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어떤 영화든 빌런은 하나쯤 있기 마련이죠. 어떤 집단이든 진상은 꼭 있다고도 합니다. 모두가 괜찮은 사람이라면, 어쩌면 내가 진상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어느 집단에 속하든 나와 비슷한 사람들, 혹은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만 만날 수는 없겠지요. 나와 성향이 너무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레 '빌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벼운 모임이라면 조용히 빠져나오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아요. 특히 생계와 관련된 일터라면, 나를 조금 깎아 그 틈새에 끼워 넣어야 하기도 합니다.
제가 일하는 <다있는>곳도 특색이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자마자(아직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말 많고 잔소리 많은 사람,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한 데다 직설적으로 내뱉는 사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 미련하고 곰 같은 사람, 투덜대는 일이 생활처럼 붙어 있는 사람, 화려한 공작새 같아서 완장이라도 차면 여왕벌이 될 것만 같은 사람들요.
이런 개개인의 특성은 처음에는 참 불편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니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굳이 저 사람에게까지 맞춰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제가 회사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결국 맞추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저의 장점은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볼 때 나를 불편하게 하는 부분만 보지 않고, 그 이면을 자꾸 생각해 부정적인 감정이 흐르지 않게 합니다. 감정이란 사람의 기를 타고 전염이 된다고 믿기에 되도록 나쁜 생각은 멀리하려고 합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면요.
말 많고 잔소리 많은 사람은 집단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분들은 종종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거든요. 조용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디고 어떻게든 공기를 조금 더 가볍게 띄우려고 합니다.
직설적인 사람은 그 화법이 너무 뾰족해서 나를 향하면 따갑고 아프지만, 내가 하지 못한 말을 누군가에게 똑 부러지게 내뱉을 때는 묘하게 속이 시원하기도 합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은 표정만 보면 미운 짓을 할 것 같지 않아요. 자신이 손해 보지 않으려 하는 만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어하더라고요. 경력도 오래되고 나이도 가장 많아서 저 역시 최대한 예의를 갖추게 돼요. 경험이 많은 만큼 일을 가장 많이 맡기도 하죠. 그 과정에서 분명 도움을 받는 부분도 많고요.
곰 같은 사람은 묵묵히 일하지만 건드리면 터지는 분입니다. 이런 분은 선만 잘 지켜주면 큰 탈이 없어요.
투덜대는 사람이지만 개구쟁이 같은 면도 있는 사람은 제가 조금 더 조심하는 유형이에요. 저는 뒷담화를 경계하는 편이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혼자 투덜대는 것과 둘 이상이 모여 불만을 퍼트리는 건 전혀 다른 일이거든요. 깊게 장단을 맞추다 보면 어둠의 블랙홀에 빨려들 듯 금방 휘말립니다. 나도 모르는 새 세트로 나락 가는 수가 있어요.
화려한 공작새 같은 사람은 최대한 맞춰주면 됩니다. 어린아이 달래듯 우쭈쭈 해주면 의외로 미운 말도, 해코지도 잘하지 않습니다. 저도 인정욕구가 있는 사람이라 그 욕구가 채워지면 사람이 얼마나 유들유들 해지는지 잘 알고 있지요.
흔히 인생을 연극 무대에 비유합니다. 우리는 그 무대에서 각자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지요. 저는 그 연극에 모두가 같은 역할을 맡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상대방의 배역에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만약 모두가 저와 같은 역할만 맡는다면, 그 연극은 참으로 지루해질 테니까요.
그리고 문득 생각합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배역일 거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 달라집니다. 한 무대 위에서 각자의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상대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나의 성장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같은 연극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장면을 만들어가는 동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