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과 망각에 대처하는 마음의 자세

캐나다 이민 살이 #3 ; 늙어감에 대한 생각 #2

by 메이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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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패스 카드 (밴쿠버 광역시에서 사용되는 교통카드)와 사원증을 잃어버렸다.

팬데믹 때부터 재택근무를 하는데, 올해 초부터 일주일에 하루는 사무실로 출근을 해야 한다. 퇴근길에 버스에서 전철로 갈아타면서 카드를 찍었는데, 역에 도착해서 내리려고 하는데 카드가 없었다. 신분증을 넣어서 목에 걸 수 있는 카드 홀더가 줄과 연결하는 부분이 부러져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하필이면 그날 옆 주머니가 얕은 쟈켓을 입고 있어서 주머니에서 빠져 떨어진 모양이었다.


원래 나는 뭘 잘 잃어버리는 편이다. 정신을 딴 데 파니까 그런 거라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지청구를 자주 들었다. 사실이다. 뭔가에 집중하면 딴 걸 까먹는다. 딴생각하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적도 많고 머리핀이나 귀걸이 같은 작은 물건을 물론이고 장갑, 우산, 모자 같은 것들이나 지갑도 여러 번 잃어버렸다.

신경을 써도 물건들은 아차 하는 순간 나를 떠나갔다. 애쓴다고 물건들이 나를 떠나는 도둑처럼 찾아오는 그 찰나의 순간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잃어 비리지 않기로 했는 대신 '잃어버림'을 잘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대신 그 순간이 찾아와 뭔가를 잃어버리더라도 손실을 줄이는 쪽으로 대책을 세웠다.


첫 번째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기” 전략이었다. 열쇠들을 하나의 뭉치로 해놓지 않는다. 아파트 현관 열쇠와 집 현관 열쇠는 같이 묶어놓지만, 차 열쇠와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열쇠는 각각 따로 키링에 달아 두고 필요한 것만 가지고 나간다.


두 번째가 손에 들고 다니는 물건의 개수를 줄인다. 손에서 놓쳐도 몸에 붙어 있을 수 있게 해 둔다. 손에 들고 있는 대신 가방에 넣거나 흘리기 쉬운 물건들은 줄을 달아둔다. 모자나 선글라스에 줄을 달아두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클립 귀걸이 대신 귀를 뚫어서 침 형태의 귀걸이를 하는 것도 분실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로는 심하게 아끼는 걸 잃어버리면, 속이 상하니까 속이 상하지 않으려면 물건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 것이 좋다. 비싼 귀걸이, 목걸이나 반지 같은 장신구를 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경우의 수가 줄기도 한다. 그래서 돈을 절약할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는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제적인 대책을 알아놓는 것이다. 특히 여행할 때, 여권이나 카드를 분실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미리 알아놓으면 도움이 된다. 여권의 첫 번째 페이지를 복사해서 항상 따로 보관하고 신용카드 분실 시의 백업 플랜을 마련해 둔다.


나이가 들면서 잃어버리는 일이 좀 줄기도 했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에서 잘 안 나가서 그런지 오랜만에 뭔가를 잃어버렸다. 카드 홀더를 잃어버린 걸 안 순간, 사고가 정지된다. 아... 좋게 된 참에 요팟시에 사연이라도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 나는 <요즘은 팟캐스트 시대>의 애청자이다.


앉았던 의자 밑이랑 바닥도 살펴보았지만 없다. 우선은 전철에서 내려야 했다. 교통카드가 없으니 역에서 나올 수가 없어서 로비에 서 있는 시큐리티에게 가서 "나 교통카드 잃어버렸어. 나 좀 나가게 해 줄 수 있어?" 물었더니 게이트를 열어 주었다. 그에게 카드가 분실물 센터(Lost & Found)로 가게 되면 언제쯤 알 수 있는지 물어보니 운행이 끝나고 각 역에 있는 걸 모아서 보내니까 다음날 전화해 보라고 한다. 어머니가 사주신 비싼 파라솔을 전철에서 잃어버리고 딱 한 번 전화해 본 적이 있는데 역시 찾지 못했다.


온라인으로 충전하기 위해 사이트에 컴패스 카드를 등록을 래 두었기 때문에 집에 와서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다행히 내가 전철역에서 갈아탄 기록만 나오고 그 이후에 사용한 기록은 없다. 카드를 주운 사람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바로 분실 신고를 하고 카드를 정지시키자 새 카드를 보내줄지 묻는다. 다시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새 카드를 신청했다.


직장 웹사이트에 나오는 사원증 카드 분실 시 프로토콜은 첫 번째가, 직장 직속 상사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멜을 보냈다. 카드가 건물에 들어가기 위한 액세스 키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분실 시 보안 담당부서에 신고해야 하는데 그 신고는 상사가 하게 되는 모양이다.


카드를 분실신고를 하면 다시 찾아도 사용할 수 없고, 무조건 새 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직장이 학교라 사원증이 학생증과 똑같이 생겼고 학생증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도서관 이용증이기도 하고,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음식을 할인해서 사 먹을 수 있는 밀 플랜이 카드에 들어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밀 플랜을 중지시켜야 한다. 밀 플랜 사이트에 접속해서 확인해 보니 밀 플랜 잔액은 20불 정도이다. 절차도 번거롭고 누가 카드를 주워도 학교 카페테리아까지 가서 돈을 쓰지는 않을 것 같아 이건 운에 걸어보기로 하고 그냥 두었다.


이멜로 신분증 카드 발급 신청을 보냈는데 분실 시 카드 발급은 16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조금 좋게 되겠군.'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 컴패스 카드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집으로 날아왔다. 카드 발급비 6불이 연결된 신용카드에서 빠져나갔고, 분실한 카드에 남아있던 잔액이 새 카드로 옮겨졌다.


직장의 카드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내 카드의 사용 만료일-카드 사용 기한이 5년이라는 걸 새롭게 알게 됨-이 얼마 남지 않아서 조만간 재발급을 해야 하고 재발급은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분실 시 내야 하는 카드발급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앗싸! 카드에 들어갈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카드는 다음 주 출근하는 날 수령할 수 있었다.


상황은 거의 종료되었는데, 컴패스 카드는 몰라도 이름이 찍힌 사원증은 어쩌면 분실물 센터로 갈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다음 날 전화를 해보니 요즘 팬데믹 때문에 물건들도 3일간 격리해 두었다가 센터로 온다고 3일 후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3일 후에 다시 전화를 했는데 카드홀더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분실물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내 분실물이 들어왔다고. 내 전화번호를 남겼기에 그쪽에서 다시 연락을 준 것이었다.


퇴근하고 분실물 센터에 들려서 내 분실물인 카드 홀더를 찾았다. 카드 두 개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둘 다 다시 사용할 수는 없지만 컴패스 카드는 카드값은 환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분실물 센터가 있는 그 역의 바로 위층에 있는 컴패스 카드 센터에 바로 가서 환불을 요청했다.


직원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보안 질문에 답을 맞혀야 한다고 했다. 요즘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만들 때 보안질문과 답을 넣어야 하는 곳이 많은데 컴패스 카드 등록할 때도 그랬다. 뭐 내가 한 것이니까 알겠지 싶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은 장소는 어디냐?”는 질문에 어?? 싶다. 어디지? 큰일 났다. 내가 입력했는데 모르겠다. 자신 없는 목소리로 파타고니아? 하니까 아니란다. 컴패스 카드는 5년도 더 넘게 사용했는데 파타고니아를 다녀온 건 4년 전쯤이니 아니겠구나.. 그럼 하면서 어딜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직원이 친절하게도 아메리카 아닌 지역이란다. 그럼 네팔과 스페인 둘 중의 하나이다. 스페인? 하니까 맞단다. 기쁜 마음으로 6불을 받아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번 분실 사건에서 잃은 것은 하나도 없다. 카드홀더도 찾았고 둘 다 새 카드를 발급하긴 했지만 카드 발급에 돈이 들지도 않았다. 분실 신고와 재발급에 품을 좀 팔아야 했을 뿐. 많이는 아니고 조금 좋게 되었다.

'앞으로 물건도 잃어버리고 기억도 잊어버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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