 움직이는 영상으로 유영한다.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가시화되지만 손에 잡히는 '물리적 실재'는 아니다. 물리적인 벽에 추상적으로 투영되는 것이다.

 영화 속 영화, 바로 그 '시네마'는 이탈리아 작은 마을의 소극장 '시네마 파라디소'의 영사실에서, 영화를 처음 접한 어린 '토토'와 영사기 엔지니어 '알프레도'가 물리적 기계체 속으로 필름을 투입하고, 필름에 담긴 이미지를 영사기로 그대로 뿜어내며 발현된다. 영화 속 키스신을 자를 때에도, 다시 조각들을 이어 붙여 '토토'의 아름다운 엔딩 영화가 상영될 때에도, 물리적으로 가위질을 해서 필름을 자르고, 풀칠을 해서 필름을 이어 붙인다.

 

 기계는 투입한 그대로 산출된다. 정직하다. 고장 날 때도 있지만, 정직하게 고장 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무엇으로 발현될까. 사람의 상상력일까? 감성과 분위기일까? 그렇지 않다. 영화는 '기계로' 발현된다. 카메라 기계로 피사체를 촬영하고, 물리적 필름에 잔상을 남기고, 필름을 이어 붙이고 돌돌 말아 영사기에 삽입하고, 움직이는 이미지를 영사기를 통해 벽에 쏘는 일련의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과정을 통해 영화는 세상에 나오고 존재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영화는 거짓말하지 않는 정직한 기계로 발현된다. 조금 비약이지만, 그래서 영화는 정직하다. 가끔 기계처럼 고장 날 때도 있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영화가 고장 나면 기계를 수리하듯 다시 분해하고 조립해서 고치면 된다. 그러면 영화는 다시 정직해질 것이다.

 

영화가 고장나면 고치면 된다. 영화는 다시 정직해질 것이다.

 

 영화를 볼 때면 주인공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왜 이야기의 전개가 이렇게 흘러갔을까,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정확한 원인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시네마'라는 매체는 문학 작품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언어 예술인 문학과 달리 영화는 모든 시청각적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 예술이다. 꼭 플롯과 줄거리 상의 원인이나 주제 의식의 근거가 아니더라도 신(scene) 한 컷, 배우의 표정과 눈빛의 주름 한 줄, 배경음악 한 마디, 카메라의 섬세한 움직임 한 걸음, 이런 많은 것들 속에 그 이유가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래서 '시네마'는 '시네마'다. 영화를 보며 영화 외부의 '나'의 생각으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멍을 때리며' 영화 안으로 온전히 녹아들어 갈 때, 우리는 영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논리와 이성이 영화에서는 간혹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얇고 긴 필름 한 줄이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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