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적 이상주의자

도구나 대상이 아닌 존재로

by 이요셉

사람을 도구나 대상이 아닌

존재로 대하는 것,

오랫동안의 고민이다.

고민하면서도 나 또한 사람들을

존재가 아닌 대상으로 대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행위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들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것

도구나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대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우주의주인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에 불과한 한 사람을

그렇게 대하기 때문이다.

나병환자 한 명을, 이방인 한 명을,

귀신 들린 자 한 명을

찾아가 인격적으로 만나주셨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내 이웃이었다면

나는 계속된 만남과 관계속에서

과연 어떻게 대했을까?

그런데 그분이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가 그분의 몸이다. (엡1:22-23)

교회를 향한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몸과 마음이 산산조각 나서

울고 있는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교회는 현실이며, 완전하지 못하다는 말.

우리의 상상이 너무 이상적 이서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생긴 파열음들.

그런데, 교회만 그런가?

교회뿐 아니라 세상살이 자체가 녹록치 않다.

그래서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 속에

살아가는 인생 자체는 고단할 수밖에 없다.

거기서 크게 두 가지의 갈래,

현실주의자나 회의주의자가 만들어진다.

청년들이 교회서 느끼는 혐오는

현실주의자가 되어 버린 교회,

다시 말하면 너무 세속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당연한 결과로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교회의 모순이 아프지만

동시에 그 모순은 당연한 것과 같다.

교회는 바로 내 모습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큰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다. (엡1:20)

온갖 종교적 관심이 가득한 에베소 지역을 향해

바울은 하나님의 가장 큰 능력을 선언한다.

하나님의 신비와 능력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겸손은 내가 피조물의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는 것으로 교회를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분의 몸이기 때문이며

나의 왕,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고 말한다.

나는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기에

주님께 볼 수 있기를 청해야만 한다.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은사를,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기를,

마음의 눈을 밝혀 주님의 부르심의 소망과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깨닫기를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크심을 알게 되기를...(엡1:17-19)

#현실주의자 #회의주의자 #모순에도불구하고

#하나님의능력 #교회의머리 #그리스도


매거진의 이전글집없는 아이 레미