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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Aug 20. 2023

지적 허영심이 있네요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 읽으며... 분한 마음이 든다

재활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운동치료를 받으러 치료실로 갔는데,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5분의 여유 시간이 있어 그 틈에 책을 읽었다. 그리고 치료를 받는데, 지나가던 물리치료사인 선생님께서 나에게 책에 관해 물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책을 일부러 갖고 다닌다고 말했던 것만 기억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냐는 물음에, 그런 점도 있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그 대화 끝에 이런 말을 하셨다. “지적 허영심이 있네요.”     


이 말이 오늘에야 다시 생각난 건 ‘허영’이라는 단어를 책에서 봤기 때문이다.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서는 ‘허영’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실은 비어 있지만 겉은 매우 화려한 것.>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287. 독재자도 훌륭한 통치자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 하고, 바람을 피우는 사람도 지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도둑도 정직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행복을 느끼겠지요. 이것이 바로 사람의 허영입니다.

    

나에게도 여러 허영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지식이 많은 척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 때부터 내가 나를 평가하길 못생겼고 뚱뚱하니, 내가 무시받지 않고 지낼 방법은 공부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도 뚱뚱했으니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방법은 책뿐이었다. 그러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부러워졌고 이제는 타인에게 사랑받을 방법, 그리고 내가 그렇게 되고 싶단 마음으로 독서를 한다. 그러다 보니 ‘난 책 읽는 사람이다~’고 내세우고 그에 관해 칭찬받고 싶어 남에게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줄 겸 진짜 독서를 습관화할 겸 책을 들고 다닌다. 그런 이유로 “지적 허영심이 있네요.”라는 말에 수긍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뿐일까? 괜히 분함이 솟는다. 허영이라는 것은 내실이 없다는 말인데, 정말 난 그런가?   

  

입원해 있을 때, 치료 시간까지 5분의 여유 시간이 매번 있었다. 전기치료 시간 20분도 있었다. 그때마다 난 책을 읽었다. 책을 손에 들며 매번 난 나에게 질문했다. ‘왜 이 시간에 책을 보는가?’ 가장 큰 이유는, 민망함이었다. 5분의 여유 시간에 운동 매트에 앉아 치료사 선생님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 대화 나눌 사람도 없고, 운동을 하기엔 내가 운동을 싫어하니 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할 일이 없다는 것, 선생님만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주변에 많은 시선이 있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남들의 시선이 나에게 닿을까 두려워, 혼자 있게 되면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하곤 했다. 조금 커서는 책을 읽었고. 그러니 5분의 여유 시간에 책을 읽은 것은 지적 허영심만이 아니라 혼자인 내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마음도 있는 것이다.       


책이 재밌다는 이유도 있다. 운동을 싫어한다. 누구나 한다는 스트레칭도 안 하며 살았다. 그래서 아팠는지도 모르지. 그런 내가 재활병원에 입원하고, 스트레칭부터 동작 하나하나를 배우고 연습해야 했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다 보니, 좋아하고 즐거운 행동을 찾아 이 상황을 견뎌야 했다. 그게 독서다. 책 읽는 게 너무 즐거운데, 재활에 맞춰 하루 일과를 끝내면 8시고, 9시엔 자야 했다. 책 읽을 시간 즉, 즐거운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난 시간 나는 틈틈이 책을 읽었다.

독서하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더 좋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복시로 인해 책을 못 읽다가 수술하고 재활병원에 와서야 읽을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4개월 만의 책은 달콤했다. 책 속의 이야기가 흑백인 내 생활에 색을 입혀주는 것 같았다.     


지적 허영심에 책을 들고 다니긴 한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이유가 많다. 내일도 이 같은 이유로 책을 들고 집 밖을 나설 생각이다.   

   

허영=내실 없음

아니, 나 그렇게 내실이 없나?    

  

괜히 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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