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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덴 Jul 11. 2017

<더 킹>은 이번 겨울 박스오피스의 킹이 될 수 있을까

[고덴의 영화읽기 2]  <더 킹>

<빅 쇼트>의 재치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사치를 더해 <박하사탕>보다는 가볍게



1월부터 극장가는 한국 영화가 득세다. 지난 18일, 같은 날에 개봉한 두 영화 <더 킹>과 <공조>가 주인공인데 설 연휴를 기점으로 두 작품이 박스오피스 1,2위를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다. 이 기세는 아카데미 시상식과 맞물려 개봉하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들이 선보이기 전까지 이어질 듯하다. <컨택트>, <라이언>, <재키>와 같은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작품들은 이미 박스오피스 경쟁에 참여를 하고있는 형국이다. <더 킹>이 먼저 선두를 치고 나가더니 설 연휴를 기점으로 위치가 바뀌었다. 아무래도 설 연휴는 가족들의 단체관람이 많은지라 <더 킹>과 같은 블랙코미디의 자극적인 소재보다는 <공조>같이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코미디에 대한 접근이 더 쉬웠을 것이다. 현재는 박스오피스 1위를 <공조>에게 내줬지만 <더 킹>, 이 작품 꽤나 짜임새도 좋고 영리하다. 그리고 일단 재미있다. 과연 <더 킹>은 곧 다가올 헐리우드 작품들의 공세 속에서도 킹이 될 수 있을까?


<빅 쇼트>의 영리함과 재치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작년 아카데미 작품상으로 강력히 응원했던 작품이 바로 2008년 미국의 글로벌금융위기를 그려낸 <빅 쇼트>였다. 크리스찬 베일,스티브 카렐,라이언 고슬링,브래드 피트를 기용한 무려 4톱 체제였다. 각자 어느 영화에서든 주연을 맡을 거물들이 주조연급으로 나서서 실력발휘를 했다.(아마 엄청난 개런티 삭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제작비가 가히 천문학적으로 뛰었을테니) 하지만 국내에서는 네 배우의 명성에 비해 성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 물론 아무리 쉽게 설명했다고 하더라도 경제에 대한 영화다 보니 관객들의 구미를 크게 당기진 못 했을 것이다. 


관객 스코어와는 상관없이 내가 <빅 쇼트>가 좋은 영화라고 판단했던 부분이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월가의 금융천재들 네 명이 미국 경제가 무너질 것을 예견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가 관객들에게 흥미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미국이 망한다’에 베팅을 해야 본인들은 살아난다는 아이러니. 본인이 속한 시스템을 망하게 하는데 일조한다면 개인은 살아남는다는 속성. 이러한 괴리감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인간의 감정을 스티브 카렐이 특히 잘 표현했다. 같은 해 작품상을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도 훌륭했지만 자국 사회의 거대한 상처를 직접적으로 다룬 <빅 쇼트>에게 작품상을 줄 수 있었다면 아카데미 시상식의 권위가 더 올라갈 것이라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더 킹>에서 조인성이 분했던 박태수도 결코 선역은 아니지만 거대악인 검사 집단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쾌감을 느낀다. 개인이 썩어빠진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걸 응원하는 속성. <빅 쇼트>의 그것과 조금 닮았다.


둘째, <빅 쇼트>는 버블 경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자산담보부증권, 도미노 효과 등 어려운 경제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 중간중간마다 내레이션 효과를 집어넣었다. 일종의 소격효과인데 영화의 시점을 관객의 시점으로 끌고와 함께 영화를 관조하는 효과를 줬다. 또한 단순히 사전적 설명만 읊조리는 게 아니라 탁월한 비유를 통해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해나간다. 


<더 킹>에서는 특별히 어려운 개념이 등장하지 않지만 한재림 감독은 이 영화의 주인공은 확실히 조인성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중간마다 조인성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내레이션을 집어넣었다. 내레이션이 진행될 때 함께 오버랩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 묘사는 자칫 영화의 장르가 정치형 드라마로 빠져버릴 수 있는 위기 속에서 다시금 장르가 블랙코미디라는 점을 알려주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단, 주는 효과는 비슷하나 차이가 있다면 <빅 쇼트>의 내레이션은 전지적 시점이고 <더 킹>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화려함도 가미


명감독 마틴 스콜세지에게는 두 명의 페르소나가 있다. 과거에는 로버트 드니로, 지금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두 페르소나가 스콜세지와 함께한 대표작 <좋은 친구들>과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보면 돈을 휴짓장처럼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들만의 공간에서는 모든게 가능하다. 술과 마약 그리고 여자. 그뿐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하면 도덕성도 초월한다. 선과 악을 바꿀 수 있는 무지막지한 힘이 돈과 권력으로부터 나온다.  


작년 <내부자들>이 우리 사회 속 권력층의 이면을 묘사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노골적으로 내비췄고 대중들이 느낄 수 있는 괴리감을 정확히 겨냥해 맞췄다. 표현의 노골성과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나 <더 킹> 또한 일반 대중들은 알 수 없는 세상의 뒷이야기들에 대한 묘사가 직접적이다. 강남 어느 호텔의 펜트하우스에 가면 이 사회의 기득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들은 향락에 빠져있다. 거기서 우애를 다지면 다질수록 그들의 힘은 강해지고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더 부조리해져간다. 영화 속 몇몇 장면에서 정우성이 맡은 한강식의 몰락과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디카프리오가 맡은 조던 벨포트의 추락하는 말로가 겹쳐보일 때 은근한 쾌감이 드는 이유도 이 점에서 기인한다.


<박하사탕>보다는 가벼운 한국 현대사 강의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대사 한 마디로 설경구는 스타 배우가 되었고 그가 분한 <박하사탕> 속 영호란 인물은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철중과 함께 그에게 인장과 같은 캐릭터가 되었다. <박하사탕>은 질곡의 현대사 속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그려냈던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지나서 꼭 다시 회자되어야 할 한국영화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꼽는다.


<박하사탕>이 역순행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87년 민주항쟁과 80년 5.18 민주화운동을 건드렸다면 <더 킹>은 ‘땡전 뉴스’로 대변되는 전두환 정권부터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까지 시대순으로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밟아나간다. <박하사탕>이 역사적인 순간마다 달라지는 한 인물의 변용을 보여주며 인간에게 내재한 이중성과 공포를 보여줬다면, <더 킹>은 시대와 정권이 바뀜에 따라 검사 집단을 위시한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그렸다. 그 중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앞두고 고졸 출신에 대한 비하를 담아낸 장면은 그 시대 노무현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는 한국 사회가 기회의 평등성에 대해 눈을 뜬지 이제 겨우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잘 알려주는 교육적 효과도 있다. 


강력한 알레고리로서 <더 킹>이 보여주는 힘



<더 킹>은 앞서 언급한 세 작품과 기시감이 조금씩 들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시의적으로 <더 킹>만이 가진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잘 알다시피 요즘의 흉흉한 시국 속에서는 연일 새로운 악인이 등장하고 있고 그들 중 누구의 악행이 더 질적으로 나쁜지, 더 많은 양의 죄를 저질렀는지를 비교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 악의 축들을 보아하니 영화 속 인물들이 그려내는 한 편의 이야기가 거대한 알레고리로 보인다. 영화 속 조인성이 검사 초년병일 때와 마찬가지로 각료의 수석을 맡은 이들도 공직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는 정의감에 충실했을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악인으로, 괴물로 만든 것일까. 


새로운 킹을 뽑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영화 <더 킹>과 현실이 새로운 왕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 이정표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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