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없이는 대화할 수 없다. 책이 없으면 할 말이 없어 그저 듣기만 한다. 침묵이다.
예전엔 자기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이 경험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험이 없는 건 슬프다. 자기만의 경험이 말을 만들고 '나'를 만든다고 여겼다.
졸업을 앞둔 아는 동생이 졸업을 할지 휴학을 할지 어떤 게 좋을지 내게 물었다. 나 역시도 그것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졸업을 한 나는, 나의 경험을 말하며 이렇게 충고했다.
"휴학을 한 번 했는데 더 하는 건 소용없어. 휴학한다고 해서 내가 빨리 꿈을 찾는 게 아니더라고. 그러니 너도 나처럼 졸업해. 사람을 궁지로 몰면 무슨 수가 생기는 우연성에 '나'를 맡기는 것도 괜찮아."
그때는 그런 말을 하면서 졸업을 앞두고 고민하지 않은 친구를 떠올렸다. 그리고 우월감을 느꼈다. 내가 아파봤기에 충고할 수 있지만 친구는 충고할 수 없다고. 친구가 혼자가 고민했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내가 침묵하고 있다. 나도 내 인생을 말하고 싶은데 그럴 것이 없는 것 같다. 모든 것이 흘러가고 나는 시간을 보낸다. 그 속에 사건이라고는 별 게 아니라서 금세 잊는다.
오늘도 그렇게 잊어야 한다. 나를 보자마자 다리를 다쳤냐고 묻는 동네 아주머니를 잊어야 한다. 지금은 절뚝거리지만 내일은 다를 거라고 당차게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후회와 불안을 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