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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May 26. 2021

낯선 이가 친구가 되는 산장의 저녁 식사

파타고니아 다이어리 2017 #6, 토레스 델 파이네 O 트레킹

12월 11일 (트레킹 6일 차)


이틀 동안 많이 걸어서 피곤해서 그런지 잘 잤다. 아침은 어제저녁을 같이 먹었던 사람들과 같이 먹었다. 호주 여자분은 오늘 프랜치 밸리를 갈 거라고 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을 텐데. 아침을 먹고 점심 샌드위치가 든 파우치를 받았다. 프란세스 캠핑장부터는 판타스티코에서 관리하는 곳들이라 점심 샌드위치를 넣은 주는 주머니가 다르다. 점심은 한꺼번에 먹기에는 양이 많아서 중간중간 간식으로 먹고도 에너지바는 남기게 된다. 텐트에서 배낭을 정리하여 떠난다.


프란세스 캠핑장-쿠에로스 산장


식당 가까이 내려가 호수 옆쪽으로 난 트레일을 걷는다. 호수 이름이 Lago Nordenskjold인데 어떻게 발음해야 맞는지 잘 모르겠다. 노르덴스키조드? 스페인어라기보는 북유럽 쪽 이름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는 나라와 관련된 이름이 많다. Italiano camp, Frances Valley, Mirador Britanico, Chilian Refugio, Japones Camp 등등. 


프란세스 캠핑장에서 쿠에로스 산장 Cuernos Refugio까지는 2.5킬로미터인데 오다가 호숫가에서 경치 구경하느라 자주 멈춰서 2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쿠에로스에는 산장과 캠핑장이 같이 있어서 산장 앞에는 트레커들이 많이 있었다. 산장에서 묵은 사람들은 그때서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쿠에로스 산장에서 잠시 멈추었다. 산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쿠에로스 산장-칠레 산장


 이쪽 트레일은 위쪽과 달리 트레커가 많다.. W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고, 하루 이틀 정도 짧게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코스여서 그런 모양이다. 큰 백팩을 메고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벼운 차림으로 걷는 사람들도 있다. 오른쪽으로 호수를 끼고 걷는데 옥색의 호수가 넓게 펼쳐져 있고, 구름 그림자가 호수 위에 떠 있다. 


건너편까지 확 트인 경치가 아름다워서 자주 멈추게 된다. 걷다가 호수가 잘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앉아 경치를 구경하며 점심 샌드위치를 먹었다. 한숨 자고 가도 좋을 것 같다. 한참 넋 놓고 경치 구경하다가 다시 출발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고 있는 여자가 계속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해서 여러 번 멈추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강이라고 하기에는 작고 개울이라고 하기에는 꽤 넓은 크릭을 두 번 건너야 했다. 한 번은 등산화를 신은 채로 크릭에 있는 돌을 잘 골라 디디며 건너갔는데 다른 하나는 디딜 곳이 마땅찮아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건너가서 다시 등산화를 신었다. 등산화가 젖으면 트레킹이 힘들기 때문이다.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밑의 길은 토레스 산장으로 가고 윗길은 들판을 질러 지름길로 칠레 산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윗길을 택해 들판을 걷는다. 걸어가고 있는 저 앞에 큰 백팩을 지고 사진을 찍고 있는 여자 둘이 보였다. 느린 속도를 가고 있어서 곧 그들을 따라잡았다. 한국 사람이라서 인사를 하고 한동안 같이 걸었는데 백팩을 지고 있고 사진 찍는데 골몰해서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배낭 커버 씌우고 고어텍스 쟈켓도 입고, 게이터도 한 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쿠에로스에서 토레 산장까지 11킬로미터. 토레 산장에서 칠레 산장까지 5.5킬로 미터라고 나오는데 중간에서 지름길로 가는데 지도에는 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십이삼 킬로미터 정도 될 것 같다. 길은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언덕을 넘어서고 저 멀리 강 옆으로 칠레 산장이 나타났다. 오전에 너무 슬슬 걸어서 생각보다 늦은 네시에 산장에 도착했다.


 칠레 산장


산장에 들어가서 체크인을 하고 텐트를 배정받았다. 텐트는 산 쪽으로 좀 올라가야 했다. 비가 오고 있어서 텐트를 오갈 때도 비를 맞아야 해서 텐트보다는 산장 안에서 묵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했지만, 산장은 너무 붐비고 텐트가 조용하기는 했다. 길에서 만났던 한국 여자들은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와서 산장 안에서 묵는다고 했다. 


씻고 나서 비에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산장 난로를 피워놓은 방에 갔다. 거기는 트레커들의 비에 젖은 옷들을 벽에 줄지어 걸어서 말리고 빨랫줄도 걸어서 옷을 말리고 있었다. 난로가에도 젖은 등산화가 가득했다. 쟈켓과 등산화는 축축하긴 했지만, 고어텍스 쟈켓이라 툴툴 털고 좀 말리면 되었고, 게이터를 하고 왔기 때문에 내 등산화 안은 젖지 않았다.


비올 때 등산화 안까지 젖게 되는 경우가 많다. 등산화 안쪽은 어지간해서는 잘 마르지 않아서 젖은 등산화를 신고 걸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다행히 난로가 있으면 말릴 수는 있는데 난로가에 너무 가까이 두었닥 태워먹기도 한다. 비 바지를 입거나 게이터를 해서 안 젖게 하는 것이 좋다.  


빨래를 말리면서 하는 대화는 내일 새벽의 날씨가 개일까 하는 것이었다. 많은 트레커들이 토레스 삼봉 위로 올라오는 일출을 보기 원한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일출 3시간 전에는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날씨가 나쁘면 새벽에 올라가 봤자 일출을 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말린 옷들을 텐트에 가져다 놓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산장으로 내려갔다. 산장 안의 테이블은 빈자리 없이 꽉 찼다. 산장 로비 옆이 바로 식당이고 테이블도 많지 않아서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을 수밖에 없다. 둘러앉아서 서로 인사를 나눈다. 세계 곳곳에서 이 곳을 찾아와서 같이 밥을 먹으며 잠시 경계를 허물고 가까워지는 시간이 된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음식이 나왔다. 옆에 앉은 남자는 아르헨티나에서 왔다고 한다. 트레킹을 끝내고 바로 아르헨티나로 넘어갈 것이라 그에게 아르헨티나는 어디가 좋은지 물어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비는 진눈깨비로 바뀌고 있었다. 이 정도면 위에는 눈이 올 것이다. 오기 전에는 일출을 보러 새벽에 올라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해 뜨는 것을 보려면 어두울 때 랜턴을 켜고 올라가야 하는데 마지막 구간이 돌도 많고 길도 가파라서 위험하다고 해서 좀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안 좋아서 올라가도 일출을 볼 수 있을지 장담을 하지 못하는 날씨라 일출을 보기 위해 밤에 올라가는 계획은 깨끗이 포기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밤에 올라가려는 모양이었다. 새벽에 출발하려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약속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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