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똑똑해서 오히려 멍청한 세상과 나에 관한 고찰(?)
2025.12.6. 토 9:28
사실 일어난 지 한참 됐는데 쓰는 모닝페이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 보는 습관을 버려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이제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게 웃기다. 90년대 후반 생인 내가 이런 말 하긴 좀 민망하지만 나는 어쩠든 간에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 중간의 시대를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나, 친구들과 약속을 어떻게 잡았나. 휴대폰을 못 쓰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집에서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혼자 1인 2역으로 인형놀이를 하기도 하고, 책도 읽고, 피아노도 뚱땅뚱땅 쳤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도 뚱뚱한 컴퓨터는 있었기 때문에 동요를 검색해서 언니와 함께 부르고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를 기계에 넣어 봤던 것이 생각난다.
동방신기의 데뷔곡 HUG 뮤직비디오가 나온 날 언니와 함께 컴퓨터방에서 그 뮤직비디오를 봤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봉숭아도 아닌 꽃을 따다가 빻아서 손톱에 올려 물들이며 놀았다. 언니나 동네 언니오빠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엔 혼자 심심하게 그네를 타다가 모르는 친구들이 오면 용기 있게 말을 걸어 함께 놀기도 했다. 그 친구들 집에 놀러 가기도 했는데, 그들의 얼굴과 이름 모두 기억이 안 나지만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걔네들의 집 위치다. 삼선교 삼선공원 정문 바로 오른편에 있던 그 주택. 그 길로 내려오다 보면 삼선슈퍼가 있었는데, 삼선슈퍼 왼쪽에 난 작은 골목에 있었던 작은 빌라. 그 집에 누가 살았고, 어떤 얼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 엄마가 구워주신 핫케이크 맛이 생각난다. 지금은 그 동네가 다 밀려 흙만 남았다. 아파트 숲이 새로 생길 거다.
원래 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게 참 아쉽다. 삼선초등학교 앞 진주네 분식, 왕자문구, 통큰딱따구리. 난 초등학교 2학년 때 큰길 건너 훨씬 큰 학교인 돈암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왜 학교 문구점이나 분식에 관한 추억은 1, 2학년 어릴 때 위주로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마 진주네 분식 떡볶이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아무튼 그땐 이렇게 투박하게 놀았다. (어른들이 보면 코웃음이 날지 모르겠지만) 내가 중학교 2학년 당시에 '갤럭시 S2'라는 신식 휴대폰을 우리 반에서 가장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 휴대폰을 구경하려고 애들이 몰려들었다. 고등학생 땐 처음으로 '아이폰6'를 사용하게 됐고,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는 바뀐 휴대폰을 자신에게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한다면서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내가 친구에게 새 휴대폰을 먼저 보여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과하게 섭섭해했다. 아무튼 스마트폰이라는 게 내가 학생 때만 해도 약간의 신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그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됐을 때를 상상하면, 나는 그 작은 화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만 같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학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한동안 일부러 2G 피처폰을 사용한 적이 있다. 내가 왜 아침에 휴대폰 보는 습관을 지우지 못할까에서 시작해 추억을 회상했다가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정말이지 이 작은 고철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위대한 발명품이자 동시에 TV 바보상자보다 더 나를 멍청하게 만드는 바보덩어리다. 심지어 챗 GPT까지 요즘 나를 도와주고 있으니 무언가 열심히 찾아보고 탐구하는 일을 아예 중단하게 되었고, 그 감각마저 잊어버린 실정이다.
엄마가 <이탈리아 아트트립>이라는 책을 읽고 꼭 이탈리아 미술기행을 가고 싶다 하셔서 우리 가족은 연말에 엄마와 아빠, 나 셋이서 이탈리아에 가게 됐다.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 가보는 유럽을 그것도 자유 여행으로, 7박 8일, 총 타야 하는 기차 횟수 6번, 거기에 환승까지. 내가 여행을 계획하고 표를 예매하고 실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며칠 동안 받았다. 그냥 내 여행도 임박해서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다니는 나에겐 너무나도 큰 숙제였다. 이번 여행은 챗 GPT의 도움 없이는 어쩌면 성사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없는 현실을 떠올린다면 너무나 무서울 정도다. 물론 중간중간 오류가 많고 헷갈려할 때는 내가 바로잡아줘야 했고, 여전히 그녀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난 이 정도의 도움도 너무나 감사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내가 이렇게나 고도로 학습된 기계에게 과하게 의존하고 있는 이 현실 자체가 무섭기도 하다. 그녀가 없는 현실도 무섭지만, 그녀가 있는 현실도 한편으론 무섭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난 이것의 존재를 잘 몰랐다. 없이도 살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찾아보고, 알아보고, 여행 책을 참고해 보고,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메모하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는 휴대폰, 인공지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내 무기력이 무섭다. 심지어 티켓 예매도 인터넷보다 휴대폰으로 바로 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쉽다. 인터넷으로 카드 결제를 하려면 살짝 번거롭다. 전 지구적으로 과도하게 디지털화되어있다. 심지어 사람들은 훨씬 똑똑해져서 더욱 똑똑한 기계를 만든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멍청해진다. 발전과 나의 멍청함에 가속도가 붙는다.
가만히 앉아서 미래를 두려워하고 싶지 않아서 카메라를 샀다. 친구와 대화를 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똑똑해지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책을 읽어야 한단다. 글자를 읽는 방법도 까먹은 것 같다. 한 손에 들어오지 않는 책의 네모는 이제 티비 화면을 들고 있는 것처럼 비대하게 느껴진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좋은 비유가 필요한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방법을 알기 위해선 생각해야 하고, 읽어야 하고, 써야 할 텐데 말이다. 사실은 오늘 아침에도 넋 놓고 휴대폰을 보다가 모닝페이지를 쓸 생각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고도로 똑똑한 이 기계가 망각하게 한다. 스티브 잡스의 음모인가. 그렇다기엔 너무나 큰 기술을 인간에게 선물해 주긴 했지.
지금 내가 빠져 있는 이 자그마한 물건은 컴퓨터 기술에 미쳐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부의 집약체 그 자체다. 이 와중에 나는 내 주체성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아침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기계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아픔을 느끼고, 공유하고, 한 사람을 대변해서 무대에 올리는 일. 내 재능을 갈고닦는 일, 내 목소리로 연기로 글로 행복을 주거나, 혹은 위로해 주는 일. 기술은 그것의 수단으로써 이용해 보자고 다짐한다. 자꾸만 멍청해지지 말자. 읽자. 쓰자. 부르자. 휴대폰 중독에 빠져있는 나에게 발악해 본다.
오늘은 연극 두 편을 보는 날이다. 사실 나에겐 사회활동의 일환이었지만, 이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갑자기 격렬하게 어서 연극이 보고 싶어 졌다. 연극을 보고 기록해야지. 생각해야지. J와 이야기도 함께 나눠봐야지. 그리고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대화를 해야지, 음식의 맛을 음미해야지. 종로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못 다 읽은 책을 읽어야지. 돌아오는 길에는 역시나 대화를 해야지. 강제로 디톡스 시간을 좀 가져야겠다. 자꾸만 바보가 되는 나 자신을 참아줄 수가 없다. 그리고 오늘은 대본을 읽고 내 캐릭터를 분석해서 뚱뚱한 아이로 만들어야겠다. 지금은 너무 얇디얇은 인물이라. 이탈리아 여행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갈고리로 긁어모으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이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데 있어 왜 그런지 글을 쓰다 보니 이해가 된다. 더불어 살기 쉽지 않은 요즘이다. 그런데 웃긴 건, 내가 멍청해져서 이 마음이 글로 표현이 안 된다.
책 반납 연체 중. 반납을 하면서 책을 읽다 와야겠다. 왜 또 연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