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갖고 있긴 한데 당시에 끝까지 읽은 걸까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책에 대한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책이 깨끗해서다. 기분 내키는 대로 이 책을 뽑아 들었고 기분 내키는 대로 261쪽을 폈다.
261. 베르그송의 지적처럼 이렇게 웃음은 상투적으로 반복되는 행동, 혹은 일상에 대한 조롱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웃음에는 혁명적 힘이 있는 법입니다. 그것은 유연한 생명의 운동을 긍정하는 반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행위를 거부하는 무의식적 행위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언니와 통화하다가 깔깔깔 소리 내며 크게 웃었다. 이번주 처음인, 큰 웃음이었다. 언니가 한 말은 간단했다. 형부가 갑자기 휴가를 냈다는 것이다. 형부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다. 말 그대로 휴가를 낸 건데 회사에서 조만간 바쁠 것 같다고 이번에 쓰라고 했단다. 그런데 언니는 화가 났다. 상의도 없이, 가족계획도 없이 매번 휴가를 쓰는 게 가족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언니의 말을 듣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뭐가 그리 웃겼을까 생각했다. 예측에서 벗어나는 말. 언니의 말이 그런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가족을 우선하는 언니다. 육아에 지칠 만도 한데 불평 없이 지내며, 형부가 하자는 대로 다 하는 현모양처다. 그래서 언니 입에 육아가 힘들다거나 결혼 생활에 불만이 있단 이야기가 나오면 평소와 다른 언니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그게 언니를 조롱하는 걸까? 절대 아니다. 기계와 같은 일상의 모습이 아닌 언니의 모습을 좋아하는 거다. 유연한 생명을 긍정한다.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진 맨 얼굴을 좋아한다. 맨 얼굴을 나에게 보여주는 우리의 관계를 좋아한다. 나의 웃음은 그런 의미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고, 속을 알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 관계가 늘었다. 매번 만나는 사람들의 겉만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어느 날 불쑥 속내를 보이면 예측하지 못했던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난다. 그리고 그런 속내를 더 보고 싶다.
웃음은 너도 나도 유연한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너도 나에게, 나도 너에게 마음껏 웃음을 보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