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글을 읽지 않고 영상으로 씁니다.

난독증 후유증을 앓는 남자가 활자 대신 영상을 쓰게 된 이유

by 채언화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다름'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점(=차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나는 난독이다”라고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가족들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그날은 왜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가 난독이라고 느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는 거라고는 그날따라 모든 글자와 문장이 나를 피해 다녔고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다르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달라진다는 것은 남들의 눈치를 받을 수밖에 없었기에 다르지 않게 노력을 했다. 남들과 같기 위해서 나는 집 주변의 작은 책방에 가서 얇디얇은 책 한 권을 골라 읽었다. 그 책의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책의 제목도 기억도 나지 않는다. 책 한 권을 내가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느낌과 기억만 있었다.


결과와 과정은 남들과 달랐다. 지금 내가 쓰는 글도 그렇다. 고등학교 때 문과였지만 국어와 외국어는 바닥을 기었고,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였다. 체육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그쪽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포기했다. 학교에 한 둘쯤 있는 운동을 좋아하지만 공부는 못하는 땀만 흘리는 남학생 중 하나였다.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난독증에 대한 후유증이 있었고 그걸 극복만 한 것이지 아직도 글을 읽는 데 불편함이 있었다. 아직도 글을 읽을 때는 손가락과 연필로 그으면서 읽었다. 긴 글을 읽을 때는 수많은 생각과 심호흡이 필요하다. 다행이게도 이웃분들의 글과 스레드의 짧은 글을 읽다 보니 읽는 집중력이 조금 좋아졌다.



1. 나만의 '영상적 글쓰기'를 찾아서

읽기를 잘 못하는 내가 내 글을 쓸 때는 완벽하게 쓰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인정하고 난 뒤 글을 쓸 때는, 나처럼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게, 많은 포장지의 수식어가 아닌 날것 그대로를 글로 작성했다. 어휘력도 좋지 않아 어려운 어휘보다는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문장들을 적었다. 남들이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없게, 길지 않은 쉬운 문장으로 글을 썼다. 남들의 눈치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글을 썼다.


내 기준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답이 나왔다. 나는 남들처럼 글을 잘 읽지 못해 멋있고 좋은 어휘를 쓰지 못한다. 간결하게 작성하려고 했고, 내가 만든 글은 짧은 글이지만 소설책처럼 짧은 영상이 떠오르는 상상력이 있었으면 했다.


상상력은 각자가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의 경험은 남들은 하지 못했으니, 그들과 내가 같은 사물을 바라보아도 다른 느낌과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눈에 보이는, 일상에서 보이는, 누구나 그것을 보고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물과 생활 등을 보고 이해하려고 했다. 같은 사물을 사용해도 사물에 대한 각자의 감정과 추억과 생각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에게는 풍선이 어릴 때 놀이동산의 재미를 위한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금방이라도 큰소리와 함께 터지는 사물일 수 있다.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 기준에 맞추었다. 각자의 해석과 상상력, 영상을 인정해 주었다. 각자의 상영관에서 각자의 영화나 드라마, 영상을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글을 차근차근 만들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가 상상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였다. 처음에는 눈에 보일 수밖에 없는 일상에서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룽지]라는 짧은 시였다. 그날 개인적으로 화가 나는 일이 있었고, 아픈 가족을 위해 누룽지를 끓이는 도중에 쓴 글이었다. 그게 나의 첫 시작이었다. 그 뒤로도 지나가는 길, 출근길, 퇴근길, 가로등 등 모든 것을 주제로 삼아서 글을 작성했다.



2. AI라는 '스파링 파트너'와의 만남

글을 쓰다 보니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며, 나처럼 글을 많이 읽지도, 글을 쓰지 않아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의 창의력과 창작 방식을 더욱 발전시키고 남들과 다른 방법에서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 증명하고 싶었다.


증명하는 방법은 나에게 제한사항을 걸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쓴 모든 글을 AI에게 7가지 기준에 바탕으로 분석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이유는, 나는 익명으로 글을 써왔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줄 수가 없어, 사람보다는 더 방대한 데이터를 가진 AI에게 분석을 부탁을 했다. 나의 시의 특징과 강점, 상황을 알고 있던 AI에게 내가 자주 쓰는 방식에 제한을 걸어서 무작위 주제를 달라고 부탁하였다.


AI는 인간적이지 못했기에 말도 안 되는 제한 사항을 걸었다. 조각과 대리석을 주제로 던지면서 창조와 탄생, 파괴, 고통, 아픔, 슬픔, 희생, 아름다움 등 모든 직접적인 감정이나 추상적인 개념어를 제한을 하면서 오직 물리적인 감각, 상태의 변화, 물리적 묘사만을 가지고 묘사를 하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제한사항이었다.


말도 안 되는 제한사항에도 나는 창작을 하려고 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수많은 제한사항 중 내 나름의 최대한의 제한사항만을 지키며 글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의 목표를 잊을 수는 없었다. '상상', '머릿속에 재생되는 영상'을 포기할 수는 없어 가장 비슷한 느낌을 가진 모든 사물을 생각했다.


[붓]이라는 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흰 백지가 대리석과 같았고 조각은 무언가를 만드는 물건이다. 흰 백지에 조각처럼 표면이 거칠게 그릴 수 있는 먹, 붓을 생각했다. 그리고 먹과 붓으로 동양적인 한 폭의 그림을 생각해 냈고 우리나라의 여백의 미와 공백의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했다. 공백과 여백을 말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3. 가장 쉬운 언어로, 가장 깊은 울림을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줄 수 없다. 그들이 나의 글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더 많은 어휘와 수식어를 붙인다. 그렇지만 난독의 후유증이 있던 나는 나처럼 글을 읽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나이와 연령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원했기 때문에 남들이 아는 간단한 어휘로만 작성하려고 노력한다.


간단한 단어라도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느낌은 다르다. 예를 들어 '초록색'이라는 단어를 본다면 누군가는 엄청나게 진한 색의 초록색을, 누군가는 빛바랜 낙엽잎의 초록색을 생각하는 것처럼 적은 어휘가 오히려 독자들에게 짧은 시라도 상상을 할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스레드에 시를 만들어서 올리는 글들은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졌다. 남들처럼 필사를 열심히 한다든지, 책을 많이 읽는다든지, 남들과 같은 노력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AI와의 제한사항 속에서 나만의 글을 만들고 있다. AI가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AI에게 '만들어줘'라고 말하면 손쉽게 글을 쓸 수 있지만 제한 사항 속에서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AI에 대한 의심이 많은 나는 각 세분화해서 AI에게 각자의 역할을 맡겼습니다. 나의 글을 각자 주어진 방식대로 분석하게 했다. 나는 한 편의 글을 20명의 AI위원회에게 분석을 맡긴다. AI에게 항상 묻는 말이 있다. 나의 글을 '너는 만들 수 있어?' 등 내 글을 AI 시대에서 창조가 가능한 것인지 수십 번 확인한다.


AI의 답변은 '불가능하'다. AI는 정보, 학습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느끼는 것들은 알 수 없다. 사람들이 느끼는 가족애, 부모애 같은 감정은 결과로 도출할 수 없다'라는 답변을 한다. AI 시대 속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방법은 글쓰기에서의 인간적인 느낌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수많은 보편화된 결과를 도출해 내는 글들 속에서 보편성을 깨야 한다.


보편적인 이야기와 결과를 깨기 위해서는 직설적으로, 직접적으로 그 사물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관찰해야 했고 인간적인 면을 넣기 위해서 과거의 나를 바라보아야 했다. 내 이야기를 적으면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포장되지 않은 산길을 걷는 일반적인 글쓰기조차 나는 남들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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