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속에 만난 말 한마디

나발과 아비가일, 그 사이 다윗

by 이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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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원수는 용서했지만

불량배는 지나치지 못했다.

지금까지 걸었던 믿음의 순종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훼손하고 모욕한 말들이었다.

말 한마디에

믿음의 사람은 잔혹한

불량배가 될 수 있었다.

언제가 완벽주의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각자의 경우가 다를 뿐

누구에게나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처리에 완벽주의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나 혹은

여유로움, 친절함에 대한

민감도의 기준이 다르다.

억울하게 도망하면서도

그일라 백성을 구해주고

자신의 원수 사울 왕을 살려주고

엄격한 게임의 룰을 따르던

다윗에게 나발은 다윗의 친절함과

선대를 곡해하고

믿음의 걸음을 모욕했다.

나발만 알지 못할 뿐,

모든 사람이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예상했다.

말 그대로 나발은

불량하고 미련한 자였다. (삼상25:17)

아비가일은 급히 먹을 양식을

나귀에 실어 다윗에게 앞서 보낸다.

다윗도,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상했을 때의

옳은 이야기는 허공을 칠 수 있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분노한, 무장한, 무거운 공기를 깨고

다윗 앞에 엎드렸다.

여인의 지혜로운 말들.

나발은 이름 그대로 미련한 사람이다.

미련한 자에게 당신의 분노를 쏟지 말라.

원수 갚음은 하나님께 속했다.

결국 나발은 열흘 뒤에

하나님이 치셨다.(삼상25:38)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결국 당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울 때

이 날을 부끄럽거나 후회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다가

내가 하나님이 되어

분노를 쏟은 이 날,

오늘 내가 쏟아부은 감정이

내일 부끄러울 수 있다.

아비가일의 말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희미해진 약속을

다시 생각나게만든다.

다윗에게 선지자 사무엘의 죽음은

영적 상실감을 갖게 만들었을까?

믿음으로 살려 하지만

하나님은 부재한 것 같고

사울은 여전히 기세 등등하고

하나님의 뜻이 여전히 유효한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고 싶은 사무엘은 떠나갔다.

하지만 위기에서 만난

지혜로운 여인의 말이

다윗의 시선을 사람과 환경이 아닌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든다.

미련한 자의 말이 믿음의 사람을

미련하게 만들 수 있고

믿음의 말은 믿음의 사람에게

다시 믿음의 걸음을 걷게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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