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와 다말과 라합을, 마리아를 비난하는 자다
하나님의 시간을
자기 중심적인 기준과 들리는 소문으로
비난할 수 있으며, 비난 받을 수 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은 그를 비난했다. (행11:2)
아합 왕조의 신하 오바댜를 비난할 수 있으며
유다의 며느리 다말과
여리고성의 라합을 비난할 수 있다.
동정녀 마리아를 비난할 수 있으며
나는 언제든지 욥의 세 친구가 되어
그를 비난할 수 있다.
얼마든지 나는 베드로를 비난하는 할례자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나는 무할례자이다.
구원에 속하지 못하던 자였다.
사실 성경은_ 구약성경은
이방인인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약속의 민족,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
그래서 유대인의 관점에서 이렇게 보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루 아침에 구원의 기준과 범위가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에 속하지 못했던 자,
주님의 은혜로 잔치에 초대받았다.
당연한 은혜가 아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비난하는
할례자들에게 자신을 이끄신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행11:18)
베드로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
하나님이 인도하신 시간들을 말했다.
가득한 십자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동시에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어떤 언어로 그것을 말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