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걸음을 풀고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by 이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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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다.

과연,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주님이 우리 인생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걸음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주어진 선택 앞에

마음을 먹고, 다짐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몸은 긴장되고

걸음은 경직되기 마련이다.

사람은 자신의 기질과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한시적으로, 혹은 평생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구별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나실인에 사용된 히브리어

'나지르'의 뜻은 바쳐진. 헌신한,을 의미한다.

평생 나실인은 부모에 의해 바쳐진

사람들로, 사무엘이나 삼손 같은 이들이다.

스스로 일정 기간 나실인으로 서원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비록 출생 신분이 레위인이 아닐지라도

자원하면 누구든 레위인처럼 살 수 있었다.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민6:8)

하나님의 백성으로

누구나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따로 구별하는 시간..

사실 몸과 태도는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그릇이기도 하다.

결국 내 마음을 하나님께 구별하는 날.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알 수 없다.

사람에게 범죄 했는데,

곧 하나님께도 범죄 했다고 말씀하신다.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민5:6)

사람에게 하는 것,

하나님께 하는 것,

구별된다는 것,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

잘 살아간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간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래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주님께 엎드린다.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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