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런 아이가 있었다.

인도 델리, 자이살메르

by 엄용선

그냥 그런 아이가 있었다.


델리) (4).JPG 델리 Delhi in India ⓒ 엄용선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생각나지 않는 이름이다. ‘민OO, O민O, OO민…….’ 어쨌든 이름에 ‘민’자가 들어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여 나는 그 아이를 ‘민’이라 기억한다. 민은 여행 중 내가 만난 이들을 통틀어 가장 특이한 아이다. 민을 처음 만난 건 델리의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간지 한복판이었다. 그곳에서 저녁을 함께하기로 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일행들 틈에 민이 있었다. 그들은 민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민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어리바리’했다. 170도 안 되는 작은 키에 마른 몸, 불안정한 시선은 경계로 가득 찼고 잔뜩 움츠린 어깨는 가뜩이나 볼품없는 민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일행들은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며 이것저것 시키기에 바빴다. 호기심 강한 입맛에 도전은 필수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나 또한 덩달아 정체불명의 힌디문장을 가리켰다. 음식 앞에 호전적인 우리들의 주문은 속전속결이 따로 없었다.

일행 중 ‘호’라는 아이는 방년 21살이다. 군 입대 전 ‘기념’삼아 인도에 왔다는 그는 델리에서 시작해 북인도와 남인도를 거쳐 다시 델리로 돌아오기까지 지난 4개월의 여정을 뻑적지근하게 늘어놓았다. 목소리에 약간의 거드름도 묻어났다. 스스로를 ‘인도 체질’이라 단정하며 인도를 ‘접수’하겠다는 장담은 어딘지 거만했지만 어쨌든 호기로웠다.


“형, 형 것 아직 안 나왔어요? 뭐 시켰는데요?”

테이블 위로 음식이 차고 넘치는데 유독 민 앞만 썰렁했다.

“나... 나는 뭐가 뭔지 몰라서 못 시켰어.”

나는 호가 민에게 ‘형’이라고 하는 것이 영 어색했다.

“너 내일 뭐 할 거니?

애매한 거리에서 쭈뼛대고 있는 민에게 부러 말을 걸어 보았다.

“잘 모르겠어요. 누나는요?”

“나? 난... 꾸뜹미나르(Qutub Minar)에나 가볼까 해.”

민은 나에게 ‘같이 가도 되겠냐?’ 물어왔고 나는 ‘그러자’고는 했지만 그 대답은 어딘지 흔쾌하지 않았다.



꾸꿉미나르 (13).JPG 델리 Delhi in India ⓒ 엄용선



다음날 아침, 꾸뜹미나르(Qutub Minar)에 가기 위해 다시 만난 민은 다짜고짜 택시를 타자고 하였다. 거리를 검색하니 꾸뜹미나르까지는 약 15km다. 뉴델리 남쪽 외각에 위치하지만 지하철로도 충분이 이동 가능한 경로였다. 고로 굳이 택시를 탈 이유가 나에겐 없었다. 지하철로 가자는 제안에 민의 얼굴에 난처함이 스친다. 뭔지 모를 두려움에 안면이 살짝 떨리는 듯도 하였다.

“사람들 많은 거 싫어요. 인도 사람들은 무서워요.”

‘인도 사람은 무섭다’니……. 순간 짜증이 났다. 델리 공항에 도착해 처음 한 일이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해 무섭다며 울먹인 거라더니 마마보이가 틀림없다 생각했다. 나를 빤히 보며 이해해 달라는 민이 나는 정말로 이해가 안 되었다. 나는 그의 엄마가 아니니까. 그리고 사실 인도에서는 택시가 ‘더’ 무섭다. 기어코 지하철로 향하는 나를 민은 똥줄 탄 강아지 마냥 ‘졸졸졸’ 따라 다녔다. 섞이지도 튕겨나가지도 못하는 애매함은 민의 습성인가 보다.

“너 군대는 갔다 왔니?”

“……네, 제대한지 얼마 안 돼요.”

우물거리는 대답은 쭈뼛거리는 민의 행동과 일맥상통했다. 그나저나 군대를 다녀왔다니! 말년병장 민의 모습은 내 편협한 상상력의 범주 밖에 있었다. 세계문화유산 꾸뜹미나르는 실은 아름다웠겠지만 민과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한없이 꿉꿉했다.


자이살메르를 가기 위해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왔다. 빠하르간지 길목을 지나 기차역을 향해 가는데 ‘누나!’ 부름에 돌아보니 민이 서있었다. 등으로 나 같은 배낭을 짊어지고 예의 그 불안한 시선은 여전했다.

“진짜요? 아, 다행이다. 나도 거기 가는데!”

일전에 민과 일행들의 만남이 ‘우연’에서 비롯된 ‘인연’이라면 이번에 나와 민의 동행은 어딘지 ‘운명’에 종속된 ‘악연’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같이 가도 돼요?”

그건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세상에서 쿨한 건 업소 여자들 밖에 없다’던 빌어먹을 놈의 말이 생각난다. 민은 이번에도 역시나 택시를 타자고했다. 기존의 ‘무섭다’에서 ‘무겁다’가 추가된 애원이었다. 민은 아직도 인도에선 택시가 ‘더’ 무섭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미세한 모래먼지가 수북이 쌓여간다. 침낭과 배낭은 물론, 옷이며 신발 사이사이 모래가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기차가 자이살메르에 당도하기 전 그대로 파묻혀 모래무덤이 될 기세다. 부딪히는 이 사이로 모래가 씹혔다. 까끌까끌했다. 오물오물, 입안에 수분을 모아 ‘퉤’하고 뱉어낸다.

SL, 꼬리칸의 나와 2A, 머리칸의 민 사이에는 딱 그만큼의 간극이 존재했다. 떠나기 전 ‘자이살에 도착하면 다시 만나자’던 민의 제안(기실 그것은 부탁에 가까웠다)은 정확히 만날 장소를 정하지 못한 탓에 그다지 현실성이 없어 뵀다. 그리고 나에겐 민을 부러 기다릴 이유(혹은 아량)따윈 없었다. 역 밖으로 나오니 호객꾼들이 즐비하고 걸음걸음 그들은 나를 붙잡았다.

“안녕, 반가워.”

한국말이 유창한 그는 호텔 타이타닉의 오너 ‘폴루’다. 딱 봐도 능글능글한 게 수완 좋은 사업가답다. 홀린 듯 이끌려 차에 올랐다. 일부러 찾지 않은 민은 어디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자! 출발합니다.~”

신호를 알리는 폴루의 음성은 경쾌했다. 경쾌함이 지나쳐 일종의 짜증으로 와 닿는 외침은 양심에 부치는 최후의 경고였다.

“잠깐! 잠깐만요.”

나는 차에서 내려 민을 찾았다. 금방 돌아올 테니 가지 말고 있어 달라 부탁하고 나선 터라 마음이 조급했다. 저 멀리 민이 보인다. 여전히 겁에 질려 잔뜩 움츠린 모양새다.

“민, 가자”

저 멀리 자이살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그것은 한동안 거치지 않을 지독함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이제부터 이 형이 잘 가르쳐 줄게’ 숙소에서 만난 '형(민에게는 형이다)'은 일명 ‘나를 따르라’스타일로 마초 기질이 다분했다. 그는 솔선수범하여 민을 보살폈다. 무턱된 챙김이 조금 과한 면도 있었지만 오히려 민, 아니 나에겐 잘 된 일이었다.

무리에서 민은 여전히 그 같은 애매함을 유지했지만 그것은 델리에서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민은 웃었고 나는 안도했다. 그것은 어떤 해방감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는데, 이는 곧 허탈감과 죄책감으로 변질되었기에 한숨은 뒤따르는 옵션이었다. 그래, 인도는 낯서니까 그 점이 무서울 수도 있는 건데……. 내가 너무 까칠했다고 생각했다.



자이살메르 (4).JPG 자이살메르 Jaisalmer in India ⓒ 엄용선


타이타닉의 낙타 사파리는 시작부터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과도하게 일행을 구겨 넣은 지프는 한참을 달려 사막의 길목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그곳에는 단단히 채비를 마친 낙타들과 무리를 이끌 몰이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낙타는 다들 고만고만했지만 어떤 이유에 선지 호불호가 갈렸고, 그 호불호에 따라 낙타는 간택되었다. ‘나를 따르라’가 제 낙타의 꼬리 끝에 민의 낙타 머리끈을 묶었다. ‘무섭지 않다’며 민을 안심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 든든한 형의 모습이었다.

낙타의 등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터벅터벅 걷는 낙타의 걸음에도 속도감이 묻어났다. 거친 돌길, 푹푹 꺼지는 모래 길을 해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제 발로 묵묵히 걸어가는 몰이꾼의 노고는 살짝 불편함으로 다가왔지만, 사막을 사는 사내의 숙명은 무시할 것이 못되었다. 베이스캠프라고 하는 곳은 사실 지나온 모래벌판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곳에서 낙타들은 휴식을 취했고 일행들은 땔감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몰이꾼들이 차린 저녁상은 실상 부실하기 짝이 없었지만 배고픈 짐승에게 투정은 사치다. 부딪히는 이 사이로 모래 알갱이가 씹힌다. 까끌까끌, 갈리는 모래는 공포다. 50 볼트 찌릿함이 뇌관을 타고 번진다. 모래는 끝도 없이 씹혀댄다. 사막의 식사는 어딘지 투쟁이 가까웠다.

사막의 캠프파이어는 조촐했다.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땔감의 양이란 게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선약된 통닭은 일인당 반 마리뿐이었다. 사막의 밥이 부실한 건 그보다 ‘덜’ 부실한 통닭을 그나마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니라. 남은 아쉬움을 맥주 일병으로 달래 본다. 통닭은 어느새 가느다란 뼛조각만 앙상하고 맥주는 금세 바닥을 내보였다. ‘나를 따르라’가 주도하는 이야기들은 어딘지 대꾸하기가 민망했지만 그 곁에서 민은 즐거워 보였다. 민이 웃는다. 여태껏 보지 못한 웃음이다. 그가 즐거울수록 불편함은 모래바람을 타고 속속들이 쌓여갔다.



자이살메르 (3).JPG 자이살메르 Jaisalmer in India ⓒ 엄용선


무리에서 나와 사막을 걸었다. 발가락 사이 흩어지는 모래알은 차가웠다. 낮 동안 뜨거웠던 열기가 밤의 어둠에 단단히 자취를 감추니 맨살을 치고 가는 바람은 싸늘했다. 사막의 한 가운데 자리를 펴고 누우니 눈앞으로 찬연스러운 별빛이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그것은 영원히 깨지 않을 눈부심이다.

나약함이 싫어 인도로 왔다는 민은 아직 그것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그 자신이 너무 싫다고 했다. 나약함은 숙명인가 보다며 고개를 떨구는 민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하고팠을까? 우리 사이 애매함은 이미 소리가 닿을 간극을 넘어버렸고 이제는 이해로 변질된 짜증이건만, 다가가지 못하고 쭈뼛대는 건 오히려 나였다. 허탈감에 죄책감이 가증되는 불편이었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어둠이 찾아왔다.


지금도 민을 떠올리면 힘없이 떨구어진 그의 고개, 축 처진 어깨가 생각난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그러하니 민의 나약함이라고 별 수 있었을까? 민은 여행 중 내가 만난 이들을 통틀어 가장 특이하고도 특별한 아이였다. 그냥 그런 아이가 있었다.



자이살메르 (5).JPG 자이살메르 Jaisalmer in India ⓒ 엄용선





- 꾸뜹미나르(Qutub Minar)

12세기 말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의 술탄 꾸뜹우드딘 에이백(Qutab-ud-din Aybak)이 델리 정복을 기념하여 세운 거대한 승전탑. 뉴델리에서 남쪽 교외로 약 15km 떨어진 넓은 평야에 우뚝 솟아 있다.


- 자이살메르(Jaisalmer)

인도 라자스탄주(州)에 있는 사막 도시. 황갈색 사암 건물의 도시로 불리며 낙타 사파리가 유명하다.


- SL vs 2A

인도의 기차 슬리핑칸은 SL/3A/2A... 의 등급을 가진다. 에어컨이 없어 덥고, 입석 혹은 무임승차가 많아 비좁은 SL칸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 덕에 주로 인도 서민이나 배낭여행자들이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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