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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Sep 26. 2021

마음속 아몬드, '감정 주머니' 키우기

상처를 치유하는 성장문학 1 - 「아몬드」

 

1. 소설보다 더 아팠던 나의 과거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머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어머님, 어진이가 요즘 이상해요.' 라며 말을 꺼냈다. 교실에서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 툭하면 과하게 웃는다고 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튀는 아이'라고 낙인을 찍고, 또 나 스스로 그렇게 느끼기 시작한 때가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사실 '다르다'라기보다 '틀렸다'라고 보는 게 합당했다. 나는 안 좋은 쪽으로 다른 아이였으니까. 긍정적인 의미에서 '다르다'라는 말은 에디슨이나 빌 게이츠처럼 무언가 비범하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 묘사할 수 있는 말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쪽은 아니었다. 나는 평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았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었다.


 작품 속 주인공 '윤재'가 그렇다. 뇌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가지고 태어난 '윤재'는, 남들이 느끼는 기쁨ㆍ슬픔ㆍ외로움ㆍ공감ㆍ사랑 등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성장했다. 그는 자연스레 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아 왕따가 되고, 집단 따돌림을 겪는다.

 나는 그와 정반대의 문제로 아픔을 겪었다. 마음속 감정을 너무 '많이' 표현하는 게 문제였다. 특히 기쁨이나 즐거움, 놀라움과 같은 '양(+)'의 감정을 과하게 표현했다. 소설 속 표현을 변형하자면 '감정 표현 과잉증'인 셈이었다. 예쁜 꽃을 보면 감정을 속으로 담아두지 못하고 옆 친구의 어깨를 건드리며 "꽃이 너무 아름답지 않니?"라고 말하며 바로 말과 행동으로 느낌을 드러냈다. 또 수업시간에 의견을 발표할 때에도, 있는 감정 그대로를 여과 없이 친구들 앞에서 말하곤 했다. 그럴 때에는 몸동작도 커지고 표정도 우스워졌다. 덤으로 말도 많아졌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은 마치 무대 위의 어릿광대 같았다. 아무도 웃어주지 않고,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어릿광대 말이다. 친구들은 나보고 너무 튄다고 했고, 나댄다고 했다. 가식적이라고도 했다. 내가 드러내는 감정이 과하다 보니 나의 속마음은 오히려 '거짓'이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부러 꾸며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나의 감정은 모두 진실한 마음속에서 나온 '진짜 감정'이었다. 단지 그 진실한 감정의 표현양이 조금 많았던 것뿐이다.

 

나는 평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았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었다.

 

2.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아몬드를 씹듯 「아몬드」를 감상하며 주인공 '윤재'가 가진 마음속 장애와, 내가 겪었던 아픔이 서로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윤재'가 고통받는 장면을 읽을 때마다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리고 아팠다. 들추고 싶지 않은 혐오스러운 과거가 자꾸 생각났다. 그것은 보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마음속의 구멍과도 같았다.

 처음엔 '윤재'가 자신의 심리적 장애 때문에 왕따를 당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그에게 동정심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윤재'에 대한 동정이기도 했지만, 무의식 중에 나 자신에게 투영하는 동정심이기도 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고 가엾다고 느낀 것이다. 내 마음은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느 아버지가 자신과 똑같은 아픔을 겪는 아들을 보며 흘리는 눈물과도 같았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마음속 장애와 아픔을 가진 '윤재'와 나. 서로가 공통으로 가진 아픔에 주목하면서, '과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면 남들과 다르지 않고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두 가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보았다.

 작품 속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평범하다'는 것은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이다. '평범하다'라는 말은 '정상적이다'라는 뜻이고, '정상적이다'라는 말은 '남들과 비슷하다'라는 뜻과도 같다. 하지만 남들과 비슷하다는 건 무엇일까? 사람은 다 다른데, 누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

 우리 모두는 개개인마다 마음씨가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람의 성격에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과도 같다. 작품 속 윤재나 나와 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과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면 남들과 다르지 않고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3. 내 안의 아몬드, '감정 주머니'를 키우자

 

 '윤재'와 나에게, 그리고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해답의 실마리는 '평범함'과 '다름'의 조화점을 찾는 데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도록 남들처럼 적절히 '평범'하면서, 자신만이 가진 정체성과 개성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남들과는 적절히 '다를' 수 있는 중도(中道)의 미덕이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평범함'과 '다름'의 가치를 모두 겸비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열한 살, 그 시기는 나의 '감정 표현 과잉증'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어머니는 '이상한 아이'였던 나를 심리상담센터로 데리고 갔고, 나는 그곳에서 상담 선생님과 몇 달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고, 놀이를 하며 상담치료를 받았다. 상담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진아.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하나씩 있단다. 그 주머니는 사람들마다 생김새도, 크기도 다 다르지. 어진이는 마음속에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너무나도 풍부한 아이인데, 그 감정을 담는 주머니가 작은 것뿐이야. 네 마음속 감정 주머니의 크기를 조금 더 키운다면, 어진이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조절할 수 있는 멋진 아이가 될 거란다."

 선생님의 다른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이야기만은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감정 주머니'라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들은 날이기 때문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로 실제로 마음속에 감정 주머니가 있다고 믿게 되었고, 그것을 키우기 위해 애썼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 주머니를 잊고 살다가 이 작품을 감상하며 감정 주머니의 존재를 다시금 인지했다. 작품 속에서 '아몬드'로 표상되는 뇌 편도체 기관이 바로 감정 주머니였던 것이다. 어쩌면 '평범함'과 '다름'의 조화를 찾는 열쇠를 이 작은 아몬드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실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크나큰 장점이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과 속마음을 상대에게 솔직하게 전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극대화되려면, 그 감정을 담는 주머니의 크기도 커야 한다. 감정 주머니의 크기가 감정의 양보다 작다면, 감정들은 주머니 밖으로 넘쳐흐르게 된다. 넘쳐흐르는 감정들은 더 이상 양질의 감정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잉여 감정'이고,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감정이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얘는 이상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감정이 되고 마는 것이다.

 

 '평범함'과 '다름'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 안의 아몬드인 감정 주머니를 크게 키우는 것이다. 감정 주머니를 넓게 늘린다면, 풍부하고 많은 양의 감정들이 주머니 안에 모두 담길 수 있다. 이 말은 곧 '감정을 적절한 때에, 적절한 양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뜻과 같다. 감정을 드러내야 할 때와 드러내지 않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이고, 어떠한 감정을 언제 어떻게 꺼내어 표현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과 같다. 즉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아는 것이다.

 이 과정이 잘 이루어졌다면 이제 주머니에 담긴 풍부한 감정들 중에 몇 가지를 꺼내어 다채롭게 조화시켜 표현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평범함'과 '다름'의 중도(中道)를 지킬 수 있는 멋진 방법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나의 감정을 다 담고도 마음의 여유가 생길 정도로 감정 주머니가 넓어진다면, 타인의 감정까지도 나의 주머니에 담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감정까지 포옹하는 '공감'의 미덕을 실현하는 것이다.

 

"네 마음속 감정 주머니의 크기를 조금 더 키운다면, 어진이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조절할 수 있는 멋진 아이가 될 거란다."

 

4. '같이의 가치'를 믿다

 

 평범함과 다름의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하려면 '공동체'의 존재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윤재'는 학교 공동체 속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하지만 그를 일어서게 한 것도, 그의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킨 것도 결국 학교 공동체였고, 같은 반 아이들들과 선생님이었다.

 나의 꿈은 아이들에게 말과 글의 아름다운 가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힘을 잊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는 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마치 불씨와 같다. 잘 관리하면 따뜻한 모닥불이 되지만, 잘못 다루면 돌이킬 수 없는 산불이 되는 것이 바로 공동체이다.

 학생들 개개인마다 그들이 지닌 감정 주머니와 그 안의 감정들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 너무 평범하다고 해서, 또는 누군가 너무 다르다고 해서 그 아이를 차별하거나 낙오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교육이다. 평범한 아이가 있다면 주머니 속 감정을 풍부하게 더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남들과는 다른 아이가 있다면 주머니를 키워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 십 년 뒤 교단에서 아이들을 마주할 어진 선생님은 그런 교육을 지향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모두의 같음과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 앞으로의 작은 바람이다.

 

'평범함'과 '다름'이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우리 모두가 같이 걸었으면 좋겠다.

 

 평범함과 다름의 조화를 향해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간다면 어려움은 절반이 되고, 보람은 곱절이 된다. '윤재'는 처음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가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소통과 교감으로 함께 아픔을 극복하고 담대하게 성장했다. 그들의 이야기처럼 주위 사람들과 서로 교감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며 다 함께 손을 잡는다면,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아픔을 극복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 '평범함'과 '다름'이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우리 모두가 같이 걸었으면 좋겠다.


 * 함께 어우러진 모든 그림은 「아몬드」의 표지 일러스트레이터 '영점일(0.1)' 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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