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덴 Jul 11. 2017

삐걱대는 액션과 유머의 남북합작 <공조>

[고덴의 영화읽기 3]  <공조>

버디 무비. 친구를 뜻하는 또 다른 단어 ‘버디(buddy)’를 사용해서 두 명의 친구같은 관계를 가진 캐릭터들이 전면에 나와 이야기를 끌고가는 영화를 뜻하는 말이다. 버디 무비의 대표작으로는 이제 버디 무비의 상징이 되어버린 폴 뉴먼,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내일을 향해 쏴라>가 있다. 두 배우가 다시 만나 찍은 <스팅>도 대표적인 버디무비의 예다. 그 외에도 잘 알려진 버디물로는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가 형제로 나왔던 <레인맨>이 있고 성룡의 헐리우드 대표작인 <러시 아워> 시리즈도 있다. 보통 버디 무비는 두 명의 남자배우들이 투톱으로서 주연을 맡는데 90년대에 들어서는 수전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가 함께 <델마와 루이스>같은 여성 버디 무비도 선을 보였다. 국내에서는 <투캅스>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최근에는 황정민과 강동원의 <검사외전>이 선을 보인 적이 있다. 


지난 달 18일, 국내 극장가에 새로운 버디 무비가 한 편 찾아왔다. 남북한의 형사가 서로 다른 목적이지만 함께 일을 헤쳐나가며 그 속에서 우정을 피워나가는 작품 <공조>가 그 주인공이다. 군 제대 후 조선의 정조 역할로 컴백했던 작품 <역린> 이후 현빈이 다시 무대에 올랐고 이제는 ‘참바다’란 별명이 함께 떠오르는 유해진이 <럭키> 이후 비교적 이른 시기 내에 다시 연기를 선보였다. 같은 날 개봉한 <더 킹>에게 초반에는 기선제압을 당했으나 설 연휴 이후 지금까지 650만을 돌파하며 굳건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 킹> 특유의 날 선 코미디보다는 아무래도 가족 단위로 함께 즐기기에 편한 액션과 유머의 종합선물세트인 <공조>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고있는 형세다. 그런데 이 영화 어딘가 많이 엉성하다.


특별해도 뻔한 설정



우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남북한의 형사가 만나 함께 일을 도와나간다는 설정. 사실 이러한 설정은 우리나라 영화에서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이기에 매우 흥미로운 설정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관객들에게는 과연 이 설정이 그저 신선할 수 있을까? 한국 영화의 짜임새가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좋아지고 있고 함께 관객들의 영화를 보는 시각도 높아졌다. 더 이상 특정배우에 의해 영화의 성패가 갈리는 시기가 지났고 관객들이 영화의 연출,촬영,미술,음악 등을 함께 이야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마치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이후 사람들이 노래하는 가수의 가창에만 주목하는게 아니라 편곡에 대해서 신경을 쓰며 음악을 듣는 과정에 이른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관객들은 이제 예측 가능한 이야기도 뻔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그 무언가를 기대하며 극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공조>는 그 기대감에 크게 부응하지 못 했다. 결국 뻔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북한 형사를 잘 생긴 현빈이 맡았고 남한 형사를 유해진이 맡았다. 이미 관객들은 현빈으로부터는 멋진 액션을, 유해진으로부터는 유쾌한 웃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 상태로 영화관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럼 적어도 연출가는 높아진 대중들의 시선에 다가가기 위한 조금의 노력이 필요했다. 현빈을 너무 힘주고 멋을 부리는 역할로만 만들지 말고, 유해진에게는 코믹 연기만 있는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지금 <공조>의 관객스코어에 쉽게 수긍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모되는 유해진



아무래도 이 영화의 열쇠는 유해진이 쥐고 있다. 타이틀 롤에서 현빈이 우선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그의 스타성을 배제한다면 이야기에서는 유해진의 이름이 우선 떠올라야한다. 이미 영화 초반부터 현빈은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의 특징을 다 보여줬다. 김성훈 감독은 북한군 장교로서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남자인 현빈의 모습을 영화 중반부 이전에 모두 다 설명을 해버렸다. 현빈에게 남은 건 액션밖에 없었다. 물론 영화 후반부의 카체이싱 액션은 후일 한국 영화의 기억에 남는 액션신을 논할 때 언급이 안 되면 섭섭한 수준으로 멋있었다. 결국 현빈이 생각보다 일찍 소모되어버린 전체 흐름에서 이 영화의 성패는 유해진에게 쥐어졌다. 할 수 없이 유해진은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필살기를 구사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코믹 연기 대가답게 장면 곳곳에서 소소한 웃음부터 긴장감 넘쳐야 할 액션신 속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배를 잡고 웃어주길 기대했던 감독의 바람이 이뤄지기엔 그리 녹록지가 않았다. 


지난 가을 개봉했던 <럭키>에서 유해진은 본인이 습득한 모든 코믹 권법을 다 사용했다. 180만 명만 들어도 손익분기점이 넘는 영화에 결국 700만 명 가까이를 극장으로 모을 수 있었다. 채 반 년도 되지않아 똑같은 전술로 나온 유해진에게 스스로가 <럭키>의 유해진을 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이른 시기에 유해진을 같은 방식으로 소진시켜버린 셈이다. 모두 잘 알다시피 유해진은 웃음기를 제거하더라도 갖고있는 공력 자체가 뛰어난 배우다. <이끼>에서 정재영을 앞에 두고 보여준 광기 어린 연기나 <부당거래>의 표독한 악역 등 그의 무궁무진함은 앞으로 그를 배우로서 오랫동안 보고싶게 만드는 부분들이었다. TV 예능 <삼시세끼>에서 대중들이 느낀 인간적인 애정이 일시적으로는 이어져서 영화에도 순기능을 할 수 있겠으나 이런 방식으로 유해진이 마모된다면 대중들이 그의 연기에 대해 앞으로 더 기대를 하는 것도 쉽진 않을 것이다. 지금이 배우 유해진에게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김주혁의 재발견



연출과 이야기의 힘이 약해지며 남은 카드가 배우들의 개인기밖에 없다고 판단한 시점에 의외의 인물이 힘을 발휘한다. 그간 세련된 도시남자의 전형을 갖고 있었고 TV 프로그램 <1박 2일>을 통해 유쾌한 모습을 보였던 김주혁이 그 역할을 맡는다. 김주혁은 영화 속에서 남북공조 프로젝트의 공공의 적이 된다. 현빈의 인민군 간부 선임으로서 북한에서 위조지폐를 만드는데 쓰이는 동판을 훔쳐 달아난 악역을 맡았다. 확실한 악역을 담당해야했던 김주혁은 예상외로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나라를 배신하고 형제같은 동료를 배신하는 그의 모습이 다소 악역의 전형이라 새로울 건 없었지만 그간 김주혁이 보여온 ‘차도남’ 캐릭터와는 달라 신선했고 그 악함을 훌륭히 소화해서 더 눈길이 갔다. 최근 홍상수 감독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도 등장하며 홍상수의 페르소나라면 필수적으로 장착해야 할 ‘찌질함’도 선보였다. 이제는 본인이 정형화된 배우가 아님을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래도 권선징악 결국 사필귀정


영화는 예상한대로 선이 악을 벌하고 모든 일이 올바른 상태로 되돌아가며 끝이 난다.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면 충분히 훌륭한 오락영화였다. 다만 기대감이란 측면을 차치하더라도 이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 또 있다. 


지금 극장 밖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은 어떤 외침을 하고 있나. 부분적으로는 좌우에 따라 서로 멱살을 잡고있기도 하고 고하에 따라 서로 등을 돌리고 있긴하나 그런 부분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치로 삼는 공동체에서는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좌우와 지위고하를 막론한 선악의 문제가 계속해서 국가의 구성원을 괴롭히고 있는 형국이다. 극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공조>를 선택하는 이유는 분명 이러한 현실의 차가운 바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을 원하니깐. 



매거진의 이전글 메릴 스트립이 보여준 대배우의 품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