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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니 코치 Aug 23. 2019

포틀랜드 장기여행에서 찾은 것

포틀랜드에서 가장 ‘힙’한 것은?

맥주와 커피가 흐르는 장미의 도시, 포틀랜드!


  내가 포틀랜드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알고 있는 거라곤 저게 다였다. 그러나 6개월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포틀랜드와 워싱턴을 왕복하며 뚜벅이 여행자로 살아본 바로는, 포틀랜드는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멋진 곳이었다. 다양한 맛집과 인스타에서나 볼 것 같은 힙한 가게들, 텍스 없는 쇼핑, 맥주 브루어리뿐만 아니라 사이다를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 많다는 점 외에도 여기 사는 사람들이 참 힙하다고 말하고 싶다.


  뉴욕에서 일하다가 포틀랜드로 잠시 놀러 온 친구는 어떻게 사람들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을 수가 있냐며 놀라워했다. 거리의 사람들이 한결 여유롭고 표정이 밝아 보인다고 자신의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진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포틀랜드는 여유롭고 미국 내 다른 대도시에 비해 한적하며 그 안에 있을 것은 다 있는 살기 좋은 도시다. 주민들도 대부분 상냥하며 관광객에게 보내는 꾸밈 있는 친절이 아니라 존중이 느껴지고 무엇보다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삶에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자연과 더불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알아가고 더 배워야겠다는 자극을 얻는다. 허브 같은 각종 식물을 직접 재배해서 그걸로 천연 오일을 만드는 친구나, 정신 수련과 차에 관심이 많아 영락없이 성질 급한 한국인인 나에게 명상을 가르쳐주는 친구, 각국의 이국적인 음식에 대한 칼럼을 쓰고 직접 요리해서 대접하는 나의 호스트까지, 다양한 열정과 매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의식의 확장이 뭔지 깨닫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물론 포틀랜디안이라고 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플라스틱 줄이기에 동참하고 채식을 주로 하는 등 자연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는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나도 친구 덕에 비건식을 여기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건강'도 하나의 키워드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만, 대마초를 줄기차게 피우고 같이 놀기만 하면 술이 기본에 항상 폭음으로 끝나는 몇 대학생 친구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어 보인다.


  외향도 아주 가지각색이다. 나는 세계 어디에서도 이렇게 염색 많이 한 사람들을 본 기억이 없다. 초록, 파랑, 노랑, 빨강, 보라, 에메랄드, 이름 모를 색까지... 정말 색의 파티가 열린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채롭다. 내 친구의 룸메이트는 단발에 아주 오묘한 핑크색을 입혀서 그를 보자마자 염색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 어디서 했나 궁금하게 만들었다.(결국 물어봤는데 친구한테서 받은 거라고 했다. 그것 역시 힙하다.) 타투도 안 한 사람을 더 보기 힘들 정도로 기본적으로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염색도 타투도 패션에도 별로 관심 없는 나는 한국에서는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여기 오니까 거의 투명인간 급으로 평범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친구 사귀는데 걸림돌이 되거나 하진 않는다. 미국 내에서 가장 리버럴 하다는 평가를 받는 도시답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어있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있어서 먼저 다가가는 적극성만 있다면 누구든지 친구를 만들 수 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언어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날도 있었지만 편견 없이 대해준 사람들도 많았기에 나름대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잘 사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오픈 마인드는 섹슈얼리티에도 적용된다. 내 한국인 친구는 4명의 룸메이트 중 유일하게 헤테로일 정도로 다양한 성적 지향성이 존재하고 또 그것이 자연스럽다. 캐나다만큼은 아니지만 거리에 LGBTQ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나 스티커가 식상할 정도로 많이 보인다. 심지어 교회에도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으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이런 곳에서 딱 한 번 실언을 한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에서 잠시 공부했다는 남자 친구에게 '프랑스에서 여자들과 데이트해본 적 있냐'라고 물었다가 '왜 내가 여자를 만날 거라고 생각해? 나는 한 번도 여자랑 데이트한다고 한 적 없는데'라는 대답을 듣고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힌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즉시 사과했고 그 친구는 쿨하게 괜찮다고 넘어갔지만 그 일은 두고두고 반성하고 입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성애 중심적인 문화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친구에게 미안하고 한국이 조금 더 개인의 성적 취향에 너그럽고 자유로운 나라였으면 어땠을까 아쉽다.

  이렇듯 성 지향성으로 평가당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만큼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사람도 많았는데 동양인 여성이 많이 없는 포틀랜드에서는 뉴페이스가 등장하면 한 번씩 찔러보는 게 룰인가 싶을 정로도 많이들 솔직하게 다가와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노'라고 하면 바로 깔끔하게 물러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성에 관해서는 너무나 관용적이기에 이렇게 솔직히 물어보는 것도, 누구랑 어떤 짓을 하던지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는 듯하다. 친구들이 자신들의 성생활을 들려줄 때마다 항상 그 전보다 더 쇼킹한 이야기를 들고 와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만나본 대학생들만 그런 걸진 모르겠으나 다들 그냥 자유분방하게 사는 것 같았다.


  뉴욕에서는 캣콜링이 일상이었고 그 좋다는 샌디에고와 시애틀에서도 심한 캣콜링을 당했으나 포틀랜드에서는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이나 그 비스무리한 것조차 느낀 적이 없다. 단순히 운이 좋다고 하기엔 다른 한국인들에게 물어봤을 때도 개인적으로 이상한 사람은 만나봤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다른 도시보다 덜 한 것 같다. 그래서 포틀랜드에서 살진 않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 참 마음이 편하다. 익숙해진다 해도 언어와 환경이 다른 곳에서 지내면 신경이 곤두서서 피곤해지기 마련인데 포틀랜드는 딱히 그런 것을 느끼지 않는다. 따뜻한 여름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안전하고 밝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노숙자가 가끔 말 걸 때도 있지만 다른 도시에 비하면 약과다.

  그리고 한국 친구랑 항상 나갈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여기는 종업원이 어째 더 힙한 것 같다.' 그렇다. 포틀랜드는 가게 직원들이 참 힙하다. 나는 주로 먹거나 마시러 다니는데 가게마다 점원들 그 특유의 바이브(?)가 살아있다. 연령 불문하고 비니를 쓴 힙스터들도 많이 보이길래 타겟에서 3불짜리 비니를 사서 ‘어때 나 좀 포틀랜디안같아?’하면서 까불고 다녔었으나 역시 로컬 힙스터를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생전 모자를 사지도 쓰지도 않던 나조차 비니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이니 포틀랜디안의 비니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

Sizzle Pie라는 유명한 피자집의 구인 광고글은 'Psst! Hey, We are always looking for good folks..'로 시작하는 친근한 글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점원들이 더 친근한 거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것이 보여서 참 좋다. (그러나 자주 소스를 빼먹거나 시키지도 않는 메뉴를 줘서 테이크 아웃할 때는 항상 확인해야 하는 것을 잊지 말자.)


  여기까지 너무 포틀랜드 찬양글인가 싶다가도 그냥 내가 느낀 점을 솔직하게 적었다. 아마 지금이 내가 좋아하는 건조한 여름이라 더 평가가 후해진 것이리라. 겨울 북미는 정말 자비 없이 춥다. 그때가 되어서도 사람들이 여전히 친절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4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워싱턴과 포틀랜드를 왕복하며 살아보고자 한다.

  글은 정말 오랜만에 쓰는 것이라 조금 어색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한치의 망설임 없는 포틀랜드 사람들을 보며 나도 용기 내어 나를 드러내기 위해 한 발짝 내디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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