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폴' _ 돈뎃 DONDET, LAOS
그의 이름은 ‘리나’라고 했다. 이름이 여자 같다고 하니 자신도 안다며, 그래서 그 이름을 싫어한다고 했다. 때문에 인상적이지 않느냐며, 기억에 남을 이름이라 위로 해보지만 당연히 그에겐 별반 위로가 되지는 않은 듯했다. 리나는 웃음이 예쁜 아이였다. 그렇게 자주 웃는 편은 아니었는데 리나가 웃을 때마다 나는 마음까지 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티끌의 불순물 조차 끼어 들 여지가 없는 순도 100%의 웃음, 긴 속눈썹은 나풀거렸고 마음으로 짓는 미소는 소리 없는 파문이었다. 참 해맑은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너의 웃음까지 ‘리나’스럽다'고 하니 그의 머리 위로 큰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그냥 '참 예쁘다'는 말이라 어물쩡 넘기니 곧바로 뽀루뚱해지는 입술이다. 리나는 이제 예쁘다는 말 보다 멋있다는 말이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런 리나에게 ‘아름다운 사람’에 대해 말하기란 언어의 장벽은 너무도 높았다.
리나는 캄보디아에서 라오스를 넘어가는 국경에서 일행을 인도받은 버스회사 직원이었다. 인적이 드문 국경을 넘는 일은 늘 갖가지 돌발이 예상되기에 어느 정도 길거리에 버려질 각오를 하고 출발했던 터였다. 인터넷 정보를 아무리 뒤져봐도 모두 암울한 이야기뿐이었다. 행여나 버려진데도 엄한 곳, 어두컴컴한 밤만은 아니기를, 그것만 염두 하고 감행한 출발이었다.
라오스 국경을 저만치 앞에 두고 일행을 태운 버스가 돌연 멈춰 섰다. 출발 전 ‘다이렉트가 맞느냐?’며 거듭 확인했던 단도리는 역시나 부질없었다. 의사소통의 한계인지, 누군가의 불찰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사기일 뿐인 건지 나는 잘 몰랐다. 하긴 다이렉트가 아니라 답했던들 그 무슨 대안이 있었을까…….
황무지 길거리에 일행들은 버려졌다. 곧 올 거라는 다음 버스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여전히 실체가 모호했다. 메마른 바람이 황갈색 흙모래 입자를 품고 불어 왔다. 오라는 버스는 안 오고 괜히 입술만 말라갔다. 자비 없는 뙤약볕 아래 우리는 점차 지쳐갔다. 조그만 그늘이라도 생길라 치면 다국적 엉덩이들이 그 틈을 비집었다. 시간은 흐르고 태양은 움직이니 한 점 그늘에 의탁한 우리들의 엉덩이도 덩달아 옹기종기 꼬물거렸다.
겁도 없이 벌컥 마신 물이 기어이 사단을 내고 말았으니, 조여 오는 방광의 압박은 괴로웠다. 관자놀을 흐르는 땀은 인내가 한계에 달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였다. ‘빠방’ 희미한 경적 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그것은 점차로 뚜렷해졌다. 더불어 방광의 괴로움도 절정을 달려갔다. 흙먼지 바람을 뚫고 실체가 모호했던 ‘다음’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급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더욱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다이렉트로 버스에 돌진하는 본능만이 내가 잡은 유일한 동아줄 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초면의 직원은 다짜고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내가 아마도 황당했으리라.
“Can I use the toilet? Please toilet. Please……."
그가 바로 리나였다. 후일 리나는 그때의 나를 두고 ‘거의 울 뻔했다’ 회상했지만, 사실 그때 나는 정말로 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지로 눈에 눈물도 좀 고였을 테다.
“No, toilet!, U can go to the jungle~”
리나의 입가로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빌어먹을 시궁창의 상황 속에서도 리나의 장난기 가득한 그 미소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속된 말로 '지리는 웃음'이었다. 당장에 지리는 건 만지면 톡 하고 터질 것 만 같은 탱탱불은 오줌보뿐이라지만 그건 정말 아름다운 미소라고 생각했다.
“OMG. Please~"
나는 정글로 갔다.
해는 뉘엿하고 저 멀리 어둠이 밀려왔다. 일행들 모두 빡세를 목적지로 두고 가는 상황에서 또다시 홀로가 된 참이었다. 별안간 엄습하던 나약함도 쉬이 떨칠 수 없는 적막감에 드러났다. 그때 리나가 자신도 돈뎃을 간다 하였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라던 그의 미소는 역시나 ‘지리는’ 미소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보트의 물살은 한적하니 주변의 풍경에 흡수되고 강 위에서 맞이하는 지독한 어둠은 광활할 듯 비좁게 옥죄어 온다. 한 없이 높은 곳에서 한 없이 까마득한 아래를 바라볼 때, 문득 모든 것을 버리고 한없이 빨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대로 강물로 뛰어들어 무한의 공간으로 영원이 사라지고 싶은, ‘잠깐’ 스쳐가는 무서운 황홀감과 같은 ‘유혹’에서 나는 언제나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이름은 ‘리나’라고 했다. 이름이 여자 같다고 하니 자신도 안다며, 그래서 그 이름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어릴 적 즐겨 보던 만화영화 ‘이상한 나라의 폴’이 생각났다.(나중에 찾아보니 정확한 이름은 ‘리나’가 아닌 ‘니나’였다.)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니나가 잡혀있는 마왕의 소굴로
어른들은 모르는 사차원 세계
날쌔고 용감한 폴이 여깄다.
요술차 마술봉 딱부리
삐삐 찌찌 힘을 모으자
대마왕 손아귀에 니나를 구해내자
삐이빠바 삐이빠빠 달려간다. 삐삐“
그 옛날 추억의 노래를 입 밖으로 흥얼거려 본다. 말을 하는 개 돗페가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고, 오컬트 망치를 쓰면 장난감 자동차도 슈퍼카로 변신하는 이상한 나라. 공상을 좋아하는 소년 폴은 그의 10번째 생일날 부모님으로부터 직접 만든 봉제인형을 선물 받는다. 그리고 그 봉제인형 속으로 들어간 요정 팻큰은 시간을 멈추고 폴 일행을 이상한 나라로 초대한다. 2천 년간 잠들어 있다가 눈을 뜬 마왕 베르트 사탄이 니나를 납치하고, 니나를 구해내기 위한 일행들의 사차원 모험이 펼쳐지는 ‘이상한 나라의 폴’. '지리는 미소'가 번지자 새까만 사차원의 관문이 열리고 보트는 물살을 갈랐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블랙홀 같은 마력으로, 그날 돈뎃을 향하는 밤의 여정이 꼭 그러했을까? 돗페의 펄럭이는 귀가 바람이 되어 어둠의 섬이 눈앞으로 당도한다. 그 순간 나는 니나였고 리나는 폴이었다.
리나는 웃음이 예쁜 아이다. 살면서 문득문득 그 웃음이 생각난다. 지리는 웃음이... 그러므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