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눈물을 흘렸는가
광고 몇개를 보았다. 제목은 리바운드. 감독 장항준에 안재홍 주연. 사람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둘의 만남이자 어딘가 내 마음 한 켠에 모시고 싶은(?) 둘의 만남이어서 영화관에 가리다 마음 먹었더랬다, 자연스럽게.
어벤져스가 그러했고 소림축구가 그러했듯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의 영화 주인공들은 동료를 만들어야 한다. 코치 안재홍도 그러했다. 왕년에 좀 치던 유망주였지만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 해체 위기의 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로 선임되어 선수 꾸리기가 급선무. 거기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자, 이제 코치는 좌충우돌 각자의 사연들과 부딪힌다. 슬럼프에 빠졌거나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그래서 어쩐지 삐딱한 몇 녀석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간다. 영화는 이렇게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그대로 1쿼터를 시작한다.
치기 어린 녀석들의 대화에 혼란을 막을 수 없었다. 이래도 되나? 따라오는 뒷말이 훤히 보이는 진부하고 유치한 대사들의 향연, 영화의 중반부 내내 헛웃음이 삐져나오는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흡사 '꽃보다 남자' 대사와 견주어도 결코 밀리지 않을 것들을 수시로 던지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움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나이기에 이만하면 됐다! 할 때 즈음 정말 그들이 하던 것을 멈추었다면 적어도 내게는 진부한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아차! 싶었다, 림에 맞고 나온 농구공을 다시금 잡아챘다. 리바운드였다.
이들의 클리셰는 당당했다. 뻔뻔했다. 대놓고 하자는 거구나. 그때부터 내가 느낀 모든 부자연스러움들이 한결 나아졌다. 세상의 주인공이 나인 것만 같을 고등학생이 못할 말들이 아니었다. 더구나 나 또한 언젠가 진부함에 대한 존중을 주제로 글을 쓴 적도 있었다. 진부함은 사실 참신한 시절이 있었으며, 그 빛남을 흠모한 이들의 복사-붙여넣기로 인해 결국 그렇게 되고야 만 것이라고. 다시, 영화 리바운드에는 여러 익숙함들이 있다. 다만, 영화의 3쿼터부터는 그 뻔한 것들이 진절머리보다는 어쩐지 풋풋하게 다가왔다. 아뿔싸, 장항준 감독의 얼굴이 스크린 앞에 떠다니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했다고 느꼈다.
동기화되었다. 거진 부산중앙고의 일원이 되어버린 나 공갈빵은 슬쩍슬쩍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왜일까, 정말 왜일까, 왜 시작부터 다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훌쩍거리고 말았을까. 이건 아무래도 두 명의 배우 탓이었다.
먼저, 김수진 배우님. 나는 그녀를 보았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DP에서, 슬의생과 곳곳에서. 내가 본 그녀의 모습은 매번 사연 있는 어머니이기에 늘상 눈물을 삼키곤 했다. 그 모습이 참 서러우면서도 '진짜'같아서 늘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용하게 가슴을 쿡쿡 쑤시는 그녀의 모습이 이 영화에서도 내겐 눈물버튼이었다. 내가 유독 그녀의 슬픈 모습만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인상이 깊어 잊을 수 없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안재홍.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족구왕'의 만섭이가 떠올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족구왕의 주인공 복학생 만섭은 공무원 준비나 하라는 선배들의 조언에도 불구, 본인이 좋아하는 그저 '족구'를 위해 대학 총장과 토론하고 팀을 꾸려가며 바보같고 우직하게, 웃프게 족구공을 찼다. 그때의 그 순수한 안재홍은 한창 청춘이라는 단어에 꽂혀 파릇파릇한 꿈을 꾸던 내게 애착 부적(?)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부적에서 다시 빛이 났다. 순수한 열정을 그대로 머금은 채 농구부 코치로 돌아온 것이다. 그이기에 설득되는 캐릭터였다. 여러 모습들 속에서도 라커룸에서의 마지막 연설 장면에서 나는 비로소 중앙고 농구부가 되었으며, 코치님의 끓어오르는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최약체 부산중앙고가 연승하리라는 것을. 전국대회에 출전해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고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조금 벅차기도 했다. 꼴찌의 반란은 늘 이렇게 처절하고도 아름답다. 늘상 영화적 소재가 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농구장의 함성 소리로 인해 차츰 잊어갔다. 한창 끝으로 달려가고 있을 무렵, 영화는 또 반칙을 써버렸다. 부산중앙고의 마지막 경기는 만화 슬램덩크의 마지막이 그랬던 것처럼 스르르 사라졌다. 대신 영화 속 장면이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오버랩되는 연출을 내보였다. 아, 웅장하게 부풀었던 가슴이 터지고야 말았다. 나란 녀석, 또 당했다. 오버랩과 동시에 한 명, 한 명의 행보를 한 줄, 한 줄 이야기하며 영화는 끝이 났다. 드라마는 역시 현실에 있나보다 싶었다.
그럴 줄 알았지만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장항준과 안재홍이어서 그럴 줄 알았지만 정말 정통파로 이럴 줄은 몰랐다. 당황했으나 끝에선 좋았다. 대놓고 열정이거나 청춘이거나 꿈이거나 도전같은 단어를 꾸미지 않고 영화로 옮겨왔다. 꾸민 줄 알고 실소했던 내가 초라해지기까지. 눈물 없는 말티즈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음과 동시에 거진 행복 전도사가 된 장항준 감독과 소공녀, 북촌방향에서의 잠깐과 1999 면회, 멜로가 체질, 응팔의 정봉이까지 매력 있는 캐릭터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족구왕의 만섭이 내겐 가장 큰 강렬함인 안재홍의 만남은 사실 내겐 처음부터 반칙일 수도 있었겠다. 멋진 덩크슛처럼 '와! 대단한 영화였다!'로 기억하진 않을 것 같다. '하, 좋았지 그 영화..' 튕겨나온 공을 다시 잡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리바운드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억지로우나 뭐, 틀린 말 같지도 않다. 간만에 오래 갈 영화를 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