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티스트웨이를 잡고

솔직한 내 마음이 넘치는 모닝페이지

by 엄달님

2025.12.15. 월 10:27


"위대한 창조주여(누구?), 얼마나 많이 할지는 제가 맡겠으니 얼마나 잘할지는 당신이 맡으소서."라는 표어를 작업실에 붙여 놓으라는데. 창조주는 하나님이고 이 말 뜻은 많은 일을 벌이라는 뜻인가. 모르겠다.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모닝페이지를 다시 쓰는 김에 <아티스트 웨이>를 옆에 펼쳐두고 함께 읽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 내 상태는 창조성은 막혔으며, 과거에 얽매여있으며, 시기 질투와 자격지심으로 가득 차 있고 자존감은 떨어져 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자는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어제 깨달았다. J가 나를 구덩이에서 꺼내주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의 말을 참고해서 결국에 움직이는 것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리를 지켜야 된다.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이번 주의 중요한 일 다섯 가지를 쓴다.

내가 즐기는 일은 무엇인가? 스무 가지를 쓴다.


일단 이 두 가지만 확인해 보고, 오늘이 월요일이니까(항상 진부한 변명과 핑계가 되는 월요일) 오늘부터 아티스트 웨이를 다시 읽기로 했다. 나는 이렇게 끊임없이 부서지고 다시 모아 붙이고 또 무너지고 다시 쌓고 또 좌절하고 그렇지만 북돋는 작업을 인생에 있어 늘 반복해야만 했다. 사실 이것이 지겹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나이를 먹었고, 그렇지 않으면 이제 안 된다는 말을 거의 매주 또 반복하고 있다. 난 영원히 종료되지 않는 회전목마의 작은 말 위에 앉아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어렵다. 이번 주는 이미 시작되었으니, 저번 주 모닝페이지를 쓰지 못하는 동안 일어난 중요한 일 다섯 가지를 쓰겠다.


1. 할머니가 다시 큰 이모 집으로 돌아갔다.

2. 뮤지컬 아카데미 동기들과 연말 모임을 가졌다.

3. 뮤지컬 리딩공연을 위해 숙소를 대여해 새벽까지 연습을 하고 함께 거실에 누워 잤다.

4. 리딩공연을 올렸다.

5. 책 읽기를 하긴.. 했다.


이것들에 시간을 얼마나 할애했냐고? 집에 돌아왔을 때 이미 할머니는 가고 난 후였다. 내가 이제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것이 다시 전화 걸기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땐 무기력했다. 같이 있을 땐 쉽게 짜증이 나더니만 왜 할머니가 가니까 허전할까. '내 사랑'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져서 그런가. 매일 새벽마다 넘어지진 않을까 화장실을 나오며 바닥을 닦고 노심초사하는 일이 사라졌다. 내가 할머니에게 할애한 시간은 0에 가까웠다.

동기들과의 연말 모임은 새벽이 지나도록 오랫동안 이어졌다. 일 년에 아주 가끔이지만 이번만큼은 이 사람들에게 시간을 많이 썼다. 눈꺼풀이 무거워져 저절로 감길 때까지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2026년 계획을 세울 것을 강제했다. 몇몇은 하기 싫어했지만 그냥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의 찝찝함이 있었다. 괜히 강요하는 것인가, 그렇지만 듣고 싶었다. 막상 내 계획을 말할 땐 생각나는 것은 많으나 확신이 없어서 부끄러웠다. 다들 어려움을 이겨내면서도 잘 지내고 있다. 서울 상경을 목표하고 있는 언니,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미래를 그려가는 언니,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동생,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을 발전시키려는 언니, 그리고 서울에서 나와 연극을 만들어 보려는 친구. 이들을 보며 또 부끄러워졌다. (심지어 공연 중 동기 언니 한 명이 대극장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부럽기도 하고 오랫동안 발전이 없었던 것만 같은 나 자신을 원망했다)

어쨌든 지난주 가장 중요한 일은 뮤지컬 리딩공연을 올렸다는 거다. 대구 공연, 15분짜리 세 작품에 출연하는데 40만 원밖에 받지 못 한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대구로 갔다. 이미 받을 돈은 왕복 기차비로 다 썼다. 가성비가 떨어지다 못해 본전도 못 찾은 일이지만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현장에 꼴 보기 싫은 얼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새롭게 착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공연이 끝난 후 집으로 다시 와야 했을 땐 먹먹하고 아쉬웠다.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10년 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작업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을까? 인연을 이어가고 있을까? 이 일에 저번주 한 주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즐거워하는 일이다. 작가의 빈 노트가 빽빽한 글이 되고, 작곡가의 빈 오선지가 춤을 추는 일을 지켜봤다. 그걸 우리는 살려내야만 한다 무대에서. 이 작업은 언제나 그렇듯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무조건 잘 해내야 하는 일이다. 잘 해냈을지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이 공연을 잘 봐주셨다 하니 나는 과업을 잘 마친 기분이라 뿌듯했다. 역시나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책 읽기에는 아주 아주 적은 시간을 할애했다. 내면의 힘이 사라지는 까닭은 책을 읽지 않아서일까. 오늘부터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꼭 책을 읽어야겠다. 그나마 시간을 쪼개서 읽었던 책 퓨처 셀프 어쩌고.


@ <퓨처 셀프> 中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다고 해서 그 경험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말라.. 고통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으나, 끔찍한 성범죄를 겪어보지 못 한 남자 작가가 쓸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하며 비틀어 생각하는 나였다. 내가 7살 때 피아노학원 건물 화장실에서 겪은 그 일을 어떻게 하면 내 인생에서 긍정적으로 전환하여 생각할 수 있을까? 그때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기다리라는 말에 넋을 놓고 두려움에 떨며 기다렸다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도망쳤다. 도망치다가 마주치면 더 큰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옷을 추켜 입고 도망쳤다. 일곱 살짜리 어린애였다. 이 일이 내 인생에 가치 있는 일인가? 이런 경험도 인생에 필요했던 것인가? 남자들은 역시 뭘 몰라,라고 생각하는 나다. 그렇지만 잊고 싶은 일도 좋은 경험으로써 생각해야 한다면 나는 살아남아 얻은 내 인생이 더 소중하다고 밖엔 생각하지 못하겠다. 쓰고 보니 정말로 그렇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생, 누군가는 타인에 의해 잃어버렸고 부서진 인생이다. 내가 일곱 살 때 붙잡은 인생이다. 오늘 하루가 소중해야만 한다. 감사해야 한다.


두 번째, 내가 즐기는 일은 무엇인가? 스무 가지를 쓰라.. 스무 가지라.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싶지만 (왜냐하면 나는 항상 잡식성 찍먹 인간으로,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이제는 좀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었다) 일단 적어보자.


무대에 서는 일, 노래 부르기, 친구 만나기, 데이트, 글 쓰기, 내 글 읽기, 밴드 합주, 좋은 데 걷기, 문구 쇼핑, 맛있는 음식 먹기, 자유로운 여행, 아이토키 친구들 만나기, 가족 시간, 콘서트 가기, 템플스테이, 캠핑이나 차박, 좋은 음악 듣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좋은 곳 발견하기, 사진 찍기, 요리 '해보기'


이 중에서 무대에 서고 노래 부르고 친구를 만나고 데이트하고 글 쓰고 내 글 읽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이토키 친구를 만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최근에도 한 것들이다. 쓰다 보니 스무 가지가 부족하다. 내가 즐기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쓰다가 알았다. 이 중에서 밴드 합주, 좋은 데 걷기, 문구 쇼핑, 자유로운 여행, 콘서트 가기, 템플스테이, 캠핑, 차박, 좋은 음악 듣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 발견하기, 사진 찍기, 요리는 비교적 오랫동안 하지 못 했다. 사진은 블로그 용으로만 찍었지 출사를 나간 것은 오래됐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생각보다 음악을 많이 듣지 못했다. 틈틈이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밴드 음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지금이다. 연말엔 부모님과 이탈리아 아트 트립을 간다. 계획을 세우는 데 스트레스를 받을 게 아니라 어찌 보면 인생에서 다시없을 부모님과의 시간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많이 소중해진다. 오랜만에 찬 바람 부는 템플스테이도 가고 싶고 차박 하면서 별도 보고 싶다.


오늘은 글이 많이 길어졌다. 사실 생각이 많은 아침이었는데 글을 쓰고 나니 조금은 상쾌하다. 오늘은 12월 말에 올릴 연극 낭독극 첫 연습이 있는 날이다. 사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도 있고 새로 만나는 얼굴도 있어서 떨린다. 또다시 엄청 친한 사람들 틈바구니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그 모든 얼굴이 꿈에 까지 나와서 내가 두려워하고 있구나, 를 상기시켜 줬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그 연습실로 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잘 해낼 것이다.


요즘엔 내가 배우를 시작한 2023년 4월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오히려 퇴보하진 않았는가 자책을 많이 하고 서글퍼만 했다. 하나씩. 하나씩 다시 쌓아보자. 운동을 안 한지 오래됐다. 즐기는 것 스무 가지 목록에 운동과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다. 맞다. 나는 운동을 즐기지 않는다. 즐기는 운동을 꼭 찾고 싶다. 내가 추구하는 삶은 요가하고 명상하는 삶인데 왜 이렇게 귀찮은지 모르겠다. 하나씩, 조금씩. 어제 답니에게 스물아홉 정신병에 걸렸다 하니, 너 스물일곱 아니야? 나는 스물일곱인데. 왜 너 혼자 나이가 많아? 한다. 역시 미국에서 지내다 온 애는 다르다 생각했다. 맞다, 생각만 달리 먹었으면 됐을 것을. 그리고 누구나 서른이 되고, 누구나 지나는 나이인데 내가 왜 이렇게 청승을 떠나 싶다 갑자기.

두려울 수 있다. 있는데, 너무 잠식되지 말자. 괜히 오버하지 말자.


일주일을 밀린 생각이라 오늘은 모닝페이지가 아니라 단편집을 쓴 것 같은 기분이 갑자기. 이만 줄여야겠다. 오늘도 해내야 할 소중한 일들이 많으니까. 그럼에도 힘이 별로 나지 않는 오늘 아침.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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