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_ 돈뎃 DONDET, LAOS
젊은 시절 꽤나 여행을 좋아했던 남자가 있었어. 히피처럼 기른 머리를 휘날리며 기타 하나 달랑 매고 무작정 걷기만 하는, 자유가 충만한 사내였지. 멀쩡한 허우대에 반반한 얼굴, 거기에 매력적인 보이스가 더해지자 가는 족족 여자들은 애가 탔어. 관심을 끄는 저마다의 방법도 가지가지였지. 어떤 이는 과감했고, 어떤 이는 수줍었고, 또 어떤 이는 아닌 척 새침했고……. 남자는 그 상황을 어쩌면 즐겼던 것도 같아. ‘적당히 외로울 때마다 나의 곁에는 항상 여자가 있었다.’고 남자는 말했으니까.
여자는 날 선 고슴도치로 동네에서 유명했어. 도도하기가 이를 때 없는 깍쟁이 스타일로 무엇을 물어도 시큰둥, 턱 끝이 하늘을 찌르는 그녀는 딱 봐도 재수 떼기였지. 사람들은 ‘뭐 저런 여자가 있느냐?’며 수군댔지만 남자는 별 개의치 않았어. 세상엔 별별 사람 많으니 그녀도 게 중 하나이겠거니 가볍게 넘어갔지. ‘그런 여자는 꼭 예쁘더라.’ 남자의 지나는 말은 본능에 충실한 일종의 기대였을까?
그런데 어느 날, 여자가 남자에게 무언가를 넌지시 건네는 거야. 얼결에 받아 든 남자도 처음엔 영문을 몰라 조금은 어리둥절했다고 해. 여자들의 관심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였대도 그녀의 이런 행동은 좀처럼 의외였을 거야. 종이는 두세 번 곱게 접혀 있었어. 여자는 덤덤했고 미동조차 없었지. 남자가 쪽지를 받아 들자 여자의 도도함이 살짝 자취를 감추고 얼굴로 언뜻 홍조가 보이는 듯도 했데.
여자의 필체는 정갈했어. 꾹꾹 눌러쓴 글자들은 한 자 두 자 단어를 이루고, 하나 둘 낱말들이 모여 문장을 이루자 비로소 전체의 뜻을 완성하지. 남자의 눈은 찬찬히 종이를 훑어갔어. 그것은 어딘지 거룩한 의식 같았고 눈빛은 반짝임으로 충만했지. 한마디로 영롱했어. 그때 여자의 입에서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와. 남자는 순간 귀를 의심했데. 남자의 손끝에서 익숙한 음표가 의미를 찾아 비로소 하나의 노래가 완성되는 순간이야.
우연이 잦아지면 필연이 된다고 하지? 무슨 말 이냐고? 사실 남자는 매일같이 그녀를 찾았던 거야. 해 질 녘이면 남자는 기타를 매곤 어디론가 향했어. 마을의 돌길을 거슬러 올라 노을이 잘 보이는 그곳엔 표면의 단단한 틈으로 파릇한 새싹이 듬성듬성 피어나는 오래된 담벼락이 있었어. 허나 그것은 사실 별 특별한 것이 못되었어. 마을은 오래 되었고 대부분의 담벼락이 그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곳에 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데. 그곳만이 유일하게 남자의 등을 온전히 기댈 수 있는 곳 이었다나?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일들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 담벼락 위로 자그마한 창이 하나 있어. 굳게 닫힌 그 창은 좀처럼 열릴 기미가 없었지. 강렬한 태양도, 새찬 비바람에도 굳어버린 창문은 화석같이 단단했어. 그러나 그 누가 알았을까? 남자의 선율이 화석을 뚫고 그녀에게로 가 닿아. 조금씩, 천천히 그녀의 마음에 노크를 해. 그러니까 남자가 매일 찾은 그 곳은 여자의 창문 아래였던 거야. 그 곳에서 남자는 자신의 리듬을 만들고 여자는 그 음표에 찬찬히 마음을 적어. 침묵이 길어지면 용기는 깊어진다고 누군가 그랬었나? 여자의 마음은 그렇게 전달되고,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엮어진 두 사람은 음악이라는 언어로 사랑을 속삭이기 시작했어.
시간이 흐르고, 남자는 떠나야 할 때가 왔어. 이대로 여자를 두고 갈 수 없는 남자는 ‘같이 떠나자.’며 손을 내밀지만, 또 쉽사리 떠날 수 없는 게 여자의 마음인 건가 봐. 남자는 가고 그의 선율만이 남아 여자를 위로해. 그렇게 둘은 이별을 하게 돼. 그러나 하늘이 정해진 운명은 어떻게든 다시 이어지게 되어 있나 봐.
남자를 잊을 수 없던 여자는 그가 남기고 간 기타를 들쳐 메고 무작정 길을 나서. 그렇게 돌다 보면 언젠가 만나 지겠지, 막연한 희망을 품고서 말이야. 주어진 시간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를 여자는 알아버린 거야. 그건 마음속의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 여자는 알 수 있었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걸. 그리고 여자의 확신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지.
남자는 여자를 보고 반가웠지만 놀라워했고, 여자는 남자를 보고 반가웠지만 덤덤했어. 어떻게 찾아 왔냐는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무슨 긴 말이 필요했을까? 그저 엷은 웃음만 띄울 뿐. 도도한 깍쟁이 스타일의 그녀는 어느새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
그날 밤, 여자는 남자가 남기고 간 선율에 덧입힌 아름다운 노랫말을 들려주었어.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엮어진 두 사람은 음악이라는 언어로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며, 음악이라는 마법으로 그들의 사랑을 완성했어. 방랑벽이 잘 맞는 둘은 그렇게 세상의 구석구석을 누비게 돼.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로 둘의 여행은 행복으로 충만하고 둘 사이는 더불어 아름답게 피어나는, 그런 여정이야.
남자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지금 이 순간, 이 떨림을 음반에 담고자 해. 사랑하는 여자의 목소리를 덧입히고 그 어떤 기교나 속임수 없이, 진실된 지금을 이야기 하지. 그렇게 첫 번째 란스&도나 앨범이 세상에 빛을 봤어. 그 후로도 사랑의 속삭임은 계속됐지. 그들은 세상을 돌고 돌아 지금 이곳 파라다이스에서 그들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어. 별 욕심 없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며, 세상 아름다운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렇게 우아하게 늙어가지. 참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해.
라오스 남부 사천 개의 섬이 있다는 씨판돈, 그곳은 작고 조용한 섬 돈뎃은 이리와나 돌고래가 춤을 추는 아름다운 곳이야.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파라다이스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커플, 란스와 도나를...
그런데 이거 어딘지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같군. 그들을 만난 ‘파라다이스’한 행운에 깃댄 ‘빈약한’ 상상력이 다소 많이 유치하기도 하고 말이야. 후후
이 글은 파라다이스의 아름다운 커플, 란스와 도나의 실제 러브스토리에 약간의 빈약한 상상(픽션)을 더해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실리로 란스와 도나는 미국의 뮤지션 커플로 젊은 시절 만나 서로 사랑을 했고, 지구 곳곳을 누비며 그들의 사랑을 키웠고, 그 여정을 음악으로 발표했으며, 이곳 돈뎃의 파라다이스에서 그들의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