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pictorial

두렵고 부럽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by 이요셉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함께 한 이들에게 내가 당신들에게
이렇게까지 수고했고, 헌신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절대 말할 수 없는 말들이다.
하지만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들 또한 이 말들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서에서

자신을 본받아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제 이곳으로는 다시 오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언제 그가 목숨을 다할지 모르지만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가지, 더욱 낯선 곳으로 들어갈 뿐

정들고 익숙한 이곳으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지만

동시에 성령님은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고난과 박해라고 말한다.


언젠가 주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거라고.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 말을 듣는 순간

원망이 아니라

언제가 힘든 시간이지?

지금인가? 지금이 그때인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바울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의

고난과 박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주님이 말씀하셨기에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거라고 확신했을런지 모르겠다.


그는 말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을

전하는데 있어서 내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명보다 복음이 더 귀하기 때문.

시대적인 언어에 코드를 맞추는 것과
복음이 동일선상에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화적인 것이 복음 위에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내 생명보다 예수님이 귀한 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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