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갔다. 몇 바퀴를 돌며 걷고 나자, 테이블에 앉을 생각으로 이쪽저쪽을 기웃댔다. 그러다 한 자리에 가방을 올려두고 테이블을 차지했다. 그때 테이블에 파리가 앉아 있는 걸 봤다. 아주 큰 파리였다. 날아가라고 탁상을 손으로 쳐도 파리는 몇 번 껑충할 뿐 날아가지 않았다. 계속 앉아 있었다. 파리 입장에서는 앉으나 서나 같은 자세겠지만 내 눈엔 멍하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탁상을 툭툭 쳐도 파리는 나 몰라라 했는지 모른다.
그런 파리를 두고, 난 자리에 앉았다. 파리와 합석한 것이다. 어젯밤 일기를 쓰지 않았기에, 일기장을 먼저 꺼냈다. 가져온 텀블러에 든 커피를 마시며 말이다. 커피 냄새 때문일까. 파리가 이리 껑충, 저리 껑충하더니 이내 날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았다. 잠깐 사이 나도 파리를 잊고, 이제 일기를 쓰려 펜을 드는 순간, 귀에 아주 가까이 '윙윙'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 파리였다. 손으로 공중을 저어 보기도 했으나 파리는 날 떠나지 않고 윙윙거렸다.
내 자리야, 저리 비켜 인간! 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윙윙대는 소리 속에서 난 이렇게 답했다. 안 비켜, 절대 안 비켜! 비키라고 이리 시끄럽게 구나 본데 난 안 비킬 거야!
무슨 심보인지, 비켜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까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옮길 만한 마땅한 자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짐을 싸야 하는 것도, 걸음을 옮기는 것도 모두 귀찮았다. 헤드폰을 써서 윙윙대는 소리를 차단할까 생각하며 어제의 일기를 썼다. 어제의 일기는 의외로 짧았다. 역시 그날 당일에 쓰지 않으면 하루의 일쯤은 휘발된다. 일기를 다 쓰고 보니 윙윙거리는 소리가 어느새 없어져 있었다.
내가 파리를 이겼다. 멍 때리며 앉아 있던 파리를 내가 방해했다. 그러고는 파리 다음으로 내가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땐 몰랐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방해해서 미안하다. 멍하니 있는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