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어요?
얼마 전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친구는 전 직장에서 업무상 미팅을 해야 했는데 만나야 할 분이 청각장애가 있었고 당시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미팅 가기 전에 떨리더라. 내가 하는 행동이 혹여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까 봐. 사실 장애인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이었어.”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설명하는 문구입니다. 늘 제 손목에 채워져 있는 것.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제가 하는 일은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일을 하면서 늘 행복하지는 않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제가 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 그럴싸한 문구를 만들어 제품을 판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고 ‘어떻게 하면 Eone(이원)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공감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일 또한 제 일이기도 합니다.
친구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니 몇 달 전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브래들리 스나이더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주변에 알고 지내는 시각장애인 또한 없었기 때문에 ‘장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간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만 시각장애인이 아니라는 것도,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많지 않다는 것도, 시각장애인과 연락을 하며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시각장애인 또한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모두 일터에서 알게 된 것들입니다.
그러다 시각장애인 분을 만날 기회가 생겼고 한 시간 가량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에티켓을 찾아보며 혹시나 실수를 하지 않을까, 만나면 뭐부터 해야 할까 벼락치기하는 학생처럼 조마조마했던 제 모습을 고백해봅니다.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만남은 유쾌했습니다. 우리에겐 시력 차이가 있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 시간 동안 시각장애인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는 한 시간 동안 한 남성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는 한 시간 동안 자기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성이고 그가 남성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듯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 또한 특별히 설명을 붙여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만나야 알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이후 장애와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플(동등한 삶의 기회를 위한 플랫폼) 모임에 참석을 하면서 장애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것,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던 것,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묻혔던 것들을 마주했고 더 많이,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로모션에 쓰일 발달장애인이 만드는 베어베터 쿠키를 구매하고, 패럴림픽서 2연패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둔 시각장애인 유도 선수를 만나고, 청력을 잃고 이제 시력마저 잃고 있는 베니 토끼 작가님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내 안의 편견을 마주했습니다.
“장애인도 일을 할 수가 있네?” “그럼, 당연히 일을 할 수 있지.”
“시각장애인인데 어떻게 지팡이도 없이 걸어 다니지?” “시각장애인이라고 모두 전맹은 아니니까.”
“청각장애인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지?” “상대방의 입술 움직임을 읽고 구화를 하면 돼”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실제 마주했을 때 자문자답을 하며 아직도 내 안에 많은 편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배운 것도 있습니다. 이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장애는 핸디캡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요.
“나는 내가 장애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나는 어둠 속에 둘러싸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것입니다.”
– 브래들리 스나이더
브래들리 스나이더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폭탄 제거 중 사고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2012년과 2016년 패럴림픽에 수영선수로 연속 출전하며 세계 신기록 수립을 포함한 여러 개의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장애를 장애 자체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사회적인 불평등이 해결되어야 한다고요.
이제는 시계를 구매하러 온 시각장애인 분에게 제품의 색상과 디자인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드립니다. 시각장애인도 디자인과 색상을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멋있는 제품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모르는 것은 여전히 많습니다. 제 안에 저도 모르게 자리 잡은 편견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장애인과의 만남이 두렵지 않습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장애인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이 밖으로 나와 일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습니다. 출퇴근 길에서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식사를 할 때도, 모임이나 세미나에 가서도 장애인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차가운 시선 대신,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 대신, 그것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When you include the extremes of everybody, that is to say differently abled people of all sorts, then you produce things that are better for all of us.” – Michael Wolff
“당신이 다양한 장애를 가진 이들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Eone은 장애인을 돕는 것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우리는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지 않는 모두를 위한 제품을 만듭니다. 그리고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사회적인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세련되고 아름다운 제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서 ‘장애’라는 단어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없앨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의 여부와 상관없이 시간을 만져서 알 수 있는 공통된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가진 편견을 허물고 서로가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잠재적 장애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가 나서 장애가 생길 수 있고, 나이가 들면서 오는 장애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당장 오늘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 나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는 장애를 가진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들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인생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많이 만나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만날 수 없다면 대신 만나 목소리를 들려 드리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제품으로 시간을 만지는 공통된 경험을 공유하듯,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공통된 삶의 방향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편견을 허물고 서로가 가까워지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시스템이 구현된다면 제가 여자로서, 조직의 일원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듯 장애인으로서, 소수자로서도 이 사회를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이제, 모두를 위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