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요?

by 언니그라피


20대 초반부터 부모님의 곁을 떠나 혼자 살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역시 타지에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쭉 그렇게 살아 이제는 부모님과 살아온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더 깁니다. 딸 넷 중 둘째로 태어나 부모님의 관심을 크게 받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부모님께서 들으신다면 많이 서운하실 말입니다만. 여하튼 제가 느끼는 감정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제 나이의 그 시절 서민의 삶이란 팍팍하기도 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서운하거나 아쉽거나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냥 내 위치가 이 정도이구나 하며 받아들였습니다. 더 사랑받으려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늘 그 자리에 있었기때문입니다. 다만 저 혼자서 유아기, 청소년기, 성인기를 지나면서 정서적으로 들락날락했습니다.


굳이 많이 바라거나 더 받으려 노력하지 않은 제 성격이어서 그래서였을까요? 딸 넷 중 어느 정도 마음의 거리가 있던 딸이 바로 저입니다. 순응하는 삶을 살던 저이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1인분의 몫을 하면서는 입바른 소리도 제법 매차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관계는 역시 상호적인 것이라서 그런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엄마도 저를 조금은 어려워하고 딸 넷 중 마음의 거리를 좀 두고 있다는 것을요. 그런 엄마의 마음은 언니를 통해서 후에 듣기도 했습니다. 딸이지만 윤정이는 대하기가 조금 어렵다고 말입니다.


아직은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온 시간이 부모님과 함께 산 시간보다 적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둘째를 낳은 시기에 아기도 볼 겸 엄마가 오셨습니다. 둘째를 안고 조용히 하시는 말씀이 "몸의 거리가 마음의 거리라더니 딱 네가 그렇다. 할미가 너한테 정을 못 주겠다." 그 말을 엄마는 지금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종종 과거의 에피소드를 잊는 엄마는 아마도 잊었을텝니다. 왜냐하면 뭘 잘 따지는 제가 그것만은 따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때로서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째로는 무슨 그런 말을 말도 아직 못 알아듣는 갓난아기에게 하는가 였고 둘째로는 그 말이 꼭 아기가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그 순간에는 내가 그동안 무슨 잘못을 했는가 과거 회로를 돌리기 바빴기 때문입니다.


타지에 홀로 자유로이 살던 아가씨 시절에도 한 달에 두 번은 꼬박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함께 살 때는 큰 존재감이 없었지만 그래도 딸 넷 중에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난 지라 저는 자유에 환호를 했을지는 모르지만 부모님 마음은 매일이 가시밭길 자갈길인 걸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한 달에 한 번은 내려갔습니다. 찾아뵙는 것은 거의 습관이 되었기도 했고, 내려가지 않으면 서운해하시는 걸 알기에 더 신경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의 노력에는 엄마의 그 말을 들을만한 교차점이 없어서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습니다.


그런 충격의 말을 듣고 시간은 흘러 14년이 지났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때는 나도 모르는 나의 잘못이 들추어질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따져 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솔직할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곱게 묻지 못할 자신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엄마와의 싸움으로 번질까 감히 입 밖에 꺼내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른 지금은 '이제 와서 왜...'하는 마음이 큽니다.


솔직함은 관계의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기처럼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무기는 상대를 벨 수도 있고 관계를 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지 못한 채 ''나는 쿨하고 뒤담화 따위는 하지 않는 멋진 사람'처럼 비칠 것을 기대할 테지요. 가족과의 솔직함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요?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야?'하며 욕심을 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너 아니면 누구한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니?'하면서 강요 아닌 강요를 할 수도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잘 안되는 것처럼 '솔직함'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럼, 가족끼리도 연기하듯 숨기고, 아니어도 그런 것처럼,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거야?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가족이 무엇이길래 다 용서받을 거라 생각하는걸까요? 상처를 주어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가족>이라는 것은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는 솔직함이라는 것은 '내가 드러내고 싶은 것'과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이것이 교차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숨기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배려일 수 있습니다. 언젠가 지인의 시어머니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인생은 드라마이고 우리는 연기자일 뿐이다. 상황에 따라 연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지인은 신혼이었고 저 역시 한참 자유롭던 아가씨 시절이어서 몰랐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나이가 들고 역할이 하나 둘 늘어남에 따라서 맡은 배역에 맞추어 그럴듯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것은 누군가를 속이려거나 나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한 관계유지를 위한 것임을요.


그때, 엄마는 제게 왜 그렇게까지 솔직했을까요?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아무 생각이 없으셨을까요? 가족이니까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짜였을까요? 가족이라서 더 입에 담을 수 없었던 말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그날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아마 끝까지 엄마에게 말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만 총총 (2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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